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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이 Oct 20. 2024

#엄마9-다정하고 아늑한 세계

같은 엄마, 다른 엄마 (짧은 에세이적소설 모음집) #태초의 세계 

태초의 다정하고 아늑한 나의 세계는 엄마 뱃속이었을 것이다.

양수를 품에 끼고 손과 발을 꼼지락 거리며 내 심장소리와 엄마의 심장소리는

함께 두근두근, 콩닥콩닥, 쿵쾅쿵쾅 거렸을 테고 난 그 소리를 들으며 뱃속에서 무럭무럭 자랐을 거다. 


뱃속에 있을 때 난 부드럽고 따뜻한 양수 속에 있었을 테고

엄마는 새로운 생명을 사람들에게 축복받았겠지.


그러나 정작 


세상에 태어나는 게 내 생애 첫 마주한 곤경이었듯,

출산이라는 게 엄마 생애의 콘 곤경이었을 테다. 


태어날 때 처음 마주한 세상은 갑갑하고 차갑고 무섭지 않았을까.

따뜻한 뱃속에만 있던 내가 마주한 병원의 한기는 너무 차가웠을 테다.


엄마는 나를 세상에 내보내기 위해 몸이 찢기고 배가 갈라졌을 테지.

나는 상상만 해도 아픈 신체의 고달픔을 느꼈을 테다.






안팎으로 수없이 엄마와 내가 공유했던 기쁨과 슬픔이 우리를 연결했지만

이제 유아도, 어린이도, 청소년도 아닌 성인이 된 나. 


너는 이제 그만 독립해라, 나는 자립할 거다라고 말하는 엄마.

나는 독립할게. 엄마도 나 없이 잘 살아야 해라고 말하는 딸.


그래도 난 기억은 없지만 

엄마의 품 안에 있던 따뜻함을 감각으로 기억하나 보다. 


그래서 그럴까.

살다가 너무 힘들면

엄마 자궁 속으로  다시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엄마와 함께였던 그 순간으로 

태초의 다정하고 아늑한 세계인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래도 이제는 나는 독립해야 하고, 엄마는 자립해야 하는

두 개의 인생을 나누어 사는 우리.


나는 태초의 세계로 돌아가고 싶지만

엄마는 무겁게 느꼈던 생명의 책임감을 

다시 온몸으로 느끼고 싶진 않겠지.


그래도 나는 힘들 때, 엄마 목소리를 듣고 싶다.

그래도 나는 서러울 때, 엄마에게 하소연하고 싶다.


왜 날 세상에 태어나게 했냐고 소리쳤을 때도 있었지만

엄마와 함께 좋은 곳으로 여행 떠나 마음껏 세상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싶다. 


나의 다정하고 아늑한 세계.

자궁 속이 아니더라도 엄마와 내가 만들어간, 만들어갈 다정한 세계가

오래도록 빛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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