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골목 투어 서른 한번째
서울대입구역에서 낙성대역 사이 그 공간의 기억
서울대는 서울대입구역에서 절대 가깝지 않다.
서울대입구역에서 걸어서 서울대를 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물론 날 좋은 날 산책삼아 걸어 걸어 간다면이야 굳이 말리지는 않겠다만...
서울대는 낙성대역과 서울대입구역 사이에 있다.
요새 새로 생겼다는 관악산역은 한번도 이용을 못해봤으니 여기서 이야기 할 수는 없겠다.
나는 주로 낙성대역에서 마을버스를 타는 방법을 이용하는데
이것은 2년간의 서울대 후문쪽 과학전시관
(지금은 이름이 바뀌었다. 서울시교육청 융합과학교육원으로... 이름만 바뀐 것이지 하는 일은 똑같다.)
파견 근무때 출근길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당시에 살았던 신용산역에서 4호선을 타고 사당역에서 환승하여 낙성대역 4번 출구에서 마을버스를 타는 길이다.
아직도 몸이 기억하는 길이다.(어제 가보니 저절로 기억이 나더라)
나는 사당에서 낙성대역쪽으로, 아들 녀석은 강남쪽으로 각각 반대 방향으로 환승하는 출근길을 2년간 함께 했었다.
낙성대역에 내리면 그 주변을 가본 사람들은 누구나 알고 있는 빵집이 있다.
맛이 그렇게 뛰어난 것은 잘 모르겠다만 일단 사이즈가 엄청 크고 가격은 착하니 매일 줄서서 빵사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옆으로는 마을버스 줄을 서는데
대부분 서울대에 일이 있거나 아니면 관악산 등산을 위해 탑승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마을버스를 타고 올라가는 길목 호암회관과 과학전시관을 끼고 한 바퀴 도는 언덕길에
있는 아파트는 분명 서울이지만 서울이 아닌듯한 면모를 보여주었다.
고즈넉한 분위기에 고추와 상추가 자라는 텃밭이 보이고(주민들끼리 나눠 먹는듯 했다)
입구에 하나뿐인 슈퍼는 그 동네 사랑방이며
그 지하에 있었던 식당에서는 주문하는 음식이 모두 다 되는 신기한 중식 위주의 오마카세 형식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코로나 19 이후로 문을 닫았다.
그때 문을 닫은 자영업자가 한둘이 아니다.
과학전시관에서의 나의 임무는 영재교육원 운영이었다.
중학교 2,3학년 대상의 서울시교육청 산하 영재교육원이 있다.
그곳의 교육과정을 짜고 강사를 섭외하고 다양한 교사 연수를 진행하는 일은 나의 적성에 딱 맞아서
나는 별 어려움 없는 2년을 보냈다.(스타일이 전혀 맞지 않는 동료가 한 명 있긴 했다만...)
그리고 그때의 약간의 쉼이 나를 명예퇴직이 아닌 정년퇴직의 길로 이끌었다.
그때도 점심시간에는 역시 주변 산책을 하였다.
꽃도 보고 텃밭도 보고 길건너에 세워진 농업센터도 가보고
시간이 조금 나면 서울대까지 올라가서 커피 한잔을 들고
서울대의 멋진 연못도 보고 젊은 학생들의 기운도 받고 기숙사나 자하연 건물의 학식을 먹기도 했다.
아니면 반대쪽 강감찬 공원으로 가서 옛 건물이 주는 정취를 느끼기도 하고
기원도 하고(기원이 이루어진 내용이 딱히 있는 것 같지는 않다만)
그곳에서 만개하는 감성 만발 벚꽃 사진을 찍어보기도 하고
그곳 카페에만 있는 커피빵을 한 입 물어보기도 하고
참으로 점심시간 다운 점심시간을 보냈었다.
학교에서의 점심시간은 중식 지도와 각종 민원처리로 쉼이 있는 시간이 아니다.
따라서 교사의 퇴근이 빠른 것은 점심시간도 근무 시간에 포함되기 때문인 것이다.
과학전시관에서는 학생 지도가 없기 때문에 점심 시간이 근무 시간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 2년동안 나는 서울대와(특히 후문에 가까운 쪽 건물과) 친숙해질 수 있었다.
낙성대입구역에서 기억에 남는 맛집은 달걀 지단이 반 이상을 차지하는 김밥집이었다.
