짭짤한 감칠맛과 화려한 비주얼의 프랑스 샌드위치
만약 죽을 때까지 한 음식만 먹어야 한다면? 나에게는 그 음식이 샌드위치였으면 좋겠다. 치아바타, 햄, 치즈, 야채를 모두 먹을 수 있다는 영양학적인 관점의 접근이 아니다. 그저 샌드위치를 한 입 물었을 때 갖가지 재료들의 조화로운 맛이 좋다. 이런 나에게 서브웨이, 퀴즈노스를 잇는 새로운 최애 샌드위치 집이 나타났다. 바로 LINA'S(이후 '리나스' 표기)다.
리나스 샌드위치는 1989년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된 샌드위치 브랜드다. 2002년 SPC가 마스터 프랜차이즈의 형태로 국내에 들여온 뒤 지난해 6월 브랜드 전체를 인수했다. 마스터 프랜차이즈란 프랜차이즈의 한 형태로서, 사업자가 해외에 직접 진출하는 대신 현지 기업에게 가맹 운영권을 양도하는 방식이다. 리나스 입장에서는 SPC가 현지기업인 셈이다. 그런데 마스터 프랜차이즈의 중간가맹자였던 SPC가 오히려 리나스를 역인수를 했다.
SPC의 입장에 따르면(*SPC 평택 공장 사망사고와 별개로 LINA'S의 브랜드 색깔을 바라보자.) 리나스를 '샌드위치 및 샐러드 R&D 허브’로 만들어 국내외 SPC그룹 주요 브랜드에 적용하겠다고 한다. 30년간 프랑스에서 쌓아온 기술력과 노하우를 높이 평가한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 빵집에서 구워준 샌드위치
리나스 샌드위치를 처음 접한 건 강남역 매장이다. 겉에서 보기엔 5평 남짓한 아담한 매장이다. 간단히 점심을 때우기 위해 문을 열고 들어갔다. 깨끗한 백색조명 아래로 빛나는 화려한 색감의 샌드위치와 샐러드가 눈에 먼저 들어온다. 그 다음은 밝은 우드 인테리어가 푸른 채소들과 대비되어 어느 활기찬 프랑스 빵집에 들어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눈으로 먼저 먹는다는 말을 이럴 때 쓰는 건가? 아니면 어때, 이미 첫눈에 반했다.
샌드위치를 주문하면 빵을 즉석에서 토스팅해준다. 단순히 이 배려만으로도 갓 만든 샌드위치 맛이 난다. 주로 포장을 하는 나는 다른 샌드위치 집에서 만들어진 샌드위치를 포장해 오면 재료들이 차가운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리나스는 이런 아쉬움을 보완해 준다. 주문이 들어오는 즉시 빵을 토스팅해서 주기 때문에 겉은 따뜻하면서 바삭하고, 속의 신선한 재료들은 차가워서 신선한 느낌을 준다. 샌드위치계의 겉바속촉이랄까. 그리고 파니니 종류는 조금 더 세심한 배려가 더해진다. 파니니에는 주로 치즈가 들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포장 시에 알루미늄 은박지(우주에서 온 듯한 고급스러운 포장지였는데 내 표현의 한계다)에 싸서 그 온기가 유지시켜 치즈가 굳지 않게 만든다.
속재료,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
먹음직스러운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 물면 잊고 있던 에버랜드 생각이 난다. 대학교 2학년을 마치고 잠깐 휴학했을 때 에버랜드 놀이공원 안에 있는 샌드위치 카페에서 일한 적이 있다. 내가 일한 지 얼마 안 되어 샌드위치 만드는 법을 배울 때 나를 가르쳐주던 사람이 분명 이렇게 말했다. "속재료 쌓는 순서가 원래는 가장 먼저 이걸 쌓고, 그다음은 이거, 마지막에는 이거야. 왜 그런지는 몰라. 나도 그렇게 배웠어." 마치 군대 선임이 말하던 "그냥 이렇게 해 인마, 나도 몰라"같은 말이었다. 기시감마저 들었다. 분명 행동의 이유가 있었고 응당 그렇게 해왔지만, 점차 이유는 퇴색되고 행동만 남는다. 당시에 샌드위치 쌓는 순서보다 실수 없이 주문을 쳐내는 게 중요했던 우리였다. 자연스레 손님의 주문 번호만 남고, 샌드위치 속재료 간의 서열은 사라졌다.
그렇게 몇 해도 묵은 용인시 처인구의 기억이 서울특별시 강남구에서 떠올랐다. 리나스의 샌드위치 때문에. 분명 안에 들어간 속재료는 에버랜드와 크게 다르지 않는데 맛이 풍성하게 느껴졌다. 무언가를 깨달은 사람처럼 샌드위치를 뒤집었다(이때 먹은 샌드위치는 '클럽 리나스 1989 샌드위치'였다). 그리고 다시 베어 물었다. '아 순서가 상관이 있구나!' 처음에 쌓여있는 순서대로 먹었을 때는 야채들의 신선한 식감과 햄의 조화로움이 느껴졌다면, 뒤집어서 씹었을 때는 야채의 식감이 뭉그러지고 햄, 치킨, 베이컨의 단백질 맛이 느껴졌다. 신기해서 몇 번을 뒤집으면서 먹었다. 어떤 것이 맞다는 건 없다. 누군가는 맥도날드의 슈비버거를 좋아하고 또 어떤 사람은 쿼터파운드치즈버거를 좋아한다. 중요한 건 쌓는 순서에 따라 맛이 다르다는 거다. 리나스는 당연히 이걸 알고 만들겠지?
나는 리나스의 메뉴 개발자도 마케터도 아니다. 그냥 뜻밖의 깨달음을 몇 년 만에 얻은 사람이자 샌드위치를 좋아하다 보니 리나스의 매력을 알게 된 소비자이다. 짭짤한 감칠맛(리나스 샌드위치는 대체로 기본 이상의 간이 있다. 그래서 맛있는 거 같기도)을 가진 샌드위치를 맛보고 싶다면 근처에 리나스를 찾아보자. 아니면 당신이 죽을 때까지 먹고 싶은 음식을 생각해 보고 지금부터 더 사랑해 보는 것도 좋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