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골목투어 스물 아홉번째
좋지 않은 예감은 틀린 적이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몸은 빅데이터가 내장되어 있는 AI 플랫폼과 비슷하다.
그리고 살아가면서 다치거나 아프거나 했던 데이터는 누적되어 남아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사람마다 약하거나 아픈 부위가 있고
보통때는 모르지만 면역력이 떨어지거나 피곤이 쌓이면 그 부위에 신호가 나타나게 된다.
힘드니 쉬어라라는 경고 메시지 일수도 있다.
내 드라이브에 파일이 꽉 찼으니 정리하라는 메시지와도 같은 역할이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오늘은 하루 종일 휴식을 취하는 날이었다.
어제 밤 늦게까지 종종거리며 망원경을 나르고 간식을 나르고 핫팩을 옮기고 서 있었으니
부실한 내 다리에 무리가 갈만 했다.
화, 수, 목요일에는 며칠 남지 않은 가을 날씨가 아쉬워서 즐겨보겠다고
서대문역 인근, 사직동 근처, 건국대 인근을 열심히 걷고 사진을 찍고 했더랬다.
멋진 사진은 남았으나 그에 못지않게 다리 근육에는 피로감이 남았을 것이다.
그래서 더더욱 오늘은 쉬어야 마땅했는데 오전에 날씨가 그렇게도 좋을수가 없었다.
오후에는 비예보가 있어서 저 이쁜 단풍들이 다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조급함과 아쉬움이 너무도 컸다.
원래는 도톰한 기모가 들어간 후드티 하나 적당한 것을 살까하고 나선 길이었다.
내일의 <최강야구> 직관 대비용이었다.
고속버스터미널 아래 지하상가가 요새 나의 주된 아이쇼핑 장소이다. (구매한것은 별로 없다)
지하철역까지 가는 날씨는 정말 최고였고 오늘 대학교에서 논술 시험이 있었는지 지하철과 역마다 수험생과 학부모들로 넘쳐났다.
고속터미널역에 내려서 사람들에 치여서 걸어가다가
문득 근처에 있는 반포한강공원을 가본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것을 기억해냈고
저절로 발걸음이 그쪽으로 향했다.
가본적은 없는데 기억에는 남아있다.
얼마전 안타까운 사고가 났던 바로 그곳이다.
그곳을 찾아 경건한 애도를 한번 표하고 싶긴했었다. 꽤 오래전 사고였지만 기억에 너무 강렬했다.
나도 분위기와 친구를 무지 좋아하는 외아들을 키우는 엄마여서 일것이다.
유명한 아파트 숲 사이를 건너 반포대교와 잠수교 지하가 보이고
멀리 남산과 한강을 중간으로 강남과 강북이 모두 보이는 멋지고 넓은 한강공원에는
다른 한강공원처럼 러닝을 하거나 산책을 하거나 공놀이를 하면서 주말 오전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었고
다른 점은 결혼식장과 요트장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요새 결혼식장을 보거나 방문하는 일은 부럽기만 하다.
하나뿐인 아들 녀석을 압박한다고 되는 일이 아닌지는 잘 알고있지만 나에게 아들의 결혼보다 더 좋은 선물은 없지싶다.
인공섬으로 이루어진 요트장 근처는 마치 외국과도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눈오는 크리스마스 즈음에 이곳의 식당에서 프로포즈를 받는다면
나는 무조건 예스라고 할 것 같은 주변 환경이었다.
물론 내 생각이다. 다른 사람들은 그런 환경에 휘둘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곳에서도 멋진 자태를 보이고 있는 남산타워에 감격했다.
서울의 랜드마크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남산타워라고 주저없이 대답할 것이다.
남산타워가 보이는 장소라면 그곳이 어디든 처음 간 곳이라도 안도감을 느끼게 되니 말이다.
그렇게 한강공원을 크게 한바퀴 돌았지만 안타까운 사고 장소는 찾지 못했다.
아직 국화꽃이 놓여져있다고 전해들었으나 볼수는 없었고 나는 마음으로 최선의 애도를 표했다.
그러나 이렇게 멋진 곳에 멋진 아들을 묻은 부모의 마음은 어떤 위로를 보내더라도 헤아릴 길은 없을 것이다.
이렇게 만족스런 가을 나들이를 마치고 해피엔딩을 꿈꾸었으나 아뿔싸, 또 왼쪽 발가락에 쥐가 났다.
종아리에 나는 쥐는 열심히 문지르고 주무르면 조금 나아지는데 발가락에 나는 쥐는 발가락이 뒤틀려서 꼬이는거라 처치가 더 힘들다.
좋지 않은 예감은 슬프게도 틀린 적이 없다.
그 순간의 아픔은 해피엔딩을 새드엔딩으로 순식간에 바꾸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내일 무엇보다도 큰 행사가 있는데 조심해야한다고 주는 내 몸의 경고를 말이다.
물을 먹고 바나나도 먹고 마그네슘도 먹고 내일의 큰 행사를 버텨내야 한다.(누가 보면 최강야구 PD인줄 알거다.)
잠실 야구장은 아들 녀석 어렸을 때 가고 가본 적이 없으며
내년에 서울을 떠나고 나면 더더욱 그곳을 갈 기회는 없어보이므로 꼭 가보려 힘들게 취소표를 구했다.(금손 아들의 도움을 받았다. 감사)
그리고 무엇보다도 김성근 감독님의 야구복 입은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으니 말이다.
<최강야구> 파이팅,
김성근 감독님 파이팅,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왼쪽 발가락도 파이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