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상일기 #004
(2부에서 이어짐)
7년 전 예고 없이 공황의 증상들이 손을 맞잡고 찾아왔을 때에 어쩌면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이제야 왔구나. 분명 그런 느낌이었다. 뜬금없이 신경을 살살 건드는 이 흉부 통증과 잦은 기침은 즉 폐암이다, 무른 변이라도 보는 날엔 대장암이다, 그렇게 때마다 최악을 말해 왔었지만 이번에야말로 진짜였다. 행복해 보이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는데. 암 수준의 중증질환에 대해선 항상 생각해 왔는데.
유난히(라고 표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정말이지 유난히도) 무더웠던 그해 여름 아스날은 여전히 4위였고, 나는 거슬거슬한 셔츠 칼라를 찢어 던지고 싶을 만큼 짜증이 났었고, 몇 년 간 엄마의 대출금을 대신 갚는 데에 지칠 대로 지쳐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죽고 싶었다. 줄도 서지 않고 성난 채 농성 중인 바이어의 이메일 50통 정도를 멍하니 바라보며 사는 게, 차암. 이라고 실제로도 중얼거렸던 기억이다.
날카로운 무언가로 꾹 누르는 듯한 두통이 이틀 정도 지속되던 어느 날, 이거 혹시 뇌종양? 하는 메시지와 함께 웨에에엥 최악 알람이 작동했다. 이내 기다렸다는 듯 회로를 타고 증상이 번져갔다. 멀찌감치서 진양조 장단 북소리가 나는가 했더니 순식간에 귓전까지 다가와 달팽이관을 사정없이 두들겼고, 뒤통수는 만근 추라도 매달아 놓은 양 무거워 고개를 돌릴 때마다 쓰러질 듯 어지러웠다. 병원에 가야 돼. 푹푹. 걸음마다 푹. 바닥이 푹. 꺼졌다. 갯벌 위를 한참 걸어 대학병원 응급실 문을 여는 순간 나는 이미 뇌종양을 확진받은 남자였다.
두 번의 MRI 촬영 끝에 내 뇌엔 어떤 이상도 없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교과서에 실어도 좋을 만큼 예쁜 모양의 뇌를 가졌다는 사실도 덤으로 알았고. 이외에도 숱한 검사를 해 보았지만 소견은 같았다.
아무 문제없어요. 운동하시고, 사람들 많이 만나세요.
그 차분한 음성이 도리어 몹시 불안해졌다.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해도 말이죠. 이렇게 아픈데 문제가 없다니 그거야말로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황당하지만 그렇다고 사는 게, 차암. 하고 넘어갈 수 있는 일도 아니고. 답답한 맘에 그럼 전 왜 아픈가요, 다시 물으려다 그만두었다. 빙긋 웃는 젊은 의사의 매끈한 피부가 너무 눈부신 나머지, 그 확신에 찬 진단이 너무 엄중한 나머지 그만 기력이 쭉 빠져 버렸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이름 없는 채로 태어나서 그 무렵까지의 삶을 다시 살아 보았다. 더러 실수를 했고, 의도치 않게 상처를 주는 일도 있었지만 크게 잘못 살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증상은 반복되었고 더 이상 일할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시도 때도 없이 어지러워 식은땀으로 샤워를 하는가 하면, 사방의 벽이 조금씩 좁아져 나를 짓누를 것 같은 공포감을 느끼곤 했다. 원래도 없던 말수가 극단적으로 줄었다. 잠들지 못하는 밤들이 이어졌지만 잠깐씩 지쳐 잠이 들 때면 꿈을 꾸었다. 나는 입인지 코인지로부터 하염없이 실을 뽑아내 어둡고, 좁은 집을 만들고 있었다.
정신과를 찾은 것은 떠올릴 수 있는 모든 최악을 확인하고 난 이후였고, 마지막엔 굿까지 했다. 리처드 도킨스에 대한 30페이지 리포트를 제출한 이력이 있는 주제에. 뭐란 말인가, 나란 인간은. 돌이켜 봐도 거짓말 같은 시간이었구나, 라는 생각이다. 굿이라니. 남의 일인 줄로만 알았던 일이 내 일이 되었을 때의 기분은 설명하기 어렵지만 참으로, 헛웃음이 나오는 것이었다. 8할 정도는 엄마의 성화를 이길 수 없었기 때문이었지만 나 역시 뭐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뭐가 됐든 내 삶을, 퍽퍽하기 짝이 없던 그 맛 그대로라도 좋으니 그만 돌려줬으면 했다. 종착역이다. 여기에서도 답이 안 나오면 나도 이제 몰라. 무슨무슨 질문지에 끝도 없이 체크를 하고, 긴 시간 상담을 받고 나서야 나는 들을 수 있었다.
공황 장애로 보이네요. 불안증도 꽤 심해 보이는데 왜 이렇게 늦게 오셨어요.
그야말로 내가 묻고 싶은 말이었다. 그토록 아팠는데, 왜 이제야 온 걸까. 다들 괜찮다고 했지만 그 오래전부터 정말이지 나는 한 번도 괜찮았던 적이 없는데. 불행한 연기를 하는 일도, 모든 최악에 대해 떠올리는 일도 실은 한 번도 나를 편안케 한 적이 없었다. 장난감에 대한 기대가 뇌종양에 대한 불안으로 바뀌는 동안, 이 병적인 집착이 내 정신을 한참 좀먹는 동안 난 늘 두렵고 무서워서 할 수 있는 일만 해 왔다. 내가 정신병에 걸리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지.
2025년. 대체로, 달라진 것은 없다. 나는 기계적으로 최악을 떠올리고, 불안에 몸서리친다.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노라면 여전히 감시자의 시선을 느낀다. 그렇지. 알약 몇 알이 지난 30년 이상의 시간을 바꿔 버린다면, 그야말로 죽고 싶어 질지도 몰라. 그래서, 라기엔 뭣하지만.
별수 없지 뭐. 라는 말을 요즘은 자주 하게 되는 것 같다. 어쩌면 삶을 논할 때에 이보다 적절한 표현도 없지 않으려나, 하는 생각이다. 누구나 내가 택한 길이라고 말하기를 좋아하지만 생각보다 인간이 100퍼센트의 의지로 택하는 것은 그렇게 많지 않은 게 아닐까. 대부분 타인에, 상황에, 사회에, 시대에, 뭐 것도 아니라면 운명에 의해, 강제된 선택이거나 한정된 선택지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했을 뿐인 게 아닐까. 그러니까, 라기엔 뭣하지만.
나는 그저 받아들일 밖에. 이런저런 처지 안에서 이렇게 저렇게 밖에 할 수 없었던 나를, 어리석고 밉지만 가끔은 딱하기도 한 나를, 한없이 유약하지만 또 용케도 버텨 온 나를 나조차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건 정말 딱한 일이 될 것 같아서. 뭣보다 아직은 이 서사가 이어지고 있다. 아마도, 내일 아침도. 어쨌거나 계속해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그때처럼 나는, 계속 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