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인지 가을인지 바람은 시원하다 추워지고 햇살은 뜨거워지다 금세 식어버리는 요즘 낙엽은 물들지 않아 초록의 잎을 바라보며 바닥에 떨어진 은행열매들을 피해 걷다 보면 어딘가 이질적인 기분이 들어온다.
때에 맞춰 변하고 준비해야 하는데 너무 조급한 마음에 떨쳐낸 나의 열매들이 바닥에 떨어져 허무해지는 혹은 피해야만 하는 것들로 변해버린 모습을 바라볼 때면 고통스럽기보단 지금의 계절처럼 이질적인 느낌이 들어온다.
궁상맞게 느껴지지만 어떡하겠는가? 마음이 이렇게 외치는데 그것을 무시하는 것은 너무나 많이 해왔기에 조금은 들어봐도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변화에 너무나 많은 집착을 해왔다.
그렇게 아무런 준비도 없이 결과만 뿌리면 변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왔다.
솔직하게 말하면 과정이 두려웠다.
다른 누군가의 노력에 너무나 큰 벽을 보았고 그 아래 그늘진 어둠 속에서 주저앉아 울기도 했다.
헌데 지금생각해 보면 부질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고개를 들어 올려 보이는 것은 어둠 속에서 잔뜩 상처 난 내 모습, 사방에 터져나간 이름 모를 열매들의 것들. 익숙했다.
그뿐이었다.
이토록 외롭고 잔인한 곳에 있는데도 느껴지는 것이라곤 익숙함이라니..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어이가 없었다.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서성거렸다.
형채를 알 수 없을 정도로 터져버린 것들을 바라보았다.
이상하게도 씨앗이 없는 열매들.
아.. 이건 부러움이었던 것 같다.
어.. 이건 질투였지, 아니네 자세히 보니 더욱 진한 감정이구나
아... 이것들 모두 내가 던져버린 나였구나.
씨앗 없는 껍질들. 간신히 열매의 모습을 하고 있는 껍데기들.
이 마저도 익숙함이 들었다.
그늘에서 나왔다.
바닥에 떨어진 열매들을 어둠 속에 묻어두고 저 아래 가장 깊은 어둠 속에 앉아있던 그곳도 묻어두고 왔다.
익숙하지 않은 기분.
어색하다.
그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