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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이 Dec 19. 2024

#소설 (15)최애의 호구-하루 필요 덕질 접촉량

<세 단어 습작소>(랜덤 단어 3개) 무릎, 소독, 신경질 

무릎 반사 수준의 짜증이 밀려오는 날들이었다.

하루 필요 덕질 접촉량이 부족했다.

나의 기분은 신경질적으로 갈라졌다.

그동안의 'H'에 대한 덕질이 나를 오염시킨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에 시달렸다.


'어쩌지, 나는 사람 보는 눈이 없어서 - '

'어쩌지, 나는 호구를 두는 사람이 아니라 그냥 호구였던 걸까 - '

'어쩌지, 결국 친구들 사이에서도, 덕질에서도 난 그저 들러리일 뿐이었네 - '


나의 오염된 정서를 씻기 위해 샤워를 오래 하기 시작했다.  더 뜨겁게 물 온도를 높여 몸을 지지듯이

씻고 나면 불안한 마음이 소독되는 것 같았다. 


그마저도 통하지 않는 날이면,

장기 구석구석을 소독시키고 싶었다.

왜 어른들이 알코올 향이 나는 소주를 몸속으로 들이붓는지 이해가 갔다. 




혼자만의 시간을 견디기 위해 애썼다.

특별히 내 인생이 비극적이지도, 불행하지도 않았지만

늘 하던 일들이 없어졌다.


덕친들도 사라졌다.

불꽃소녀의 계정도 폭파됐다.

스케줄 확인을 할 필요가 없었다.

H의 운세가 나의 운세인 것처럼 보던 '오늘의 운세' 따위 볼 필요가 없었다.

마음껏 팬사랑을 하기 위해, 엄마를 졸라서 만들었던 계좌.

그 계좌에 남은 돈도 2035원뿐이었다. 


덕질 유품이 돼버린 온갖 응원봉과 포토카드, 한정판 앨범들은 꺼내두지도 못했지만

그렇다고 버리지도 못하고 불태워 버리지도 못했다. 그저 택배 상장에 쓸어 넣어두고 테이프로 돌돌 감아버린 후 베란다 한쪽 구석에 넣어버렸다. 짧은 내 인생의 한구석에 처박힌 것처럼 그렇게.  


밤이 되면 선명해졌다.

자동으로 손가락에 스치던 앱, 릴스, 숏츠, 연관검색어, 알림음은

텅- 빈 공기 속으로 사라졌다.  


마음의 내비게이션이 있으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하루 필요 덕질 접촉량으로 내 일상을 채웠던 도파민들과 아드레날린이 갈 길을 잃었다고. 

아직 잔여물이 남았다고. 근데 갈 곳이 없다고. 

 

'뇌 속 시냅스의 경로가 이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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