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같은 한 달이었으면 한다만.
어제 11월의 역대급 따뜻한 날씨에
무한 감사의 글을 쓰기가 무섭게
12월은 첫날부터 자신의 존재감 뿜뿜이다.
그럴줄 알았다.
그래야 12월일지도 모른다.
다 자기 본분대로 특성대로 사는거지
나의 애원과 애걸복걸이 통할리는 없다.
12월은 따라서 추위, 이사, 새로운 경로에서의 출퇴근 그리고 성적 작업 및 한 해 마무리로 순삭 예정이다.
본격적으로 바빠지기 전에 한해 마무리를 해본다.
1월은 평소대로 학교에 다녔고
(꼬박 나갔다. 공사 관계로 여름방학이 길어져서 1월까지 밀려드는 일처리에 정년퇴직이라는 야릇한 마음을 온전히 느낄 새가 없었다. 그게 더 다행한 일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나에게는.)
2월은 평소대로 방학의 삶을 보냈다.
(다른 방학보다는 위로 모임이 많았다. 그때 나를 찾아준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3월은 어제도 한번 언급했는데 갑자기 많은 시간에 당황하고 당황하고 당황해서 산책만 주구장창 다녔었고 그 와중에 은퇴 후 첫 일거리를 준 영재원 강의가 그나마 숨통이었다. 그리고는 제주와 부산을 다녀왔다.
제주는 혼자, 부산은 후배와 함께였다만 연례 행사였던 옷쇼핑은 하지 않았다.
출근을 안하는데 옷이 무슨 필요가 있으랴는 생각이 강했다.
4월은 연구팀에 들어가서 정기적으로 할 일을 부여받아 무척 기뻤고(아직 쓸모가 있다는 생각에)
오랜 친구를 만나러 단양을 다녀왔고
교육청 심사 아르바이트라는 종목을 찾았고
<불꽃야구> 시즌 개시 직관을 다녀왔고
그 뒤로도 여러 번 지금 아니면 못볼 것 같은 마음으로 <불꽃야구>를 보러 다녔다.
은퇴해서 가능한 일들이었다.
5월은 아들 녀석이 독립을 했고(아들 녀석이 독립을 하자마자 남편이 재택근무를 하면서 온종일 집에 있게 된 것은 설마 둘이 짠 것은 아니겠지?)
SRT를 처음 타고 대전역 성심당을 돌아봤고
마지막 학교 야구부 녀석들에게 우승 기념 햄버거턱을 쐈다.
6월은 3월부터 줄기차게 사방에 서류를 제출했던
대학 초빙교수 심사 일정이 진행되었고
운좋게 한곳의 마지막 면접을 통과하는 날이
조카와 동생과 함께 나선 제주 여행날이었다.
둘이 좋아해서 나도 좋았다.
7월은 가벼운 마음으로 소독, 각종 심사, 강의 등등 알바의 전성시대를 즐겼고
여름방학 방과후 특강을 하느라 중학생들을 다시 만나 옛 생각에 즐거웠다.
그리고 거의 10년만에 학회에도 나가서 여전한 얼굴들도 만났다.
학계 네트워크도 그리 확장된 것은 아니더라.
8월은 2학기 개강에 대비하면서 푹 마음 편하게 쉬었던 달이었다.
그리고 엄마와 아버지를 이천호국원으로 이장했다. 준비부터 이장까지 근 일년 반은 걸린 것 같다.
하남과 부여땅도 헐값이지만 정리하는데 성공했다. 그것도 준비와 처리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9월부터 11월까지는
대학 강의와 출근과 새로운 환경 적응에 전념하였고
그 와중에 팔려버린 지금 거주하는 아파트와
다시 금방 나간 전세에 당황한 날들이었다.
팔리거나 전세가 빠르게 나간 이유는 아마도
집을 깨끗하게 사용해서일 것이다.
이삿짐 업체도 이렇게 깨끗한 집은 보기 힘들다했다.
그러면 뭐하냐
내가 들어가는 집은 더럽기가 그지없어서
(그곳에서 그렇게 더럽게 하고 살았던 주부의 얼굴은 엄청 이쁘단다. 외모와 청결은 비례하지 않는다. 아무 관계가 없다.)
일단 동생이 폭풍 청소를 하고(병이 날까 걱정이다)
수요일에는 입주청소 전문업체를 불렀다만
사람 참 복을 주고받는 일은 공평하지 않다.
왜 늘 나만 손해 보는 느낌일까?
언젠가는 몰빵으로 복을 받을 것이라
내가 못받으면 아들 녀석이라도 받을 것이라 굳게 믿어본다.
권선징악, 인과응보, 착하게 살면 끝이 있다
이런 이야기는 동화에서만 발현되는 것은 아닐것이다. 설마.
이제 한 해 마무리를 적어보았으니
오늘 할 일을 각인시켜볼까나.
아침 차리고(내 아침은 지극히 간단한데 남편 아침을 차려야 한다.)
잔반으로 점심 도시락 싸고(양배추 소고기 볶음밥과 계란 묻힌 빵이 있다.)
10시쯤 느긋하게 자차 출근하고
(집에 있는 물건들을 사무실로 이동 시켜 배치한 것들이 있다. 몇몇 그림과 토스터기 등등이다.
오늘은 마무리로 화병과 몇 개의 소품들을 더 나를 예정이다. 내가 없어도 그 공간을 밝혀줄것이라 생각한다.)
강의하고 안전귀가하고
8시에 <불꽃야구> 본방을 사수하면 되겠다.
오늘 경기는 분명 라이브로 경기 당일에 마음 졸이며
다 본 것인데
승패를 빼고 내용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무척 팽팽한 경기였다는 것과
고졸로 올해 프로에 간 선수들이 꽤 잘했다는 것은 기억이 난다만.
다행이 나만 그런 증세를 보이는 것은 아니더라.(단톡에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증세를 호소한다.)
경기한지 3개월 정도 되었으니 잊어버리는 것이 당연하다.
오늘 1년 복기도 일정을 빼곡하게 써놓은 달력을 참고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잊어야 또 새로운 기억으로 채울 수 있는 것이 순리일지도 모른다.
12월이다. 와라. 추위도 당당하게 옷을 두둑하게 입고서 겸손하게 맞서보겠다.
선물같은 한달이 되기를 소망하고 있다만.
(저 대문 사진 뒷편의 선물같을 필요는 없다. 저것은 고가의 명품 악세사리 브랜드 것이다. 난 소소한 편지 선물이나 커피 쿠폰 정도를 기대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