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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eun Jul 22. 2022

사이다처럼 말이 톡톡 솟아올라

애니메이션 사이다처럼 말이 톡톡 솟아올라 리뷰

-소통에 서툴러 항상 헤드셋을 쓴 채 하이쿠로 자신의 감정을 남기는 소년과 명랑하지만 외적 콤플렉스가 심해 마스크로 입가를 가리고 다니는 소녀의 만남과 성장, 그리고 그들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청춘 로맨스물이자 성장물.  


-이시구로 쿄헤이 감독의 (4월은 너의 거짓말의 감독) 87분짜리 오리지널 극장판 애니메이션 작품.


-넷플릭스에서 감상 가능








추천

-포스터에서 대놓고 드러내듯이 여름에 무척 잘 어울리는 작품,  배경이 여름이에요.

-성우진들이 훌륭합니다. 특히 체리 역의 성우는 가부키 배우로 이력이 독특합니다.

-의외로 타 언어 더빙도 잘 된 것 같습니다. 독일어와 프랑스어 더빙판이 생각보다 좋아서 놀랐어요. 저는 독일 거주 경험이 있기 때문에 더 놀란 것 같습니다만,, 혹시 독일어나 프랑스어 공부하시는 분들 한번 틀어보세요.

-하이쿠라는 일본의 정형시가 중요한 요소로 쓰입니다. 매력 있습니다.

-음악이 작품과 너무 잘 어울려요. 투명한 탄산 방울 같은 소리입니다. 색감도 좋습니다. 정말 다양한 색들이 칠해져 있는데 촌스럽지 않아요. 예고편



줄거리


잔뜩 들려오는 매미 소리, 그야말로 여름의 소리가 작품의 시작종을 울리면,


단정하고 소박한 방 한켠에서 조용히 거울을 보며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하이쿠를 읊조리는 소년, 이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잔뜩 꾸며진 방에서 거울 안으로 기어 들어갈 듯한 자세로 자신의 앞니와 교정기를 들여다보는 소녀. 외출 준비의 마지막으로 소년은 헤드셋을, 소녀는 마스크를 가져다 씁니다.


톡 쏘는 탄산을 목구멍에 넘기듯 강하게 새겨질 여름을 보낼 두 주인공들을 잠시 떠나,  


마치 청량을 연주해 놓은 듯한 배경음악과 함께 마을 전경을 높은 곳에서부터 훑고 지나가는 카메라. 날아오른 새의 시점에서 바라보듯 저 멀리 논밭에서 작품 속 주요 배경 중 하나인 쇼핑센터의 전경, 주차장과 도로 위 자동차들을 지나 주인공이 있는 곳까지.. 바람에 시원하게 쓸리는 벼의 움직임에 보는 이 마저 바람을 맞는 듯한 착각이 듭니다. 주인공 소년 체리가 바람을 가르고 주차장을 가로질러 도착한 곳은 쇼핑센터 앞 도로 한복판. 그리고 속이 빈 LP표지를 소중히 든 채 멀뚱히 서 있는 한 노인.

체리(애칭, 본명은 사쿠라 유이)는 현재 쇼핑몰의 노인복지센터에서 아르바이트 중이며 센터에 나오는 후지야마 씨를 찾으러 나온 것입니다. 같은 시각, 마찬가지로 쇼핑몰 내의 치과에 정기검진을 받으러 온 주인공 소녀 스마일(본명 호시노 유키)은 검진이 끝나자마자 콤플렉스인 앞니를 마스크로 숨긴 채 휴대폰을 켭니다. 스마일은 동영상 채널 운영자로(인기 유튜버인가 봐요) 이런저런 귀여운 것들을 소개하는 영상을 올린다고 하네요. 이 둘, 딱히 접점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청소년들이죠. 그러나 우연히 같은 시각에 한 쇼핑몰 안에 있었던 이들은 작은 사고로 인해 서로 부딪혀 넘어지게 되고 그 순간 마스크가 벗겨져 교정기를 들킨 스마일의 허둥지둥 도주로 인해 각자의 휴대폰이 그만 뒤바뀌어 버리는 해프닝을 겪게 됩니다. 이들에게 휴대폰은 전혀 다른 의미로 매우 중요한 아이템이었는데요. 체리에게는 휴대폰 옆에 붙여 놓은 작은 하이쿠 사전이(세시기라고 한다네요), 스마일에게는 동영상 채널 주로서 휴대폰 그 자체가 없어서는 안 될 물건이었던 것이죠. 마음이 급했던 스마일의 연락에 각자의 휴대폰을 되찾은 이들은 이후에도 같은 쇼핑몰에서 마주치게 되면서 차츰 가까워집니다. 특별한 계기랄 건 없고, 스마일이 체리의 하이쿠와 하이쿠를 읊는 그의 목소리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며 둘의 대화가 이렇게 저렇게 이어지는 흐름이랄까요.