지금같은 시대에 배달이 되지 않는 곳,
미리 주문 전화를 하고 직접 찾으러 가야만 하는 곳
그런데 주문 전화를 수십번 돌리면 운 좋게 간신히 한번 통화가 되는 곳이다.
(지금은 시스템이 바뀌었을래나? 나의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3년전 이야기이다.)
그리고 생각보다 김밥이 꽤 무거워서
2인 1조로 차를 가지고 가서 길 옆에 차를 주차하고 대기하고 있다가
김밥을 가지고 다시 과학전시관으로 돌아오는 번거로운 방법말고는 도통 먹을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이렇게 어려운 방법으로 연수에 온 선생님들께 이 김밥을 대접하고 나면
만족도 100%인 연수가 되었으니(역시 사람에게는 먹는 일이 제일 중요하다.)
많이 힘들고 신경쓰여도 연수 기간 중 한번은 제공 안할 수가 없었다.
달걀이 반 이상인 그 김밥집은 지금도 성업중이려나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나는 입을 크게 벌려야했으므로 그렇게 열광적으로 좋아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한 줄 다 먹으면 배가 너무 부른다는 단점도 있다.
남들에게는 장점일 수 있는데 나에게는 단점이다.
서울대입구역은 상대적으로 그렇게 친숙하지는 않은데 가끔 가야만 할 일이 생겼다.
과학전시관에서 맛집들로 소문난 샤로수길을 거쳐 서울대입구역까지는 빠른 걸음으로 걸어야만
점심시간 한 시간에 다녀올 수 있다.
그 샤로수길 입구에 근방에서 제법 커다란 문구점이 있다.
과학전시관에 필요한 물품들이 있는데 인터넷주문이나 배송이 불가능한 물품이 있으면 그곳으로 사러간다.
그런 날은 샤로수길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길에서
양이 많고 맛난 멸치베이스의 잔치국수와
수제 통단팥 빙수를 먹었고
엄마가 해준 맛과 비슷한 고추장찌개도 먹었으며
달달한 마카롱 선물 세트도 샀고
수제 햄버거를 대량 주문하기도 했다.
그리고 서울대생들이 자취할 것이 틀림없는 빌라가 가득한 언덕길을 올라서
문구점에 도착하면(옛날 학교 앞 그 모든 것이 있던 그 문구점과 비슷하다.)
이것 저것 우리가 원한 것들이 그곳에 있었다.
학교 앞에 문방구가 꼭 있었야했던 이유를 이제는 안다.
학교 활동에는 소소하지만 꼭 필요한 다양한 것들이 있다.
그리고 지금은 인터넷으로 모든 것을 편하게 살 수 있는 시대이지만
내가 원하는 딱 그것을 원하는 양 만큼 사는 것은 쉽지 않을 수 있다.
점점 사라지고 있는 학교 앞 문방구에서의 추억을 같이 나눌 사람이 이제는 없다.
많이 추운 오늘.
비록 꽃은 없지만 모든 식물들은 나름대로 버티면서 내년 봄을 기약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옛 추억을 되새기며 글을 쓰고 하루 종일 집에서 칩거중이지만(겨울잠을 자지는 않았다.)
추위가 조금 주춤해지면 어딘가를 가기 위해 집을 나설 것이다.
그곳이 티눈 3차 시술을 위한 병원이 될 확률이 아직까지는 크지만 말이다.
일단 다음 주에는 위와 대장 내시경이 기다리고 있다.
그것을 잘 넘기는 일이 가장 큰 미션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일부터 피해야 하는 음식이 너무도 많다.
잡곡류도 안되고 김치와 나물 종류도 안되고 씨있는 과일 종류도 안된다.
워낙 조금씩만 먹는 터라 그리 걱정되지는 않는다만
위와 대장에 다른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받는 일이 지금은 꼭 필요하다.
심정적으로 배가 아픈 느낌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남편이 아픈데 나까지 아플 수는 없다.(우리가 그 정도로 천생연분은 아닐것이다.)
버티고 버티면 좋은 날이 올지는 모르겠으나 더 나빠지지 않을 수는 있다고 믿는다.
식물들도 버티는데 나도 해낼수 있을 것이다.
서울대입구역에서 낙성대역 사이에서의 좋았던 시절의 그 기억이 나를 버티게 하는데 오늘처럼 조금은 도움을 줄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브런치에 이렇게 좋은 기억들을 되새기고 적어가는 일이 나에게 큰 힘을 줄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