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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당탕탕 이사 적응기. 03.

첫 번째 동네 산책 버전

by 태생적 오지라퍼

점심을 먹고 용기를 내어 집을 나서 본다.

주된 명목은 전자렌지 청소용 식초를 사기 위해서이다.

이사하기 전 닦았어야는데 미뤘던 터인데

남편이 좋아라 하는 생선을 자주 돌려서인지

생선 냄새가 미묘하게 났다.

깔끔한 막내 동생이 사오라했으니 그것을 핑계삼아

첫 번째 동네 산책에 나서본다.

어라. 날이 안 춥다. 바람도 안분다.

따라서 멋들어진 눈사람 창작품을 볼 수는 없지만

웬 횡재냐 싶었다.

내일도 안춥다니 내일은 반대편으로 산책 예정이다.


아는 곳이라고는 지난번 전세 계약하러 올 때 보았던 단지 건너편 부동산밖에 없으니

살살 그 길을 따라 걸어 올라가 보기로 한다.

아마도 동생이 근무하는 대학교가 그 언덕 위에 있으리라 짐작된다.

주변에 세탁소와 미용실도 확인해두고

맛집처럼 보이는 곳은 어디인지 빵집은 어디 있는지 파악해두는 것이 목표였으나

대학가 앞이라 그런지 편의점만 한 집 건너 하나씩이다.

그래도 대학이 두 곳이나 근처에 있어서

여차하면 학식도 먹을 수 있고 캠퍼스 산책도 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봄이 오면 벚꽃이 많이 필 것이고

산에는 개나리와 진달래도 있을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픈 남편의 운동 겸 산책에도 보탬이 될 것이다.

단지 앞 슈퍼는 웬만한 있을 것은 다 있는 듯하니 그것도 다행이다.


산책을 마치고 오니

어제 배송시킨 대형 마트 먹거리가 오늘 배달되어 왔고

오늘 시킨 비상대비 전기난로와 이불세트도 배송되어 왔고(진짜 로켓 속도이다.)

제일 먼저 주문했으나 내일 도착 예정인 옷걸이만 오면

당분간 힘든 일은 없을 듯하다.

오늘 8시 이 집으로 도착 예정인 남편만

제대로 잘 찾아온다면 말이다.


3종 국을 끓여두었고(황태미역국, 소고기무국, 콩나물국)

버섯과 두부 구워두었고

야채 다듬어 잘라 두었으니 주말까지는 먹는 것으로는 아무 걱정이 없다.

이제 조치원에서의 본격적인 적응을 위한

다음 주 일주일을 보내고나면

14일 기차로 남편 항암을 위한 서울행이 계획되어 있다.

서울과 조치원에서의 번갈아 사는 삶.

조금은 힘들겠지만 나름 지루하지 않고

즐거움을 줄 것이라 그렇게 생각하련다.

일상 생활은 다 마음먹기 나름이다.

그 말을 굳게 믿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든든한 막내동생과 제부가 있으니 걱정은 조금만 하련다.

19일 종강때까지 제발 눈 폭탄과 강추위만 없기를 기도할뿐이다.


(요즘 내 대문 사진은 후배님 작품의 경우가 많다.

이 사진은 어제 서울시내 도심 시티버스투어를 하다가 남산타워에서 찍은 사진이라고 보내주었다. 남산타워에 나도 얼마전 갔었는데

이 수준으로는 못찍었다.

그리고 이사오기전 가끔 다니던 미용실 사장님께는 문자를 보내두었다.

제가 목요일에 동생이 사는 지방으로 이사를 왔어요. 그날 마지막으로 드라이하고 인사하려했는데

이사 일이 늦어지고해서 못뵙고 왔네요.

그동안 감사했어요. 건강하세요.

문자를 안하고 안가면 혹시 걱정하실까 싶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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