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병상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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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온기

병상일기 #001

by 자크 Feb 03. 2025


나는 할머니가 옆집 BYC에서 사 온 모시 잠옷을 입고 있었다. 노란색 열대어가 덕지덕지 그려진 그 잠옷을 할머니가 사 왔을 때, 이런 걸 누가 입느냐며 우린 한참을 데굴데굴 웃었다. 이내 피부처럼 느껴질 만큼 익숙해져 버렸지만.






나는 그 시절 늘 그랬던 것처럼 선풍기 앞에 늘어져 걸레질 때문에 비릿해진 마룻바닥의 냄새를 음미하고 있었고, 나와 같은 옷을 입은 어린 동생이 옆에 누워 분홍색 닌텐도 겜보이를 문질 대며 켈켈 웃었다.


가을을 남기고 떠난 사람.


패티김의 노래를 낮게 따라 부르는 할아버지의 음성. 온열 찜질팩을 무릎 위에 올려놓은 채 나와 동생을 지긋이 바라보던 할머니의 편안하게 주름 진 눈. 그 풍경이 사무치게 그리운 나머지 꿈이구나, 확신해 버렸다. 꿈인 게 슬퍼서 엉엉 울다가 깨어나 버렸다.






그래. 나는 이제 이런 것 밖에는 할 줄 모른다. 닳도록 사랑해서 한 철만에 해져버린 그 모시 잠옷처럼 하염없이 과거만을 더듬는다. 앞으로 나아갈 수 없고, 나아가고 싶지도 않아. 눈앞에 길이라 봐야 뒤돌아 보는 것만큼이나 빤하다는 느낌이다. 우울한 일기가 아니라고 해 놓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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