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의 표정이 어둡다. 직업 특성상 주말과 휴일이 온전히 보장되지 않기에 자녀들에게 아빠는 늘 '일 하는 사람'이다.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학교와 유치원은 잘 다녀왔는지 묻기에는 아빠의 몸은 이미 천근만근이다. 바닥까지 내려온 아빠의 다크서클에 아이들의 눈은 자연스레 아빠가 아닌 TV를 향한다.
퇴근 이후 직접 자녀들의 학업을 챙겨주는 아빠, 억대 연봉이라는 비상한 능력을 보유한 아빠, 주말이면 산과 바다로 가족과 함께 캠핑을 떠나는 아빠는 나와는 거리가 멀다. 쉴 새 없이 노동으로 점철된 삶을 살면서 저런 에너지는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돈이 많으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결혼을 하고 두 아이의 아빠가 되면서 삶이 단순해졌다. 대출을 갚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하고 또 일했다. 몸 여기저기가 고장 나기 시작했고 마음 한 구석에 구멍이 뻥 뚫린 것처럼 자주 공허했다. 힘들지만 다들 이렇게 하루하루를 살 거라 생각했다.
가장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경기가 나빠지면서 직장인들은 나뭇잎처럼 우수수 떨어져 나갔다. 좁은 취업문을 운 좋게 통과한 후 어떻게든 버티다 보니 아직까지는 월급쟁이의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언제까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 막연한 두려움이 점점 쌓여간다. 자연스레 자녀들에 대한 바람 또한 내 삶처럼 단순해짐을 느낀다.
'아이들이 공부를 잘해서 조금이라도 더 넉넉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나와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을 하지만 정작 자녀들의 얼굴을 볼 겨를이 없는 삶을 살아간다 ⓒ 픽셀
하지만 '성공적인 자녀의 미래'에 대한 집착이 커질수록 부모와 자녀의 삶은 더 팍팍해짐을 본다. 좋은 학군을 위해서라면 수억 원의 대출도 마다하지 않고 거주지를 옮기는 것은 부모의 능력이자 자녀에 대한 사랑으로 비친다.
비싼 학원비를 벌기 위해 부모는 투잡도 마다하지 않는다. 부모는 굶어도 되지만, 자식은 어떻게든 좋은 것을 먹인다. 학원뺑뺑이와 선행학습에 익숙해진 아이들 또한 부모의 간절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초인적인 집중력을 발휘한다.
마치 가족 전체가 암묵적인 합의를 한 것 같다. 인내는 쓰나 그 열매는 달다는 말이 있듯이, 힘든 학업의 과정을 거치면 의대와 전문직이라는 다디단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고. 30년만 눈 딱 감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죽도록 공부하면 남부럽지 않은연봉과 사회적으로 안정된 위치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그런데 그렇게 해서 힘들게 목적지에 도달한 자녀는 과연 행복할까?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인생>
육아휴직 이후 복직을 하며 연고지가 아닌 다른 지역으로 발령을 받았다. 5개월 간 가족과 떨어져 지내며 난생처음 기러기 아빠가 되었다. 퇴근 후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지만, 아직 어린아이들이 자꾸 눈에 밟혔다.
하루에 5분 영상통화를 하고 주말에 잠깐 가족을 보는 삶이 이어졌다. 아이들을 볼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면서 예전처럼 딸아이가 수학 문제를 몇 개 틀렸는지, 오늘 하루 핸드폰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같은 것에 크게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되었다.
대신 두 자녀가 오늘 하루도 건강하게 잘 있는 것만으로 감사했다. 비록 많은 대화를 하지 못했지만 멀리 있는 아빠를 응원하는 자녀들로 인해 객지 생활을 잘 견딜 수 있었던 것 같다.
자녀들은 존재 자체만으로 큰 힘이 된다. ⓒ손수제비
10살 딸아이는 가끔 삶이 두렵다고 한다. 엄마 아빠도 나이를 먹으면 언젠가는 죽게 될 텐데, 부모님 없이 살아갈 자신이 없다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처럼 전쟁이라도 나면 사랑하는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소멸되는 건 아니냐고. 아빠가 지치지 않게 해달라고 매일 기도하지만 아빠가 건강을 잃지는 않을지 신경이 쓰인다고.
딸아이에게 내 생각을 다 말하지는 않지만 늘 걱정이 되고 미안한 마음이다. 우리는 물질의 풍요는 넘치지만 정서적으로는 빈곤한 시대를 살아가니까. 약자와 소수자가 충분한 보호를 받지 못하는 나라, 시내 한복판에서 이상동기 범죄가 버젓이 발생하는 국가에 살고 있으니까.
바쁜 삶 속에서 무엇이 좋은 아빠인지 자문한다. 지금처럼 단순히 돈을 열심히 버는 것만이 정답은 아닐 텐데. 경쟁과 공허함이 가득한 세상에서 어떻게 아이들을 가르치고 양육해야 할지 늘 고민이다.
<부디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얼마 전 딸아이가 생활통지표를 건넸다. 내가 초등학생 때 받은 성적표에는 '수우미양가'라는 평가가 있었는데, 요즘은 '잘함, 미흡'과 같은 단어로 표현되어 있었다. 딸은 의외로(?) 대부분의 영역에서 우수한 지표를 받았다. 단 하나, 수학을 제외하고서.
통지표를 보며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음에도 아빠의 잔소리를 예상했다는 듯 딸은 우렁차게 말했다.
"아빠, 나은이가 체육은 우리 반 1등이야! 선생님이 다른 것보다 몸이 튼튼한 게 제일 중요하다고 그랬어!"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담임선생님에게 많은 공감이 되었다. 자녀들이 밝고 건강하게 자라는 것이 언제나 1순위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자녀들이 맞이할 미래는 지금보다 더 암울하지 않을까? 전쟁과 기후위기, 저출생과 고령화, 일자리, 자살, 각종 중독 등 총체적 난국이 예상된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이 언제든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다른 무엇보다 건강한 몸과 마음이 꼭 필요하다고 믿는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 자녀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손수제비
덧붙여 평소 자녀들에게 '관계'를 강조한다. 내가 소중한 것처럼 다른 사람도 똑같이 소중하다는 것을 가슴에 꼭 새기라고. 자녀들이 다른 사람을 함부로 대할 때는 엄격하게 꾸짖는다. 엄마에게 버릇없게 말을 하거나 친구에게 나쁜 행동을 할 때, 선생님에게 인사를 제대로 하지 않거나 예의 없는 행동을 할 때면 아이들은 아빠의 폭풍잔소리를 각오해야 한다.
나를 진정으로 사랑해야 다른 사람을 제대로 사랑할 수 있는 법이다. 자녀들이 스스로를 탓하거나 미워하지 말고 자기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바란다.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좋지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아이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갈수록 각자도생이 강제되는 세상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씩씩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그런 자녀들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