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이 아닌 '권리'로서의 난민 지위
지난 8월,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철수 이후, 대한민국 정부의 ‘미라클 작전’을 통해 약 400명의 아프간인이 한국에 오게 되었다. 이들은 난민도 인도적 체류자도 아닌 ‘특별기여자’라는 이름의 지위를 갖게 되었고, 올해 2월부터 울산에 정착하였으며 3월에 아이들은 등교를 시작했다. 탈레반을 피해 고국을 떠나 한국에 온 이들을 보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난민에 대한 반대 정서가 사회 전반적으로 만연하게 느껴지는 한국에서 더 신속하고, 여론의 거센 반대 없이 이들을 보호할 방법이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이들을 ‘특별기여자’라고 부름으로 인해 생겨날 다양한 문제에 대해 각계의 우려와 비난 역시 있었다. 난민인권네트워크가 기자회견에서 지적했던 것처럼 이러한 정부의 행보는 이미 난민 지위를 “선물에 감사해야 할 자리” 또는 “아무것도 요구할 수 없는 자리”라고 생각했던 한국 사회의 편견을 더 공고히 하는 결과가 되는 것으로 보인다.
난민에게 기대되는 “고마워해야 할 의무”는 한국 사회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며 이미 연구되어 온 주제이다. 제이슨 드크루즈(D’Cruz, 2014)는 이를 “고마움에 대한 빚 (debts of gratitude)”이라고 말하면서, 빚이 생김과 동시에 생겨나는 힘의 불균형에 대해서 말했다. 또한 그것이 난민에게 정치적 복종을 요구하는 것을 당연하게 만드는 사회적 현상에 주목했다. 캐롤라이나 몰린(Moulin, 2012)은 “감사함의 법칙 (the law of gratitude)”이라고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면서, 대척점에 있는 자유(liberty)와 안보(security)의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고 여겨지는 국가의 위치와 그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모든 개인 중 특히 취약한 상황에 있는 난민들이 해야 하는 선택에 대해 논의를 이어갔다. 몰린에 따르면 안보를 선택하는 순간 난민이 가진 자유에는 제약이 생긴다. 안보를 선택한 난민에게 주어지는 인도적 보호는 마치 ‘선물’과도 같은데, 그 선물을 선택하는 순간 난민은 감사할 것을 요구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보호를 받는 난민이 최소한일지라도 자유를 요구하는 순간, 당연히 감사를 표현해야 할 난민은 ‘배은망덕’한 존재가 되고, ‘진짜 난민’이라면 하지 않았을 요구이기에 그들이 ‘가짜 난민’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기본권 침해라는 심각한 문제에 대한 비판이건, 목숨을 걸고 시위를 하건 그들에게 허락된 자유는 없다.
새롭게 법 조항을 만들면서까지 아프간 난민들을 ‘특별기여자’로 받아들이는 것이 당장에 큰 문제처럼 보이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이를 통해 인도주의적 보호가 ‘난민’이라는 권리에 따른 법적 지위가 아니라 한국이라는 국가에 기여를 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라는 점을 더 선명하게 만들었다. 더 나아가 난민과 ‘특별기여자’ 사이의 모호한 경계로 인해 한국에 있는 난민들은 국가가 원하는 ‘감사할 줄 알고, 기꺼이 복종하기를 원하는’ 난민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더 힘쓸 것이다. 하지만 많은 난민이 자신의 모습 그대로 살고, 박해를 피하고자 주체적으로 많은 선택을 해 온 것을 생각하면 그들에게 자유라는 것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삶 그 자체인지도 모르겠다. 감사한 마음을 가지는 것과 표현하는 것 역시 그들의 자유에 달려있다. ‘선물’이 아닌 ‘권리’로서의 난민 지위를 가질 자격은 우리를 포함한 모두에게 있다. 내가 속한 공동체가 나를 보호한다고 해서 내가 가진 모든 자유를 빼앗아 갈 수 없듯이, 난민에 대한 보호의 ‘대가’로 ‘감사함’과 그에 따른 무조건적인 ‘복종’이 요구되어서는 안 된다.
참고문헌
- D'Cruz, J. (2014). Displacement and gratitude: accounting for the political obligation of refugees. Ethics & Global Politics, 7(1), 1-17.
- Moulin, C. (2012). Ungrateful subjects? Refugee protests and the logic of gratitude. In Citizenship, migrant activism and the politics of movement (pp. 66-84). Routledge.
- 난민인권센터 (2022). [기자회견] 아프가니스탄 난민에 대한 한국정부의 책임, 이제부터 시작이다. 2022년 1월 14일. 출처: https://nancen.org/2221?category=118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