가까워진 두 사람은 어느 날 복지센터 후지야마 씨의 사연을 듣게 되고, 사별한 아내의 노래가 담긴 LP판을 찾고 싶다는 그의 바람을 이루어 주려합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상황에 스마일이 겨우 되찾은 LP판을 실수로 부러트리고 체리가 곧 이사를 간다는 사실마저 (너무 늦게) 밝혀지며 둘의 관계에는 먹구름이 드리워지고 마는데요, 물론 사이다처럼 톡톡 솟아오른다는 작품명에 어울리게 이러한 분위기를 질질 끌고 가지는 않아요. 작품의 마지막 장면인 쇼핑몰 앞 불꽃 축제에서 재회한 이들은 서로의 마음을 제대로 확인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표현에 서투르기만 했던 체리가 제 발로 축제 장소에 뛰어와 단상에 올라가기까지 하며 자신의 말을 전하고, 이에 스마일은 지금까지 절대 벗으려 하지 않았던 마스크를 내리고는 환하게 웃어 보이죠. 전형적인 청춘 로맨스 엔딩이지만 꼭꼭 채워진 확실한 해피 엔딩에 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엔딩입니다.



분위기


제목을 보았을 때 자연스레 떠올리게 되는 분위기, 가볍고 싱그럽고 통통 튀고 투명하고 조금 단 사이다가 생각나는 그런 분위기를 작품 내에서 골고루 표현하는 데에 성공한 거 같아요. 구석구석에서, 그러니까 스토리, 이미지, 연출, 음악 등의 모든 요소에서 탄산이 느껴집니다. 시종일관 투명한 탄산 구슬들이 또르르 또르르 굴러 다니는 것 같아요. 보다 보니 옛날에 자주 팔던 구슬 아이스크림도(무지개처럼 색이 다양한 거요) 생각나더라고요.  



과함이 없는 이야기 흐름과 질척대지 않는 갈등 요소


쓸데없이 배배 꼬거나 폼 잡는 요소가 없는 작품입니다. 모든 게 적당하고 편안합니다. 스토리도 성우들의 연기도 배경에 흐르는 음악도 전부 산들산들 흘러갑니다. 그냥 기분이 좋아져요. 줄거리에서 이야기했듯 두 명의 주인공이 서로에게 빠져드는 데에 비밀스러운 사연이나 대사건 같은 것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사실 그렇잖아요, 장르물도 아니고 평범한 10대 소년 소녀가 가까워지는 데에 특별한 계기는 굳이 필요 없잖아요, 우연히 만나 자연스레 조금씩 가까워지는 이 흐름을 얼마나 기분 좋게 담아내는지가 중요한데 이 작품이 그걸 톡톡히 해냅니다.  


나름의 중요 갈등 곡선이라 할 수 있는 체리의 이사 건과 스마일이 부러트린 LP판 문제도 위에서 설명했듯이 깔끔하게 풀어집니다. 두 주인공의 성격이 특별히 꼬인 면도 없고 선한 근본을 가진 캐릭터들로 설정되어 있으며 후지야마 씨가 찾던 LP도 결국은 발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LP판을 발견하는 상황이 다소 헛웃음을 유발할지 모르나 작품 안에서 크게 억지스러운 흐름이라고는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작품의 성격상 굳이 복잡한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것이 더 사이다스러운 분위기가 나겠죠.


이렇게 불필요한 드라마적 요소들은 최대한 걷어낸 채 작화와 사운드의 매력이 두드러지다 보니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에 매우 충실하다는 느낌도 듭니다. 이 작품은 이렇게 애니로 보는 게 제일 재미있겠다,, 싶어요.


