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병상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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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에 대한 집착

병상일기 #005

by 자크 Feb 25. 2025


아침이면 잊었지만 거의 매일 밤 꿈을 꾸었다. 조그만 눈엔(여전히 작음) 모든 것이 신비함 그 자체였다. 보이는 것에 대해 묻고 싶었고,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듣고 싶었다. 무엇에 대해서든 간에 나는 이야기를 들려줄 누군가가 간절했다. 하지만 내겐 그만한 사람이 없었는데, 이것이 너무 속상해 나는 언제나 공허한 기분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아홉 살이었고, 내게는 젊은 시절 친구들과의 무용담을 뽐내듯 이야기해 줄 누구도 없었다. 아마도 내가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나는 활자를 통해 지식을 얻고 싶었던 것은 아녔고 다만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때로는 이해될 수 없는 개인의 어떤 성향이나 기호가 무언가의 결핍으로부터 비롯되기도 하는 것이다. 수업이 끝나면 곧장 도립 도서관으로 달려 가 할머니가 준 오백 원으로 육개장을 사 먹고는, 사서 선생님 옆 창가에 앉아 한숨 낮잠을 잤다. 그리고 만화 방영이 시작되는 6시까지 책을 읽는 게 일과였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책들을 닥치는 대로, 마치 들으란 듯이 소리 내어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이따금 감동적이야! 하는 감탄을 지껄이고는 내심 만족하기도 했다. 어느새 지독하다 할 만큼 나는 이야기에 집착하는 종자가 되어 있었다. 베갯머리에 놓인 이야기 한 편을 다 읽어 내야만, 누군가의 그 서사에 마지막 마침표가 찍힌 것을 보아야만 안도감에 잠이 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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