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 만난 율과 나는 같은 대학 같은 과에 입학했다. 함께 하는 게 늘어날수록 우정도 깊어졌다. 아무 커피나 안 먹는 까탈쟁이 덕에 커피 좀 탄다는 수많은 카페를 섭렵하고 계절 바뀌기 무섭게 제철 음식을 먹으러 다니기 바빴다.
카톡 답장이 느리기로 소문난 율이었지만 내 카톡에 만큼은 대답이 빨랐다. 우리끼리 하는 이야긴 재밌는 게 많았다. 돌 굴러가는 소리에도 웃는다는 중고등학생처럼 성인이 돼서도 시답잖은 얘길 하며 웃고 있는 우리가 참 철없고 좋았다.
때때로 심각하게 서로 미래를 논하기도 했다. 손재주가 좋던 율은 취미 삼아 시작했던 뜨개질 가방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율의 최우수 고객은 나였다. 새로운 뜨개 가방이 나오면 가장 먼저 주문했다. 율의 미래가 빛나기를 응원하는 내 최선의 방법이었다.
글 쓰는 걸 좋아하던 내게 용기를 준 것도 율이었다. 함께 커피를 마시다 쓴 글을 온라인에 올리도록 권했고 나는 소박하지만 글 쓰는 삶을 시작할 수 있었다.
혼자 골몰하는 성격 탓에 율은 자주 깊은 슬픔에 빠지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를 슬픔의 터널에서 구해내기 위해 온갖 재롱을 떨었다. 맛있는 걸 함께 먹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율의 이야기를 들었다.
율의 응원도 못지않았다. 가족에 대한 걱정이나 관계에 대한 스트레스, 고민을 한 움큼 안고 심해로 내려갔다. 그럴 때마다 나를 끄집어낸 건 그였다. 내 표정과 말투를 살피고 그저 이야기를 들었다. 해결책 따윈 말하지 않고 같이 욕하고 울며 그만의 방식으로 나를 달랬다.
그렇게 각자의 방식으로 건넨 응원이 켜켜이 쌓이고 흘러 우린 서로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하기 시작했다. 응원이 당연해지고 연락이 당연해져 버린 율과 나는 어느새 서로에 대한 애틋함을 조금씩 잃어갔다.
고마움 대신 바라는 게 많아지고 내 생각과 같기를 바랄수록 서운함이 쌓여갔다. 그렇게 생겨버린 틈이 결국 우리를 영영 달아나게 할 거라곤 그땐 미처 몰랐다.
서운함을 늘어놓고 화해를 반복하던 즈음 나는 이 관계에 대해 조금 싫증이 났다. 오래됐고, 나를 잘 알고, 고마운 게 많은 관계. 하지만 오래된 만큼 서운한 게 많고, 나를 잘 아는 만큼 나를 가장 이해 못 하기도 했다. '넌 이런 애잖아, 넌 이런 걸 좋아하잖아' 각자가 가지고 있는 서로에 대한 애정이 편견으로 바뀌는 걸 목도했다.
가깝고 편안해질수록 서로 선을 지킨 우정을 나눴어야 했다는 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 친구와 가족은 분명 다른데 그 경계를 넘나들고 있었다.
그러다 연락이 뜸해지고 몇 번의 안부를 묻다 자연스레 시간이 지났다. 두 번의 연락을 내가 더 했고 율의 건조한 대답을 듣고 마음이 상해 더 이상 연락하지 않았다. 8개월쯤 흘렀을까. 우린 서로 어떤 연락도 하지 않았다.
사실 나는 다가올 내 생일을 기다렸다. 화해할 명분이 필요한 건 아닐까. 서로 자존심 세우고 있지만 결국 화해하게 될 거라 생각했다. 20년을 가까이 챙겨 온 생일을 잊을 리 없으니까. 나의 간절한 바람과는 달리 율은 생일에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 달, 율의 생일이었다. 편지를 쓰고 선물을 샀다. 카톡이나 전화처럼 즉시 반응이 오는 건 피하고 싶었다. 돌아올 반응에 대해 겁을 먹었다면 핑계일까. 율이 집에 종종 물건을 보낸 적이 있어 저장된 주소가 있었다. 우체국 택배를 통해 생일 전날 선물을 보냈고 다음날 택배가 집에 도착했다는 문자를 받았다. 하루, 이틀, 사흘.. 몇 달이 흘러도 그는 답이 없었다.
어쩌다 우리가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시간이 지날수록 관계의 단절이 실감 났고 나는 거의 매일 밤 율이 꿈을 꿨다.
차라리 제대로 싸우기라도 했다면 달랐을까. 잠수 이별 당한 기분으로 2년이 지났다. 지금은 많이 괜찮아졌지만 1년 정도 참 괴로운 시간을 보냈다. 꼬인 매듭을 풀기 위해서 타이밍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실히 깨달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오해는 쌓이기 마련이고 용기를 내기는 더 어렵다는 거.
처음 율이 내게 냉담한 반응을 보였을 때, 그때 물었다면.. 그때 싸우더라도 대화를 요청했더라면 어땠을까. 이 관계의 실패 원인은 내가 율을 탓하고 자존심을 세우며 도망가려 했기 때문이다. 아니, 애초에 그보다 먼저 거리 유지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사고가 날 수밖에 없는 거리였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이렇게 멀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가슴을 치게 한다. 평생을 응원하자던 마음이 일순간 종이 장 보다 가벼운 마음이 되기까지, 나의 실수를 곱씹으며 율을 추억하며 이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