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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수제비 Jul 13. 2024

빈 껍데기 사랑

어떻게 사랑이 그래요

지금까지 가장 감사한 것 중 하나는 양가 부모님의 살아계심이다. 대학을 나와서 직장생활을 하고 결혼을 해서 자녀를 갖기까지, 그들은 존재 자체만으로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다. 주말마다 손주들을 향해 웃는 부모님의 미소를 보며 충분히 남부럽지 않은 삶이라 여겼다. 비록 그들이 하루가 다르게 야위어가고 병원을 가는 횟수가 늘어났지만, 누구나 나이를 먹으면 나타나는 삶의 모습이라 생각했다.


오늘은 장인어른의 생신이었다. 치솟는 물가에 못 미치는 얇은 용돈 봉투를 챙겼다. 간단히 용돈만 드리려고 했는데 장인어른과 장모님을 모시고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다. 첫째가 국밥이 먹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는 바람에 장인어른이 원하는 곳이 아닌 딸아이가 바라는 국밥집에 갔다. 좀 더 격식 있는 공간이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행히 처가 어른들은 맛있게 잘 드셨다.


장모님은 한사코 자신이 계산을 한다며 밥이 나오기도 전에 계산을 해버리셨다. 누가 계산을 해도 상관이 없지만 먼저 밥을 먹자고 했으니 직접 계산을 하셔야 한다고. 매번 생일마다 챙겨드리는 티끌만 한 용돈조차 부담이 되었을까. 고작 1년에 2~3번 생일과 명절 때 드리는 형식적인 용돈보다, 매번 손주들에게 챙겨주시는 용돈이 더 많은 것 같은데.


일흔을 바라보는 장모님과 이미 70을 넘긴 장인어른은 아직까지 일을 하신다. 장모님은 적지 않은 연세임에도 어떻게든 일자리를 찾아내 노동을 이어간다. 장인어른은 작은 옷수선가게를 운영하신다. 큰 벌이는 아니지만 두 분 모두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건강한 정신과 육체를 갖고 있다.


벌이의 크기와 상관없이 일을 한 다는 것은 큰 위안을 준다. 지방소멸과 고령화의 물살에 떠내려가지 않고 당당하게 땀 흘려 번 돈으로 삶을 영위하는 것은 자신에게도, 다른 사람에게도 뭔가 든든한 느낌을 준다. 별다른 큰 변수가 없다면 언제까지고 장인어른과 장모님께서 지금처럼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내 부모님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건설현장에서 수십 년 육체노동을 한 아버지는 몸과 마음이 많이 망가졌다. 돈을 벌기는커녕 하루를 무사히 보낼 수 있다면 감사할 따름이다. 어머니 또한 일을 할 수 있는 몸의 상태가 아니다. 장애인이 된 아버지를 챙기는 돌봄 노동과 가사노동만으로 충분히 벅차 보인다.


문득 양가 부모님의 삶에서 차이를 발견한다. 비슷한 연배지만 경제활동을 하는 장인어른, 장모님과는 달리 대학병원 진료와 투약이 일상인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서. 새해가 밝을 때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는, 건강하고 오래 사시라는 인사와 덕담이 낯설게 느껴진다. 나는 정말로 부모님들이 살아계신 것 만으로 감사한 것일까. 저들의 신체 컨디션과 경제활동 여부와 상관없이 존재 자체로 저들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을까. 어떤 형태로든 나와 내 가정에 도움이 되는, 아니 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부모님에게 감사와 존중의 마음을 느끼는 건 아닐까.


40년 전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두 자녀의 아빠가 된 지금까지 나를 향한 부모님의 사랑은 한결같다. 밥은 먹고 다니는지, 어디 아프지는 않은지 늘 걱정뿐이다. 노인이 된 당신들보다 내 건강을 더 챙긴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부모님이 나를 미워한다거나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느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자녀를 향한 부모의 태도는 한결같은 일방통행이다.


변한 건 나 자신이다. 실속 없는 빈 껍데기 같은 내 사랑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 입으로는 사랑한다고 하면서, 그저 오래 사시기만 하면 좋겠다고 하면서 속으로는 '사랑을 위한 조건'을 따지고 있다. 오래 사는 것보다는 건강했으면 좋겠고, 그럴 가능성이 희박하지만 재정적으로도 지금보다는 더 나아졌으면 좋겠고, 갑자기 크게 아파서 내 시간과 물질이 많이 투입되는 그런 상황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 건 아닌지.


결국 내가 바라는 관계는 내가 편할 수 있는 형태인 것일까. 친구나 직장 동료가 아닌 부모라 할지라도, 어떤 형태로든 내가 불편하고 부담해야 할 것이 없는 그런 관계, 달리 말하면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언제든지 돌아설 수 있는 관계, 마음만 먹으면 남이 될 수 있는, 그런 관계.


뭐가 맞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부모님을 향한 나의 태도가 건강하고 바람직하지 않은 것 정도는 느껴진다. 저들은 아무런 조건 없이 나를 사랑했고 나에게 모든 것을 주었다. 그것은 분명 사실인데, 머리와 가슴으로 이미 알고 있는데, 내 삶은 갈수록 이기적이고 황폐해져 간다.


알고 있다. 언제까지고 부모님의 얼굴을 지금처럼 볼 수 없다는 것을. 후회하지 않는 삶 같은 건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래서 더 늦기 전에 배우고 싶다. 상황과 조건을 따지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는 방법을. 내가 불편하고 힘이 들더라도 한결같이 끌어안을 수 있는 마음을. 상대가 변해도 나는 변하지 않는, 일방통행의 삶을 살아가는 방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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