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보요님! 정말 어느덧 가을이 와버렸어요. 보요님이 말씀해 주신 귀여운 속설에 미소가 피어올랐지 뭐예요. 둔탁한 진동으로라도 저의 존재를 알아주는 생물이 있다니. 앞으로 자취를 하면 무조건 식물을 키우게 될 것 같아요. 나 혼자 있다는 그 쓸쓸함을 조금은 달랠 수 있을지도요.
보요님께서 지난 편지에서 어떻게 날씨를 구분하냐고 물으셨죠. 저에게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답니다. 첫 번째는 아침 공기입니다. 아침 7시나 8시에 밖에 나가는 순간, 딱 느껴지는 공기와 냄새가 있지요. 서늘해진 온도, 건조한 습도, 바람의 냄새. 저는 이걸로 계절의 변화를 느껴요. 심지어는 학교 다닐 때의 추억도 함께 떠올라요. 그 계절의 냄새가 느껴지는 순간, 중, 고등학생이 된 느낌이 든답니다. 학교를 졸업한 지 거의 10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요. 그리고 또 웃긴 상상을 해요. '아~ 오호츠크해의 냄새는 이런 걸까?' 하면서요.
두 번째는 영화와 드라마예요. 저는 이것을 미디어 절기라고 부르는데요. 배우 덕질을 했던 사람이라 그런지 특정 드라마와 영화를 많이 봐왔어요. nn번 한 작품도 많을 정도로요. 드라마에 담긴 계절감 혹은 그 드라마를 봤던 특정 계절의 추억에 따라 무의식적으로 해당 계절이 되면 드라마와 영화가 떠올라요. 심지어는 보고 싶은 드라마나 영화가 떠올라서 보고 있는데, 친구들이 "찬 바람 분다고 바로 보는 거 봐 ㅋㅋ"하면서 알려줄 때도 많았지요. 그럴 때마다 파블로프의 개가 딱 이런 거 아닌가 싶다니까요. 뭐, 오타쿠라면 얼추 다 공감하는 내용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 간단하게 제가 계절마다 보는 미디어를 소개해 드릴게요.
봄: 미우 404, 멋진 징조들, 슈퍼내추럴
여름: 탐나는 도다, 해피투게더, 괴물
가을: 라이프 온 마스, 비밀의 숲 2, 셜록
겨울: 비밀의 숲 1, 오페라의 유령, 에에올, 브로큰백 마운틴, 헤어질 결심, 만 분의 일초
대충 이렇습니다. 맞아요. 가을, 겨울에 좀 바쁜 여자지요. 하하. 가을, 겨울엔 칩거하는 날들이 좀 많아진답니다.
세 번째는 음악입니다. 영화, 드라마와 비슷하게 음악으로도 계절의 구분감을 느껴요. 공기가 달라지면 듣고 싶은 노래도 확 변하니까요. 인간의 본능이란 무엇인가 싶습니다. 봄에는 그렇게 끈적한 노래나 산뜻한 노래를 주구장창 들었는데, 슬슬 더운 바람 불어오면 120비트의 신나는 노래만 당긴다는 것이... 가을 겨울에는 신승훈, 김동률, 유재하와 같은 80~00년대 발라드를 자주 찾아 듣는답니다. 시적인 가사가 주는 그 감성이 있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자우림도 좋아합니다.
요즘은 날씨가 흐리네요. 추웠다가 더워지기도 하고... 오락가락하고요. 이럴 때 일수도록 몸 조심하셔야 해요! 이번 편지에는 질문을 하지 않으려고요. 다음 편지는 보요님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잔뜩 담아주세요. 후후. 별 쓸데없는 이야기라도 좋답니다. 그럼 안녕!
https://www.youtube.com/watch?v=177T7cOhn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