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상일기 #007
1992. 12.24
그때의 나는 분명하게 크리스마스를 좋아하는 인간이었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어쩐지 들떠 있는 사람들. 몇 해 듣지 않았음에도 어느새 익숙해진 거리의 음악들. 잔뜩 상기된 텔레비전 속 음성들이 하나같이, 오늘은 괜찮은 날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 모든 것들이 하나같이, 지금 크리스마스를 싫어하는 이유가 되었지만.
올해 선물 받을 수 있지?
어쨌거나 그게 유일한 관심사였다. 그래도 되는 선물 같은 날이었다, 라는 기억이다. 조숙한 편이었다고 생각하지만 비교적 늦게까지 산타의 존재를 믿었던 여섯 살의 나는 걱정이 되어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의 대답은 매년 같았다. 모르지. 네가 말을 잘 들었으면 받는 거고, 아니면 못 받는 거야. 글쎄 원체 자주 몸이 아팠던 터라 이따금 부모님의 속을 태우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산타란 사람은 어느 정도는 정상참작을 할 줄 아는 모양이었다. 작년에도, 그전 해에도 선물은 빠짐없이 내 머리맡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예외적인 상황들을 제외한다면 나는 대체로 고분고분했고, 뭣보다 신경을 끄고 있노라면 옆에 있는지도 모를 만큼 얌전한 편이었다. 그러니까 올해도 특별한 결격사유는 없는 셈이었다.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어 천장 벽지의 패턴 속 미로를 헤맸다. 잠이 쉬이 오지 않는 밤엔 항상 손으로 꾸물꾸물 그 의미 모를 복잡한 패턴을 따라 그리며 시간을 보내곤 했었다. 삼십 분. 길이 끊겼다. 순간적으로 가던 길을 벗어나 버렸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 한 시간. 그런데 산타 할아버지는 대체 어떻게 굴뚝도 없는 아파트에 들어온단 말인가. 한 시간 반. 양말을 제대로 걸어 두었던가? 분명하다. 눕기 직전 트리에 걸어 둔 것을 기억하고 있다. 두 시간. 여전히 아무런 기척이 없다. 이러다 그냥 선물 없는 크리스마스가 되어 버리는 건 아닌가? 불안감이 커지고 있을 무렵,
덜그럭 덜그럭. 철컥.
기다렸던 금속 마찰음이 적막을 깼다. 결국 산타도 별수 없구나. 오래전부터 굴뚝을 타던 산타 역시 대 아파트의 시대에 이르러서는 방식을 바꾸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무슨 수로 우리 집 열쇠를 얻었는지 모르겠지만 산타란 원래 그런 게 아닐까. 하지만 사슴은, 루돌프는 어디에 두고 왔단 말인가. 그런 걱정을 하던 순간 터벅터벅 무겁고 느린 발자국 소리가 내 방을 향했다. 눈을 질끈 감았다. 깨어 있는 것을 들킨다면 앞으로의 크리스마스는 정말로 선물 없이 맞이해야 할 것을 알기에, 나는 사력을 다해 자는 연기를 했다. 산타는 침대에 걸터앉아 나를 잠시 내려다보는 듯하더니, 부스럭 소리가 나는 선물 꾸러미를 내 머리맡에 놓아주었다. 이윽고 내 얼굴을 쓰다듬는 손길. 아직 한기가 떠나지 않은 그 손에서는 익숙한 냄새가 났다. 나는 조심스레 실눈을 뜨고 산타를 확인했다.
눈앞엔 미국 출장을 마치고 돌아온 아빠가 있었다. 그럼 산타는? 사슴은? 작고 복잡한 마음을 짐작조차 하지 못한 채 아빠는 어느새 따라 들어온 엄마와 키득거리며 속삭이고 있었다. 눈을 뜰까 말까. 벌떡 일어나서 산타는 어딨느냐 따져 볼까 어쩔까. 고민하던 다음 순간 아빠는 내 이마에 입을 맞추며 작게 말했다.
사랑한다 아들.
그 겨울 나는 산타가 없다는 걸 알아 버린 인간이 되었지만, 생각했다. 정말이지 산타 같은 건 없어도 좋다고.
아빠의 손에 남아 있던 한기가 사라졌다. 나는 그냥 잠들기로 했다. 엄마와 아빠가 나의 크리스마스를 지켜 주었듯, 나 역시 그들의 크리스마스를 지켜 주고 싶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