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타의 하루
젊을 때는 평범한 일상을 지루해 하며 순간 순간 무슨 일이든 일어나기를 기대한다. 남다른 스펙을 쌓고 화려한 직업을 가지며 다이나믹한 하루 하루를 살면서 특별한 인생을 꾸려 나가고 싶어 한다. 꿈을 가진다는 건 당연히 좋다. 그 꿈은 어릴 땐 대통령이나 아인슈타인으로, 학창시절 의사로, 졸업 후엔 대기업 직원으로, 퇴직 후엔 력셔리 실버타운으로 지속적으로 강등될테지만.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평범한 일상이 주는 행복을 느끼게 되고 심지어 어제와 다름없는 평온한 오늘이 계속되길 바라기 까지 한다. 너무 비관적인 관점일지도 모르지만 실제로 대다수의 노인들은 두 눈으로 보고, 두 귀로 듣고, 두 다리로 걷고, 밤에 불면증 없이 잠들 수 있는 것만도 큰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인류에 좋든 나쁘든 큰 영향력을 끼친 사람들일수록 평범한 일상에서 오는 행복을 누리지 못할 가능성이 많다. 그렇기에 사람이 태어나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커가는 것을 보면서 특별한 인물들의 평범한 수혜자로 사는 것도 결코 나쁜 삶은 아닐듯 싶다.
사람들은 그 평범한 일상을 벗어나고자 여행지를 찾지만 그 여행도 길어지면 일상이 된다. 몰타도 떠나오기 전엔 특별한 여행지였지만 이제 며칠을 지나고 나니 일상의 삶이 이루어지는 평범한 하루가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를 하고 식당에서 제공되는 조식을 먹고 학원 셔틀을 타고 시내인 파쳐빌로 가서 영어 수업을 듣는다. 수업은 9시부터 12시 정도까지다. 학원 근처 아시안 마트에서 장을 봐서 버스를 타고 리조트로 돌아와서 점심을 지어 아이들과 함께 먹는다. 아이들 점심은 리조트에서 제공되긴 하지만 하루 세끼를 모두 파스타, 피자, 샐러드 등만 먹일 수는 없다. 아직 어리긴 해도 이미 한식에 입맛이 길들여지기에는 충분한 년수다. 하루 한번은 한식을 먹일 필요가 있다. 된장찌개나 김치찌개나 떡볶이 같은 한국인의 입에 착착 붙는 메뉴들을 번갈아 해 먹었다. 아이들이 오후 수업 또는 액티비티에 가고 나면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지중해 바다가 보이는 수영장에 나가 책을 읽거나 다음 여행 계획을 세우기도 하고 반나절 일정의 가까운 여행을 다녀 오기도 한다. 좀 먼 곳을 갈 때는 아이들은 캠프에서 주는 저녁을 먹으라고 일러두면 된다. 날마다의 일상이 주는 편안함과 행복감을 알게 되는 것도 나이 듦이 주는 선물이 아닐까 생각해 보는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