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감사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수제비 Jul 03. 2024

감사 18일 차 : 화를 내는 대신

7살 둘째는 잘 운다. 게임을 못 하게 할 때, 누나가 안 놀아줄 때, 잠투정할 때, 누나랑 싸울 때 등등.


첫째가 놀이방에서 블록을 통째로 갖고 나왔다. 거실바닥에 다 쏟은 후 뚝딱뚝딱 집을 만들기 시작했다. 둘째는 누나가 하는 거라면 무조건 함께하거나 따라 하는 습성이 있다. 저도 누나 옆에 앉아서 뭔가를 자꾸만 쪼물딱거린다.


아이들이 정난감을 갖고 노는 사이 아내와 소파에서 TV를 봤다. 공황장애가 너무 심해서 연기를 그만두고 무작정 제주로 떠난 연예인 가족 이야기였다. 죽을 만큼 힘든 순간이 있었지만, 서로에 대한 신뢰와 사랑,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으로 잘 극복했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훈훈한 내용에 빠지려는 찰나 울고 있는 둘째를 발견했다. 집이 만들 때 필요한 문이 두 개 있는데 누나가 모두 쓰고 있었던 것.


둘째는 훌쩍거림을 그치지 않았다. 씩씩대며 화를 냈다. 애꿎은 엄마에게 투정 부리고 인상 쓰기를 반복했다.


슬슬 짜증이 밀려왔다. 블록을 쓰레기통에 확 집어던져버리고 싶었다. 아이에게 소리치고 싶은 마음도 일었다. 누나가 해당 블록을 다 갖고 놀 때까지 기다리자는 말을 해도 둘째의 불만은 조금도 사그라들지 않았다.


화를 내는 대신 심호흡을 하며 둘째와 가만히 대화를 이어갔다. 아이로 하여금 아빠가 화를 낸다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했다. 아들은 누나에게 있는 블록이 너무 필요하지만 갖지 못해 화가 난다고 했다. 자신이 기다려야 한다고 말하는 둘째의 눈에는 서러움과 원망이 가득 맺혔다.


"그냥 너 갖고 놀아라!"


듣다 못한 첫째가 문을 동생에게 주었다. 둘째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누나에게 고맙다고 했다. 짜증과 분노를 꾹꾹 눌러가며  계속 대화를 이어나간 게 효과가 있었다. 누나 옆에서 함께 집을 만들던 둘째는 빠르게 평정심을 되찾았다.


3학년인 딸아이는 친구들과 노는 걸 더 반기지만 둘째는 아직 누나와 노는 게 가장 즐거워 보인다. 그래서 둘째가 가끔 질투하거나 투정 부릴 때가 있다. 자신은 누나와 더 놀고 싶은데 누나의 관심은 자신이 아닌 다른 곳을 향하니까.


왜 나만 항상 양보해야 하냐고 툴툴대면서도 동생과 잘 놀아주는 첫째에게 늘 고맙다. 사실 자주 오늘 같은 위기를 느낀다. 그래도 언제 그랬냐는 듯 둘이 노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최강의 조합을 자랑하는 현실판 흔한 남매라는 느낌이 든다.


아이들의 행동에 짜증과 분노로 반응하지 않아서 참 다행이었다. 화를 내고 잔소리하는 아빠보다 서운한 마음을 털어놓고 싶은 아빠가 되었으면 좋겠다.


둘은 결국 멋진 집 한 채를 완성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감사 17일 차 : 교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