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at. Dino
처음 영국 유학을 떠났을 때 나는 영어는 한마디도 못했다. 그때 기댈 수 있는 사람은 같은 동양인 계열의 착하게 생긴 친구와 친해졌고 그러다 보니 반 친구들과도 허물없이 친해져서 영어도 많이 늘었고 생활도 재미있게 할 수 있었다.
그 친구는 중국인인 Dino이다. 우리는 패션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학과 과제로 옷을 만들다 보면 작품이 비슷해질 수가 있는데 서로 카피했다고 장난치기도 하고, 런던 전역에 있는 의류 브랜드 상가나 빈티지 숍을 다니며 하루종일 돌아다 딜 때도 많았다. 어떨 때는 Dino가 중국인 들만 있는 홈파티에 초대해 재밌게 놀기도 했고, 내가 처음으로 Dino를 클럽에 데려가 처음 경험 시켜주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는 대학 시절 추억을 쌓았고, 대학 졸업 후 Dino는 중국으로 돌아갔고, 나는 석사학위를 위해 영국에 더 머무르게 되었다.
대학에서의 친구들은 대부분 세계각지에서 온 친구들이기 때문에 졸업 후 쉽게 만날 수없었다. 중국으로 돌아간 Dino도 같은 상황이었다. 우리는 간간히 서로의 안부를 물었지만 대학 생활 때처럼 긴 시간을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는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졸업 후 각자 할 일을 하며 바쁘게 지내었다.
그러던 어느 날 Dino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랜만에 쓰는 영어라 잘 안 나오긴 했지만 계속 쓰다 보니 얼추 익숙해졌다. 서로가 어떻게 지내는지 최근에는 무얼 하는지 서로가 궁금했고 서로 묻고 답하기 바빴다. 그러던 중 Dino는 내게 제안을 하나 했다. 일본에서 개최하는 패션트레이드쇼에 참가하니, 시간이 되면 오라는 것이었다. 나는 마침 다리를 다쳐서 쉬고 있는 상황이라 시간도 있고, 재활도 할 겸 간다고 대답했다.
오랜만에 하는 해외여행 준비는 좀 어려웠지만 설레었다. 무엇보다도 5년 만에 친구를 만날 생각을 하니 좋았다. Dino는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부터 계속 자기 브랜드를 하고 있다. 물론 어떻게 사업을 진행해 나가고 있는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5년 동안 해왔다는 것은 대단하게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이번에 트레이드쇼에서 선보이는 상품들 중에는 중국 아디다스와 콜라보한 제품도 있다고 한다.
도쿄에 도착하고 첫날은 Dino가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보지 못하고, 다음날 보았다. 우리는 서로의 공통 관심사가 패션이기 때문에 우리는 첫 목적지를 Dover street market Ginza로 정했다. 처음엔 좀 어색했지만 학창 시절과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금세 편안해졌다. 우리는 그 후 학창 시절 때와 같이 빈티지 숍들이 많은 곳으로 유명한 시모키타자와로 가서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 아무것도 몰랐지만 패션에 열정 적이었던 학창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Dino와 나눴던 대화 중에 가장 생각나는 게 있다.
나는 Dino에게 "너의 삶이 나보다 좋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그는 학창 시절과 변함 없이 같은 작업을 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행복했던 때는 내가 생각한 디자인을 거침없이 실험해 보고, 하루종일 학교에 틀어 박혀 옷만만 들던 학창 시절이다. 그만큼 치열하게 몰입하던 시기였던 것 같다.
Dino는 이렇게 대답했다. "너는 아직 너의 스튜디오도 오픈하지 않았고, 회사에 다니면 네가 원하는 디자인을 못하잖아. 계속 시도해 봐 네가 원하는 것을!"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시작하지도 않는 것에 대해 너무 많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래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시작도 안 한 상황이다. 졸업하고 사회에 나오면 누구나 가슴에 품고 있던 꿈들이 희석되기 마련이다. 나는 경험을 더 쌓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달려왔고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 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 시작점에서 출발도 안 한 상태라는 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앞으로는 나만의 무언가를 해나가는 방향으로 많이 고민하고 생각하고 싶다.
이번 일본여행은 일상의 지루함에서 나를 환기시켜 새로운 생각을 하게 만들어 줬다. 내가 가장 열정적일 때 나와 함께했던 친구를 만나 동기부여도 받고 그때를 떠올리며 나를 다시 다잡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