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콤달콤 맛있는 커피를 내어주는 따뜻한 공간
프릳츠에서 느낀 일본의 친절함
양재역 뒷골목엔 프릳츠 커피 3호점 매장이 자리 잡고 있다. 프릳츠의 존재를 모른다면 이 옹골찬 벽돌건물은 얼핏 옛날 목욕탕처럼 보이기도 한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오른편으로는 지하와 2층으로 갈 수 있는 계단이, 왼편으로는 크고 빛나는 은색 커피머신이 있다. 그 너머에는 환한 미소로 손님을 맞아주는 바리스타의 얼굴이 빼꼼 보인다. 그들의 환한 미소를 보고 있자면 잠깐동안 내가 이 사람과 알고 있는 사이였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 무더운 여름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기 전부터 기분이 좋아졌다.
예전에 일본을 다녀온 친구한테 일본 여행 중 어떤 게 가장 좋았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돌아온 대답은 '다들 지나치게 친절한데 그 과도한 친절함이 좋더라'였다. 친구는 유명한 맛집을 가도 가게 사장님이 친절하지 않으면 다시는 가지 않았다. 아마 욕쟁이 할머니의 음식은 아무리 맛있대도 절대 가지 않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나도 그랬다. 음식 맛이 조금 부족해도 응대가 친절하다면 재방문하기도 하고, 반대로 정말 맛있는 음식을 내주어도 반말을 하거나 응대가 퉁명하다면 잘 가지 않게 됐다.
프릳츠의 응대는 친구의 설명처럼 '과도하지만 기분 좋은 친절함'같았다. 과도하다고 느낀 이유는 한국에서 잘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며, 기분 좋은 건 사람은 누구나 대접받기를 바라기 때문일 것이다. 친절한 태도는 상대방에게 '널 존중해'라고 말해주는 것과 같다. 카페 공화국이라 불리는 이 시대에 맛있는 커피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느꼈다.
스페셜티 커피의 숨은 의미
커피 산업에도 '제3의 물결'이 있다. 제1의 물결에서는 '인스턴트 커피'가 등장하면서 누구나 쉽게 커피를 마실 수 있게 되었고, 제2의 물결에서는 스타벅스 같은 '프랜차이즈 커피숍'이 에스프레소를 활용한 커피의 베리에이션(Variation)을 주도했다. 그리고 제3의 물결은 '스페셜티 커피'란 용어가 쓰이기 시작하면서 소비자가 원산지부터 로스팅, 풍미까지 고려해 스스로 좋은 커피를 찾아가는 시기이다.
스페셜티 커피라는 말은 미국의 스페셜티 커피 협회(SCAA)에 의해 시장에서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그들이 제공하는 일종의 커피 점수표(원산지, 가공방식, 풍미, 향 등)에 따라 100점 중 80점 이상을 얻으면 '스페셜티 커피'라 부를 수 있다. 스페셜티 커피란 대개 '맛있는 커피'를 위해서 사용되기도 하지만, 힘들여 토양을 관리하고 공들여 가공하는 '생산자의 노력'에 올바른 값을 매겨주기 위함이기도 하다.
***처음 스페셜티 커피란 단어를 가장 먼저 사용한 사람은 에루나 크루첸 여사(1921-2018)다. 1974년 티&커피 트레이드저널(Tea&Coffee Trade Journal)과의 인터뷰에서 그녀가 소싱하고 판매하는 원두를 언급하기 위해 처음으로 사용했다.
프릳츠는 친절함을 따로 놓고 보더라도 좋은 커피를 내리는 카페로 유명하다. 여기서 좋은 커피란 커피의 '생산과정'과 '맛'을 모두 신경 쓴다는 의미다. 프릳츠는 코스타리카 농장에서 원두를 직거래하고 있다. 덕분에 원두의 품질을 처음부터 관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생산자에게 정당한 값을 지불하고 원두를 매입하는 지속가능한 커피시장을 만들 수 있다. 물론 원두를 볶아 맛있게 내리는 바리스타의 실력도 중요하다. 하지만 씨앗을 흙에 뿌리고, 열매를 수확해서, 햇볕에 잘 말리는 생산자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좋은 커피를 맛볼 수 없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새콤달콤 맛있는 커피와 따뜻한 사람들
프릳츠 양재점에서 먹은 ‘서울시네마’ 원두는 신선한 과일을 추출한 것 같았다. 입술에서 느껴지는 쥬시한 질감과 다양한 과일향에서 느껴지는 신맛과 단맛의 균형이 훌륭했다. 단, 커피의 신맛을 좋아하는 분들에게만 추천한다. 고소하고 쌉싸름한 커피를 좋아한다면 '블랙독' 원두가 더 좋을 것이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면 스테인리스컵에 얼음과 함께 서빙된다. 2시간 동안 책을 읽으면서 마시더라도 끝까지 시원한 얼음과 함께 커피를 즐길 수 있다. 또 에스프레소를 주문하면 탄산수를 같이 내어준다. 탄산수가 혀에 미뢰를 깨어 커피의 맛을 더 잘 느끼게 해준다고 한다. 혹시나 이를 못 느끼더라도 그냥 사소한 배려심이 좋지 않나.
한 가지 아쉬운 점을 꼽자면 기계가 내리는 '브루잉 커피'다. 프릳츠에서는 머신으로 내리는 '에스프레소'와 드립 방식으로 내리는 '브루잉 커피'를 고를 수 있다. 난 바리스타 분이 직접 내려주는 모습을 기대해서 브루잉 커피를 선택했지만 그건 아니었다. 뜨거운 물을 위에서 부어 브루잉 커피를 만드는 기계가 따로 있었다. 최근에 여러 카페에서 이같은 브루잉 기계를 많이 볼 수 있는데 아마 인건비 절감과 편리함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크림 도나쓰부터 나무 바닥까지 모든 것이 레트로를 추구하는 프릳츠와는 조금 결이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프릳츠는 그들의 세계관을 느끼기 위해 기꺼이 가볼 만한 카페다. 프릳츠는 바리스타, 로스터, 제빵사 등 6명이 공동창업했다고 하는데 그들의 뜻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밝은 미소를 띠며 손님을 맞고 커피를 내리는 바리스타에게서, 2층의 베이커리 작업장에서 흘러나오는 빵 냄새를 남겨놓고 당당하게 퇴근하는 제빵사에게서 행복함이 느껴진다. 따뜻한 열정이 느껴지는 공간에서 맛있는 커피와 빵을 먹을 수 있다는 건 소비자에게도 행복한 일이다. 그들의 노동이 열정만큼 보답받고 인정받을 수 있도록 계속 프릳츠의 공간이 남아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