직장 내 괴롭힘, 정신과, F코드, 더 많은 약, 우울, 무기력, 무망감
제목 : 더 많은 약이 필요했다
정신과 문턱을 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단순히 잠을 못 자는 수준이 아니었다. 하루 종일 눈물이 쏟아졌고, 길을 걷다 갑자기 주저앉아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직장 내 괴롭힘 속에서 내 우울은 휴지에 잉크 번지듯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10년 넘게 동료들과 무탈하게 지내왔지만 단 1년 만에 모든 게 무너졌다. 옆에 있는 동료가 부끄러운 것보다, 그들과 같은 직업을 가진 내 자신이 더 싫어졌다.
살기 위해, 울음을 멈추기 위해, 두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악몽 없이 단 3시간만이라도 잠들기 위해 병원을 찾았다. 그렇게 F코드 진단을 받고 더 많은 약을 먹기 시작했다. 우울감을 풀어내기 위해 고통스러웠던 순간들을 글로 남겨볼까 했지만, 의사 선생님은 고개를 저었다. 글로 풀기보다는, 덮어두었던 감정과 생각들이 되살아나 오히려 더 힘들어질 거라고 했다.
복수하고 싶었다. 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잘 살아가는데, 왜 나만 괴로워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복도에서 그들의 실루엣만 스쳐도 얼굴이 굳었고, 두 명 이상이 모여 있으면 숨이 막혔다. 나는 아직도 나를 괴롭힌 사람들에게 사과받고 싶다. 두 번 다시 마주치고 싶지 않고, 말도 섞고 싶지 않지만 내 안에는 여전히 사과받고 싶은 마음이 남아 있다. 문제는, 사과를 받고 싶은 ‘나’는 존재해도 사과를 할 ‘당사자’는 없다는 것이었다.
사람에게 기대가 사라지자 무망감이 밀려왔다. 무망감은 무기력으로, 무기력은 삶에 대한 허무함으로 번졌다. 혼자 있는 시간엔 엎드려 있었고, 누워 있었고, 폭식했다.
하지만 약을 먹기 시작하면서 밤에 잠들 수 있었다. 이불과 한 몸이 되었다. 약을 먹고 누우면 매트리스에 몸이 푹 꺼지며 아늑하게 잠들었다. 밤에 잠을 자니 다음 날을 살아갈 힘이 생겼다. 생존을 위해, 밥벌이를 위해 직장을 그만둘 순 없었다. 약의 힘을 빌려서라도 버틸 수 있다면, 그렇게라도 하루하루를 꾸역꾸역 살아내고 싶었다.
나는 더 많은 약이 필요했다. 약의 도움 없이는 버티기 힘들었다. 어둡고 좁은 터널을 빠져나오는 길목에서 약물치료는 숨 쉴 수 있는 작은 틈이자 유일한 구세주였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처럼 언제까지 남편에게 내 눈물을 받아달라고 할 수 없었다. 무기력하게 침대에 누워 있는 내 뒷모습을 더 이상 남편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남편을 위해서라도, 나는 뭐라도 해야 했다.
약을 받기 위해 정신과에 찾아간 걸 후회하지 않는다.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며 나와 맞는 의사를 찾아 헤매느라 힘을 빼지도 않았고, 약의 부작용으로 신체적 고통을 더 겪는 일도 없었다. 의사를 찾기 위해, 약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들었기에, 나는 꽤 운이 좋은 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