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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미 Mar 08. 2023

노년의 열정

내가 공직 퇴직 후 기타 레슨을 처음 시작했을 때 60대 중반의 한 여성분이 홍보 전단을 보고 기타를 배우러 찾아오셨다. 단아하면서도 서구적인 외모에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갖추신 분이셨다.


기타는 물론 음악이론에 대한 기본지식이 전혀 없으신 여사님은 이론에 대해 이야기하려 하면 손사래를 치시며 복잡한 것을 싫어하셨으므로 무조건 기타를 잡고 가장 기본적인 C코드부터 짚어가며 레슨을 시작하였다.


실전을 바탕으로 조금씩 조금씩 이론을 가미해 가면서 레슨을 진행한 지 벌써 만 3년이 지나갔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서너 차례 레슨을 중단하여 실제로 레슨을 한 기간은 2년 여 정도가 될 것이다. 여사님은 내가 처음 레슨을 시작했을 때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레슨을 받고 계신 유일한 분이시다.


나는 여사님이 기타의 복잡한 코드, 리듬과 음악이론을 무척이나 어려워하셨으므로 몇 달을 견디지 못하고 지레 포기하실 것으로 생각했었다. 특히 코드를 잡아도 정확한 음이 처지지 않았는데 수차례 교정을 했음에도 쉽사리 고쳐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손가락 하나하나를 짚어 가면서 피나는 연습 끝에 (실제로 초기에는 손가락에 피가 날 정도가 됩니다) 정확하고도 맑은 음을 만들어 오신 것이 아닌가! 내 앞에서 기타의 맑은 음을 내시며 천진한 어린아이 마냥 자랑스럽게 웃으시던 여사님이 그 순간 정말 아름답고 대단해 보였다.


아직까지 갈 길은 멀었지만 여사님의 의지와 인내, 끈기만은 정말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은 수많은 기타 코드를 거의 다 아시고 능숙하지는 않더라도 노래 한 곡을 연주하시는데 어려움이 없으시다. 또한 아르페지오 (한 코드의 구성음들을 한 음씩 연주하는 주법)에 도전하시며 스스로 악보를 구입하셔서 연습하실 정도의 단계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한 여사님에게 몇 년 전 시련이 다가왔다. 레슨을 시작한 지 한 해 만에 남편분을 갑작스럽게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 드리는 가슴 아픈 일이 일어난 것이다. 여사님과 함께 다정히 나의 첫 전시회에도 찾아 주셨던 자상한 남편분이 갑작스러운 심근경색으로 그만 유명을 달리하시게 되었다. 갑작스러운 비보에 너무 놀란 나는 장례식장에 찾아가 여사님을 위로해 드리며 앞으로 기타를 벗 삼아 졸지에 남편을 잃은 아픔을 조금이나마 치유받으실 수 있기를 마음속으로 기원했다.


남편분과 사별 이후 여사님의 건강이 점차 쇠약해 짐을 느낄 수 있었는데 마침내 금년 들어 수개월째 레슨을 받지 못할 정도가 되셨다. 아끼는 반려견과 함께 산책하다 넘어지신 후 허리와 골반 등이 편치 않아 걷기에 불편이 많으시기 때문이다. 마음은 계속하여 기타를 배우며 노래도 하고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도 나누고 싶지만 건강이 허락하지 않는다며 몹시 안타까워하셨다. 게다가 마음까지 힘들어져 우울증 약까지 복용하신다 하니 내 마음 또한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기타 배우는 것을 멈추지 않겠다 하신 여사님은 카톡을 통해 악보를 보며 모르는 부분에 대해 질문을 하시는 등 노년의 열정을 멈추지 않으신다. 나도 기꺼이 내가 아는 모든 것을 전달해 드리려 노력하면서 여사님의 조속한 회복을 기원했다.


그러나 며칠 전 여사님이 다시 집 안에서 미끄러져 넘어지는 사고를 당하셨다는 소식을 접했으니 안타까운 마음을 이루 형언할 수가 없다. 하루속히 회복되셔서 이제는 기타 강사와 수강생을 넘어 자매처럼 남은 인생을 함께 동반하며 음악으로 즐거움을 나누는 관계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하고 있다.


존경하는 이 여사님, 하루속히 건강을 회복하셔서 다시 한번 노년의 열정을 꽃 피우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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