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다시 만난 얼굴들

예순의 노을

by 노크


19시간을 날아 히드로 공항에서 딸을 만났다.

매일 통화를 했지만 2년 만에 만남이 얼마나 애틋한지.

숙소로 이동하는 동안 반가운 수다들이 차창 밖으로 흘러가 밤하늘로 퍼진다.

숙소에 도착하자 딸이 준비해 둔 밥상이 우리를 맞았다.

흰쌀밥에 부대찌개, 한국에서 챙겨 온 반찬들까지 더해지니 한식 뷔페가 되었다.

먼 길의 피로는 밥 한 숟가락에 사르르 풀렸다. 여행의 설렘은 밤늦도록 이어졌다.


이튿날 아침, 친구 부부는 일찌감치 하루를 준비하고 있었다.

오늘 일정은 빡빡하다. 타워 브리지를 건너 테이트 모던에서 전시를 보고,

밀레니엄 브리지를 다시 건너 세인트 폴 대성당으로 향하는 코스다.

타워 브리지 위에 선 나는 세 번째지만, 남편들은 처음이다.

TV에서만 보던 다리 위에 실제로 서 있다는 사실이 신기한지 연신 주변을 둘러본다.

처음이라는 표정은 언제 봐도 좋다.


화력발전소를 개조한 테이트 모던은 런던의 문화적 자부심 같은 공간이다.

그날 전시는 한국 작가 서도호의 〈Walk the House〉였다.

작고 보잘것없다 여겼던 일상의 조각들이 작가의 손을 거쳐 하나의 세계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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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을 나오며 생각했다.

늘 근사한 이야기만 글감으로 찾으려 했던 나의 태도를.

이 전시는 말없이 알려주었다.

우리의 소소한 일상도 충분히 글이 될 수 있다고.


미술관에서 바라보던 강 건너, 세인트 폴 대성당으로 향했다.

런던의 성당은 다른 유럽 도시들처럼 화려하기보다는 담담하다.

헨리 8세 이후 이어진 영국 교회의 역사 때문일까, 절제된 분위기가 오히려 마음에 남는다.

2차 세계대전으로 무너졌다가 다시 세워진 성당.

꼭대기에서 런던 시내를 내려다보고 싶었지만, 마지막에서 발걸음이 막혔다.

아쉬움을 남긴 채 내려왔다.


이곳의 일상은 카페보다 펍에 가깝다.

펍에 들어가 차를 마셨지만 소란스러운 분위기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나왔다.

대신 런던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공원에 앉았다.

이국의 공원에서 노을을 바라보니 마음이 차분해졌다.

언제 우리가 이렇게 가만히 앉아해 지는 모습을 바라본 적이 있었던가.

늘 바쁘게 살아오다 어느새 예순이 되었다.

예순이 되어서야 비로소 노을을 천천히 바라볼 수 있다니,

조금은 씁쓸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노을이 완전히 사라질 무렵,

런던에서의 첫날도 그렇게 조용히 접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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