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지않은 혼밥요리사의 비밀 레시피 110
곱창이 생각나는 이유
원래는 10시 45분 낙성대역 4번 출구 앞 집합이었다.
그러면 모퉁이를 돌아 그 유명한 빵집에서 빵을 하나씩 사들고 마을버스를 타서 서울대안의 식당에 서 쌀국수를 먹고 특강을 들으려 했었다.
그런데 세상에 계획대로 되는 일은 그리 많지 않은 것처럼(왜 그런걸까?)
융합과학동아리 독수리 7형제 중에 여학생들은 이미 10시 25분에 도착해있었고
남학생 한 명은 꽤 늦어진다고 연락이 왔다.
초행길에 두고갈순 없으니 기다려야 할 판이다.
어떻게 할까 하다가 낙성대역 근처에서 이른 점심을 먹으려고 주변 식당을 살펴보았다.
아이들이 배고프다는 것을 보니 아침도 잘 안먹은 듯 했다. 주말이 아닌가.
낙성대역에서 서울대를 올라가는 길목에는 백반집, 분식집, 돈가스집, 타고 가게, 순대국집이 눈에 띄었다.
아이들은 놀랍게도 순대국집을 선택하였다.
나는 돈가스를 예상했었다.
거기다가 곱창을 먹어도 되냐고 수줍게 물어보았다. 영낙없는 50대 아저씨 식성이다.
곱창은 호불호가 있는 음식이고 잘하는 집과 잘하지 못하는 집의 격차가 큰 음식이다.
따라서 나는 곱창을 아무데서나 먹지 않는 편이다. 이미 먹어봐서 검증된 식당에서만 먹었다.
곱창집 중 최악은 곱창 특유의 냄새가 나는 곳이다.
그런데 아이들이 그리 원하니 할 수 없었다.
양에 차지는 않겠지만 점심이고 해서 모듬 곱창과 1인당 1순대국을 시켜주었다.
순대국은 9,000원이니 중식비 학교 예산으로 하면 되고
모듬 곱창은 늘 그래왔듯이 나의 서비스이다.
그러나 이런 서비스 할 기회도 몇 번 남지 않았고
이 추운 겨울날(어젯밤에 눈도 와서 길이 미끄러웠다.)
멀리 서울대학교까지 와서 과학자 특강을 듣는다는 기특한 녀석들이 아닌가?
학교에서 해주는 특강도 안듣는 녀석들도 많은데 말이다.
아이들은 곱창과 부추, 양파와 감자까지 야무지게 먹고
(나도 곱창은 정말 오랜만에 먹었다. 1년은 족히 지난 듯 곱창 먹은지가 언제였던지 생각 나지도 않았다.)
서비스로 주신 간도 먹고 1인 1순대국도, 김치도 남김없이 먹었다. 다행히 맛집이었다. 그리고 잘 먹는 아이들이 이뻐보였나보다.
이제 서울대로 올라가야 할 시간인데
아이들 먹는 것을 관심있게 보던 사장님께서 자동차로 체육관까지 태워다 주신댄다.
오늘의 행사 장소 체육관이 마을버스를 타면 돌고 돌아가는 걸 알고 계신게다.
그런데 차량 1대에 모두 다 탈수는 없으니 감사한 마음에 여학생들은 차량을 탑승시키고
(지난번 삼겹살 식당에서 삼겹살을 서비스로 주신 사장님 이후로 또 고마우신 사장님을 만났다.
아이들에게 꼭 서울대 합격하고 이곳으로 인사오라했다.)
나는 남학생들과 택시를 타고 가려했으나 택시가 안잡혀서
마을버스를 타고 공대까지 올라갔다 내려오느니 중간에 내려서
눈길을 미끌미끌 뛰다시피 걸어서 오늘의 특강 장소에 간신히 도착했다.
다행히 바람이 심하게는 안 불어서 추위를 견딜만 했다.
원래 관악산은 춥다. 따라서 서울대도 춥다.
6개월씩 파견 2회 그리고 주변 건물에서 2년을 지냈던 터라 서울대 출신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익숙하다. 오랫만에 걷는 서울대가 정겨웠다.
행사장인 체육관에 도착하니 놀랍게도 과학 특강을 들으러 전국에서 온 학생들로 인산인해이다.
물론 고1이 대부분이다.
지방에서 학생을 인솔해온 제자 겸 후배 교사도 우연히 만났다.(내 덕분에 제대로 배우고 교사한다는 감동의 톡도 보내주었다.)
안내때부터 강의 내용이 약간 어려울 것이라고는 생각했지만(원래 교수님들 강의는 쉽지 않다.)
이 녀석들을 내년에 볼 수는 없고
또 이들이 고등학교에 갔을 때 이런 곳을 함께 와줄 선생님이 있을지 없을지는 알 수 없다.
꼭 교사가 함께 동반 입장해야 하고
노쇼에 대비해서 5만원의 약정금액을 입금까지 시키는 약간은 까다로운 이 행사에
그러나 퀄리티는 보장되는 이 행사를
이들이 내년에 올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으니
내가 마지막 선물로 해주고 싶었다.
녀석들이
<빙하에 숨겨진 공기방울, 보이지 않는 우주를 탐험하다, 저글링하는 수학자가 있다고?, 툰드라 벌판에 선 과학>
결코 쉽지만은 않은 네가지 주제에 대한 강의 내용을 모두 다 알아듣지는 못했을것이다.
그리고 관심분야도 다 다르다.
작년의 경험으로 저글링을 친숙해하기도
남극과 북극 이야기에 신기해하기도 했다.
난 오늘 북극의 식물 이야기가 제일 좋았다.
그곳에 꽃이 피어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은
주변에 이렇게 많은 자연과학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있다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자극이 되었을 것이고
(오늘은 1,700명 정도가 모인 대형 행사였다.)
중성미자, 수열, 집합, 동위원소분석, 유공충 등의 내용은 다음에 배울 때 친숙해지리라 그리고 더 쉽게 알아들으리라 믿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서울대 응원단의 멋진 응원도 보았으니
(마침 응원가가 우리가 연주할 축제 밴드 그 노래라서 더 심쿵했다.)
한 층 더 대학에 대한 동경심과 목표 의식이 생겼을 것이다.
쉬는 시간에 푸드 트럭에서 먹은 꿀호떡, 떡볶이, 오뎅, 순대도 맛있었다.
역시 학교에서 먹는 것은 무엇이든 맛난다.
학교에서 먹어서일수도 친구들과 경쟁하듯 먹어서 일수도 있다.
마지막은 서울대학교 시그니처인 정문 앞 표지에서 멋진 포즈로 사진찍는게 국룰이다.
잘 찍은 사진과 영상을 단톡에 서로 공유하는 것으로 나의 마지막 학생 인솔 행사를 마쳤다.
이들의 3년 뒤를 기대한다.
비록 내가 학교에 있지는 않겠지만
이들이 서울대를 가는 것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학을 전공하려는 힘든 발을 한발 내딛는 것을 기대하는 것이다.
자연과학의 힘을 믿고
그것을 좋아라하는 그들의 잠재역량을 믿는다.
오늘 1,700여명의 말똥말똥하던 눈망울을 기억하면서 말이다. 멋진 질문도 많이 나왔다.
물론 강의 시간에 핸드폰게임에 빠져있던 165명 정도는 제외하고 말이다.
(그나저나 아이들 먹이느라 곱창을 한 조각밖에 못먹었더니 급 생각이 난다. 이 밤중에 말이다.
냉장고에 부추,감자,콩나물,양파는 있는데 곱창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