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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한민국에도 봄은 옵니다_<서울의 봄>을 보고

by 낭만 탐정
용산, 삼각지에서...

1976년 10월 26일. 중앙정보국장 김재규가 박정희와 경호실장 차지철을 피격해. 그리고 김재규도 곧 체포되지. 국가 권력을 꽉 쥐고 있던 권력자들의 부재. 계엄령 선포. 긴 독재의 끝. 대한민국에도 민주주의라는 희망이 올 수 있을까. 우린 그 시절을 서울의 봄이라고 부르기로 해.

이상하게 학생 때부터 현대사는 참 재미없었어. 부모님이 거쳤던 일일 정도로 멀지 않은 시대인데…. 나랑은 멀게 느껴졌거든. 내가 현대사에 관심을 가졌던 건,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를 읽고 나서부터야. 글은 사람의 온전한 감정까지 닿을 수 있잖아. 그래서 다른 미디어보다 그 울림이 오랫동안 지속됐어.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군인들이 쏘아 죽인 사람들의 시신을 리어카에 실어 앞세우고 수 십만의 사람들과 함께 총구 앞에 섰던 날, 느닷없이 발견한 내 안의 깨끗한 무엇에 나는 놀랐습니다. 더 이상 두렵지 않다는 느낌, 지금 죽어도 좋다는 느낌, 수십만 사람들의 피가 모여 거대한 혈관을 이룬 것 같았던 생생한 느낌을 기억합니다. 그 혈관에 흐르며 고동치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의 맥박을 나는 느꼈습니다. 감히 내가 그것의 일부가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인용 창비/한강_소년이 온다


12월 12일, 전두환이 일으킨 군사 반란 그때, 사람들 마음속에 양심이 있었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까? 국민을 지켜야 마땅한 공직자들이 자신의 본분과 자리를 지켰더라면 군사 반란은 실패하지 않았을까? 극 중 옳고 외로운 길을 선택한 ‘이태신’ 같은 군인이 많았더라면? 그럼, 전두환이 대통령이 되지 않았을 텐데. 수많은 사람이 피를 흘리지 않았을 텐데. 생각의 꼬리를 물고 물어 그 끝을 따라가다 보면 가슴속에 울화가 치밀어 올라. 기쁨, 희열, 환희, 안정, 기대, 희망, 저의, 열정, 민주주의. 그 모든 뿌리와 동맥이 끊어져. 대의를 잃은 공직자의 나라. 그 속의 국민은 의의를 찾아 움직였어. 봄을 돌려달라고, 이 어둠을 거두자고. 씨앗은 빛이라는 걸 모르잖아. 두꺼운 껍질에 감싸져 땅에 박혀버리니까. 그런데도 씨앗은 본능적으로 빛을 찾아 모든 것을 뚫고 나와. 이상하리만큼 빛이란 걸 모르고 살아왔는데, 안간힘을 다해 저항해.

“지나고 보니 봄인 걸 알았습니다.” 요즘에 밈으로 쓰이는 말이야. 내가 익숙하게 누리던 것들, 별로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다른 것들과 비교해 보니 생각보다 괜찮았다는 의미로 쓰여. <서울의 봄>을 보고 깨달았어. 명찰 달린 교복 차림으로 촛불을 들며 광화문에 있었을 때가 진정한 ‘서울의 봄’이었다는 걸. 탄핵을 외치고 노래 부를 수 있었던 건 내 자의만으로는 불가능했단 걸 말이야. 그래서, 이 서울의 봄을 더욱더 지키고 싶어. 권력으로 사리사욕을 채우는 사람들의 행보에 노여움으로 외치고 싶어. 끊어졌던 동맥을 잇는 다리가 될 수 있다면.


서울에도 봄은 옵니다.

아니요. 대한민국에도 봄은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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