전형적인 성장형 로맨스물에 하이쿠로 독특한 감성 한 방울 


이 작품은 밝아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외적 콤플렉스가 심한 여자 아이와 섬세하고 사려 깊지만 표현과 소통에 서툰 남자아이가 서로의 고민을 보듬으며 함께 성장해가는 전형적인 10대들의 로맨스 물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독특한 포인트가 되어주는 부분이 하이쿠라고 생각됩니다. 작품의 시작을 여는 것도 한쪽 벽면에 크게 쓰인 하이쿠와 곧이어 체리가 읊조리는 하이쿠 이듯이 스토리 흐름과 각 장면들에 어울리는 하이쿠들이 중간중간 등장하는데요. 중반부에 체리가 스마일에 대한 마음을 남몰래 드러낸 방식도 하이쿠를 지어 커뮤니티에 올린 것이었고 마지막에는 아예 하이쿠로 고백해버리지요. 이렇게 곳곳에서 들리고 보이는 하이쿠들이 이 작품에 묘한 운치를 더해주는데 여기에 체리를 연기한 성우의 차분하고 단정한 음색까지 얹혀져 듣는 재미가 더욱 올라갑니다. 여러모로 사운드에 신경을 쓴 작품이라는 것이 느껴지고 확실히 원어를 이해하며 감상한다면 더욱 재미나게 리듬을 탈 수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참고로 체리 역의 성우 이치카와 소메고로는 가부키 배우라고 합니다. 일본 가부키 4대 명문가인 마츠모토 가의 후계자로, 위의 이름도 본명이 아닌 습명이라고 하네요. 이 애니메이션이 성우로서 참여한 첫 번째 작품이라고 하는데 체리의 캐릭터와 작품 속 하이쿠에 너무 어울리는 목소리였던 것 같아요. 이력이 독특한 성우라 한 번 소개해 봤습니다.


俳句

하이쿠란,


이 작품으로 처음 하이쿠를 알게 되었어요. 일본 정형시의 일종으로서 본래 길이가 더 길고 귀족들이 주로 지었던 와카라는 정형 운문문학이 변형된 형태라고 하네요. 와카는 총 31음으로 구성되지만 하이쿠는 각 행마다 5-7-5음, 합해서 총 17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또한 전통이나 형식에 비교적 얽매이지 않고 창작자가 자유로이 시상을 전개시킬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고 합니다. 이 작품 속 체리처럼 현대에는 가타카나를 사용하여 짓는 경우도 많고요. 물론 아예 형식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우선 정석적인 하이쿠는 대게 2개 이상의 시상을 포함시키고 중간에 흐름을 끊고 시상을 전환하기 위해 사용하는 키레지가 있으며 모든 하이쿠는 계절을 가지므로 자신의 하이쿠가 어느 계절인지를 나타내는 키고(계절을 나타내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키고가 흥미로웠는데 장마나 매미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여름, 단풍은 가을, 눈 녹은 물은 봄이나 겨울의 끝을 의미한다고 해요. 대체로 명사형이지만 간혹 동사형이나 문장형의 키고도 존재한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鷹鳩と化す(매가 비둘기로 변하다, 매가 비둘기로 변할 정도로 포근한 날씨라는 뜻), 이 문장은 예상 가능하듯 봄을 나타냅니다. 꽤 근사하지 않나요.


작품에 등장하는 하이쿠들은 거의 체리가 지은 작품들이기 때문에 평소 말이 없는 그의 감정을 나타내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 같습니다. 이미 위에 있지만, 체리의 하이쿠를 두 편만 더 소개해보고 이만 마치도록 할게요.



여름밤 등이

저녁 석양 속에서

신호 전 출발


얇게 맴도는 노을빛 아래 나란히 걸어가던 체리와 스마일의 대화 도중 만들어진 하이쿠, 자신이 지은 하이쿠를 절대 남 앞에서 소리 내어 읊으려 하지 않던 체리가 직접 소리 내어 들려준 하이쿠이기도 하고요. 이 하이쿠를 듣고 스마일은 체리의 목소리가 귀엽다고 말합니다.



산벚나무야

숨기고 있는 그 잎

나는 좋단다


작품 중반 체리가 스마일에 대한 마음을 몰래 드러내 보이는 하이쿠입니다. 하이쿠 계어 서적을 뒤적이던 체리는 앞니가 돌출된 사람을 산벚나무에 비유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산벚나무는 꽃보다 잎이 먼저 난다고 해요) 위의 하이쿠를 커뮤니티에 슬쩍 올림으로써 스마일의 외적 콤플렉스인 앞니가 자신은 좋다고 말해준 것이지요. 한국어와 마찬가지로 일본어도 葉(잎)은 歯(입)으로 말장난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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