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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송 Jan 06. 2024

엄마, 내가 집 사줄게

궁상맞은 가난은 내 어린 시절에 내려앉아있다. 돈 몇 푼에 부모님은 자주 다투셨고 겨우 얻은 보금자리엔 화장실이 밖에 있었다. 집 밖에 있는 화장실은 밤이 되면 마치 극기 훈련하듯 큰 맘을 먹어야 갈 수 있었다. 가끔은 동생에게 같이 가자 졸라도 보고 참을 수 있을 만큼 참아보기도 했다. 인내의 결과는 과민성 대장 증후군이나 방광염이 되어 돌아왔다. 가난은 어린 동생들에게도 쉽지 않은 기억이었을 거라 짐작한다. 철이 들기도 전, 여동생은 "엄마 내가 크면 집사줄게" 라는 말을 하곤 했다. 집값이 얼만지, 사는 게 얼마나 팍팍할지 상상도 못 할 어린아이의 마음을 엄마는 그저 마음에 고이 담아두셨다.

다섯 식구가 단칸방에 살다 몇 번의 이사 끝에 여동생과 같이 쓰는 방을 얻게 됐을 때 너무 신나 잠이 오지 않았다. 둘이 같이 엎드려 당시 유행하던 노래 테이프를 들으며 한참 동안 흥얼거리다 잠들곤 했다. 어린 남동생의 방은 여전히 없었고 좁디좁았지만 가족 모두 따순밥 먹고 몸 뉠 수 있는 공간이 있는 걸로 만족했다. 지지고 볶고 울고 웃으며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 나는 결혼해 출가했고 가족들은 낡은 주택에서의 삶을 오랫동안 꾸려왔다. 여름에 피는 곰팡이와 겨울에 패딩을 입어도 막을 수 없는 추위 정도는 당연한 일상이라 여기며.

어느 날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여동생이 아파트 청약에 당첨됐다는 소식이었다. 월세와 전세를 전전하던 가족에게 동생의 청약 당첨 소식은 어리둥절하면서도 희망적이었다. 갈 수 있는 돈이 있느냐는 나중 문제였다. 가족들이 새 집에, 그것도 아파트에 이사 가는 날이 오는 건가? 나도 상상이 잘 안 됐다. 악착같이 살아온 엄마 아빠의 생이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점프할 수 없는 가난이었다. 돌고 도는 가난의 굴레에서 처음으로 다른 삶이 엿보이기 시작했다.

작년 10월, 가족들은 살던 집을 떠나 새로운 동네, 새 집으로 이사를 갔다. 부모님이 결혼한 지 40년 만에 처음, 아니 엄마도 아빠도 동생들도 태어나 처음 살아보는 아파트고 새 집이었다. 이제 각자의 방과 함께 일상을 나눌 수 있는 거실이 생겼다. 거실에서 바라보는 해질녘 창 밖 풍경은 말을 잇지 못할 만큼 아름답다. 무엇보다 새집엔 화장실이 2개다. 늦은 밤 화장실 귀신이 무서워 소변을 참던 그날의 나는 상상도 못 했을 지금이다.

이사를 마치고 다 같이 모여 술잔을 기울이며 어릴 적 가난에 대해 곱씹었다. 이런 날이 오다니. 엄마는 어릴 적 천진난만한 여동생의 말을 되짚으며 "미소가 어릴 때 나중에 크면 집 사줄게라고 했었는데.." 하며 눈시울을 붉히셨다. 농담 같던 동생의 이야기가 진짜 이뤄지는 날이었다. 이젠 절절한 추억이 돼버린 낡은 집에서의 기억들을 안주 삼아 우리는 몇 번이고 짠을 외쳤다.

다음날 일어난 엄마는 꿈같다며 여기가 우리 집 맞나 두리번거리셨다. 이제 그만 체크아웃해야 할 것 같다고. 방문을 닫고 잘 나오지 않던 남동생은 방문을 활짝 열어둔다. 거실에 나와 소파에 앉아 함께 TV도 보고. 야무진 여동생은 가구, 인테리어 하나하나 신경 쓰며 제 집 사랑에 빠졌다. 새 집엔 볕이 잘 들어 좋다며 웃음이 새는 엄마와 먼지도 내려앉기 전에 연신 청소하시는 아빠. 거실에 모여 우스갯소리를 주고받는 가족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간질간질하다.

볕이 잘 드는 새 집에서 가족들이 오래오래 따뜻하기를.
덜 아프고, 덜 다투기를.
늘 그랬듯 서로 아끼며 이겨내기를 간절히 비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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