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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단약을 결심하기까지 2년
항우울제, 항불안제, 수면제를 합쳐 하루에 5~6알을 먹기 시작했고, 그렇게 약 2년 동안 복용이 이어졌다. ‘항’자가 붙는 약들은 이름만 들어도 왠지 세 보였다. 하지만 이름표 없이 약봉투에 담긴 약들은 그저 노란색, 분홍색, 초록색, 파란색 알약일 뿐이었다. 잠들기 위해, 울지 않기 위해, 나의 일상을 억지로라도 이어가기 위해 나는 매일 밤 성실히 약을 삼켰다. 의사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아주 성실한 환자였다.
그때는 약의 부작용이 무엇인지 생각할 여유도 없었고, 나중에 어떻게 약을 끊을 수 있을지 고민하는 건 너무 먼 이야기였다. 당장 숨 쉬는 것조차 벅찼는데 그런 생각을 할 틈이 없었다. 다소 비약일 수도 있지만, 돌이켜보면 그때의 나는 중증외상 환자가 의사에게 ‘수술 부작용이 뭔가요?’라고 묻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그래서 나는 단약을 결심하고 시도하는 많은 분들이 처음 약을 복용할 때부터 왜 부작용을 미처 살피지 못했는지 자책하지 않기를 바란다.
약을 복용하기 시작한 초반에는 일주일에 한 번, 이후에는 2주일에 한 번씩 의사 선생님을 만났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이야기하고, 약 복용량을 조금씩 조절해 나갔다. 한 번은 약을 먹어도 무기력이 심해 견디기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요. 침대에 누워만 있어요. 너무 무기력해서 힘들어요. 몸을 움직이는 게 너무 버거워요.”
잠시 고민하던 의사 선생님은 약 하나를 더 추가해 주셨고, 그 약이 지금도 내가 끊지 못하는 가장 강력한 약이 되었다.
그때 나는 사방이 꽉 막힌 방 안에 갇힌 기분이었다. 네 벽이 점점 나를 조여오는 것만 같았다. 눈물 마를 날이 없었고, 폭식은 멈추지 않았으며 금세 체해 토하는 일도 잦았다. 머리는 늘 두통에 시달렸고, 침대에 눕는 것조차 귀찮아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기 일쑤였다.
몸과 마음이 터져버려 일상생활조차 유지하기 힘들다면, 가장 중요한 건 빠르게 수습하는 일이다. 그대로 방치하면 병원에 갈 힘조차 남지 않아 치료의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 나를 진심으로 아끼는 사람들의 위로조차 귀에만 맴돌고 마음에 닿지 않는다면, 그건 정말 위험 신호다.
“남들도 너만큼 다 힘들어.”
“너보다 더 힘든 사람들도 많아.”
“적어도 밥은 굶지 않잖아.”
이런 말을 들을 때면 나도 모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너무 약한 건가? 복에 겨워서 이런 걸까? 감사할 줄 모르는 철부지인가?’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올라왔다.
‘그래도 내 고통이 가장 힘든 거 아닌가?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가? 왜 내 상처를 이렇게 가볍게 여기는 거지?’
씁쓸함만 가슴 한쪽에 남았다.
하지만 약을 먹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나를 회복시킬 힘이 생겼다. 약에만 의지하지 않기 위해 심리상담도 시작했고, 나에게 쉼을 주기 위해 잠시 긴 휴가도 가졌다. 오랜만에 시원한 바 람을 쐬며 바깥활동도 했다.
약을 복용한 첫 3개월 동안은 터져버린 나를 수습하는 데 온 힘을 쏟았다. 일상이 무너지지 않기 시작하니 조금씩 에너지가 생겼고, 그제야 ‘이제는 나를 더 적극적으로 치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에만 의존할 수 없다는 마음에 서서히 환경을 바꿔보기로 했다. 드라마틱한 변화는 아니었지만, 내 곁에는 치유 과정을 함께해 줄 병원 주치의 선생님과 심리상담 선생님이 있어 든든했다.
응급상황이 지나고 2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나는 내 삶이 안전해졌다고 느꼈다. 나를 괴롭히던 사람들과 멀어졌고, 나를 욕하는 대신 그들을 욕할 수 있게 됐고, 다시 책을 읽을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새로운 것을 시작할 용기도 생겼다.
나는 단약을 시작하는 타이밍이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약을 복용한 2년의 시간이 오히려 약을 끊을 수 있는 힘을 길러줬다. 다만, 단약 과정이 이렇게 힘들 줄은 나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