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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TDT

Tourne De Transmission

by KIDAE 기대

패션 석사 과정에 입학했다. 악명 높기로 유명한 학과 과정은 입학한 모든 학생들을 힘들게 했다. 몇 달 후 같은 반친구들도 사귀고 학교에 점점 적응해 갈 때쯤, 타이에게서 TDT의 남성복 컬렉션이 열린다는 연락이 왔다. 나는 친구와 패션쇼를 도우러 가겠다고 했다. 타이는 일손이 절실해 보였다.


TDT의 컬렉션 당일. 새로 사귄 중국인 친구와 같이 패션쇼 장을 방문했다. 쇼장은 오래된 교회였다. 교회 안으로 들어가자 글램과 타이가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내가 TDT에서 인턴을 하기 전 인턴으로 근무했던 '스시'라는 여자아이도 있었다. 타이의 여자친구였다. 타이는 사심을 가지고 스시를 인턴으로 뽑았던 것 같다. 그리고 내가 그만두기 전 합류한 오스트리아에서 온 디자이너도 보였다. 교회내부 좀 어두웠지만 교회의 큰 창문들로 들어는 빛이 아름답고 성스럽게 느껴졌다.



쇼가 시작되기 한참 전 우리는 쇼장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쇼를 방문할 관람객들을 위해 모델들의 동선에 맞게 교회의 긴 의자를 배치했다. 교회 뒤쪽으로 큰 차가 도착했다. 차의 트렁트에는 쇼에 필요한 물품들이 가득 실려있었다. 오스트리아에서 온 디자이너는 가장 가벼운 동그랗게 말린 종이 하나를 옮기고 사라졌다. 얄미웠지만 그냥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중국 친구와 나는 물품들을 다 옮기고, 교회 2층에 쇼스테이지가 내려다 보이는 곳에 조명까지 설치하였다. 단순히 쇼를 구경하며 가볍게 도와주려고 생각하고 왔지만 궂은일은 나와 중국 친구가 거이 다 하는 것 같았다.



조명을 달기 위해 공사장에서 자주 봤던 철골 구조를 설치하는 일은 너무 힘들었고 자칫 잘 못하면 2층에서 떨어질 수 있어 위험했다. 나는 중국 친구가 너무 열심히 하길래 좀 쉬엄쉬엄 하라고 했다. 우리가 열시히 할수록 백인 조명 업자는 우리에게 일을 더 시켰다. 심지어 조명을 설치하러 온 기사들은 나와 중국 친구가 그들의 일을 거이다 하는 동안 빈둥거리는 것 같았다.


교회 한 편의 작은 방은 백스테이지로 활용되었다. 백스테이지에서는 TDT의 컬렉션 의상을 입은 모델들이 사진을 찍었고, 한편에서는 이름 모를 아티스트가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모델들의 의상에 장식되어 있는 오브재에 그려진 그림을 그린 작가 같았다. 내가 인턴으로 근무할 때 작업했던 컨샙의 의상들이 완성되어 실제 쇼로 만들어지니 신기하게 느껴졌다.



나름 타이는 쇼를 풍성하게 만들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하지만 재킷 패턴으로 만든 매인 모델의 하의 의상과 내가 근무하던 유니클로에서 영감을 얻어 모델들의 이너웨어로 유니클로의 히트텍을 사용한 것과 같이 콘셉트에 전혀 상관없거나 어설픈 면들이 많았다. 하지만 글램의 사업적 수완과 인맥을 확인할 수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방문하여 마치 하나의 파티 같은 분위였다.



스튜디오에서 인턴으로 일을 할 때에 자주 봤던 덩치 큰 동양인 스타일리스트도 백스테이지에서 모델들의 의상과 스타일을 점검하였다. 사진기로 사진을 찍는 사람과 글램의 지인들도 와서 인사를 하였다. 당시 유명했던 삭발한 한국인 모델도 캐스팅되어서 쇼에 참가했다. 쇼가 시작되자 모델들은 차례차례 교회 중앙의 메인 스테이지로가 워킹을 시작했다.



쇼가 시작되자 백스테이지 가까운 큰 기둥 뒤에 숨어 모델들의 워킹을 봤다. 나도 저렇게 쇼를 하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다. 쇼가 끝나고 쇼장에 앉아 있던 캐롤과 인사를 하러 갔다. 캐롤은 유니클로에서 만난 친구이다. 노르웨이 출신이지만 노르웨이의 지루한 자연보다 도시가 더 좋아서 런던으로 왔다. 그는 학사 때부터 내 작업물의 모델이 되어주며 나를 많이 도와주었다. 타이에게 말해 이번 쇼의 티켓을 캐롤에게도 주었다. 그동안 나를 도와준 것에 대한 감사를 표현하고 싶기 때문에다.



쇼가 끝나고 뒷정리를 하는데 조명기사들이 와서 조명 해체 작업을 도와달라고 했다. 그들은 그들의 일을 하지 않고 다시 빈둥거리려고 했다. 나는 그들을 무시하고 글램에게 일정이 있어서 가봐야 한다고 말했다. 글램은 쇼를 도와준 것에 대한 보답으로 TDT의 상품 중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면 타이에게 말해서 달라고 말하라고 했다. TDT의 상품 중 내가 입고 싶은 옷이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중국친구와 함께 쇼장을 나왔다. 중국식당에서 핫팟과 고량주를 마시며 우리는 쇼를 도와주러 왔는데 고된 일을 시켰던 부당함에 TDT를 비난하였다.



며칠 후 타이에게 연락이 왔다. 나는 굳이 쇼장에서의 부당함을 얘기하지 않았다. 타이는 좀 미안해하는 것 같았다. 타이는 글램이 말한 대로 웹사이트에서 TDT의 상품중 마음에 드는 것을 말해주면 준비해 놓겠다고 했다. 나는 웹사이트를 뒤지던 중 마음에 드는 재킷을 발견하였다. 트러커 재킷이지만 옷 전체에 누벅처럼 천이 덧 데었었다. 그때 한국돈으로 100만 원 정도 되는 것 같았다. 아쉽게도 중국 친구는 그리 좋은 옷을 받지는 못했다. 타이는 주어진 상황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최대한 맞춰 줬던 것 같다.



타이는 지금 Y-3에서 일하고 있다. 가끔 인스타그램을 통해 근황을 접하곤 한다. 결국 그가 좋아했던 브랜드에 들어가 일하고 있다. 아디다스는 독일에 본사가 있다고 들었다. 요지야마모토가와 아디다스의 콜라보로 만들어진 Y-3는 최초의 하이패션과 스포츠브랜드의 성공 사례로 평가받는다. TDT에 있던 근무하던 당시 타이는 더 좋은 브랜드로의 이직을 위해 Central Saint Martins의 패션 석사 과정에 지원했던 것 같다. 결국 입학하지는 못했지만, 그가 원하는 브랜드로 이직한 것을 보니 나도 기분이 좋다. TDT는 결국 글램이 팔아버렸다는 소식을 들은 것 같다. 글램은 역시 사업수완이 좋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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