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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과학 교사의 수업 이야기 131

모든 과학 활동의 기본은 관찰과 추론

by 태생적 오지라퍼

아직 무언가를 결정하지는 못한 채 백수생활 2주차를 보내고 있다.

의료보험은 그냥 놔두면 변경된다했는데

한번 더 체크해봐야 할 것 같고

누군가는 정년퇴임하고도 일생에 한번은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하던데

그 부분도 확인이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구직을 하고 있다는 증거가 필요하다는데

아직 구직을 위한 노력은 별달리 하고 있지는 않고

개인사업자 등록은 하였으나(교육관련 컨설팅과 행사나 연구 진행)

사업자등록증 출력도 안한 상태이고

명함을 만들어야하나 생각중이다.

여하튼 확실한 것은 무슨 일이든 정기적으로 해서

몸과 마음의 건강을 지켜야 하겠다는 다짐뿐이다.

기상 시간은 출근할때와 다름없다.

내 몸은 퇴직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아직은...


그런 와중에 불규칙적이긴 하지만

내가 제일로 좋아라 하는 영재들과의 특강 몇 개가 예정되어 있다.

지난 주 토요일이 그 날이었다.

초등 5학년 10명의 똘망똘망한 친구들은

모두가 발표도 잘하고 실험도 좋아라하고 수학이나 과학말고도

음악, 미술, 체육에 관심이 많다는 다방면에 우수한 친구들이었다.

교사의 입장으로 보나 부모의 입장에서 보나 흐뭇하기만 했다.

그 날의 수업은 설탕, 소금, 녹말을 대상으로 한

용해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큰 주제였는데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처음 본 오리 모양의

전기전도도 센서 장난감이었다.

손에다 오리를 올려다 놓으면 오리 발바닥에 있는 전기전도도 측정 센서에서

오리 소리가 귀엽게 울리는 우리 몸에 전기가 흐른다는 것을 알려주는 장난감이다.

이렇게 장난감을 통해서 과학의 원리를 이해할 수 있으면 그것은 참으로 재미있고 의미있는 일일것이다.

기존 전기전도도 센서는 소리가 너무 크고

소음 수준이라면

이 장난감은 귀여운 디자인과 소리여서 거부감을 줄일 수 있었다.

장난감과 교구 사이의 차이는 재미를 추구하다가

과학 내용과 어긋나게 되느냐 아니냐의 문제일 듯 하다.

퀄리티 높은 과학교구가 많이 나오면 흥미 유발과 쉽고 재미있는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은 분명하나

그렇지 않으면(아직은 다소 조잡한 수준이 많이 있다.) 예산만 낭비하게 된다.


오후에는 중학교 2학년 대상의 지질학 부분 특강이었는데 아쉽게도 여학생은 없다.

대부분 추세가 그렇다.

과학 영재대상의 수업이라고 하면 여학생이 항상 소수였다.

20년전쯤에 모 교육지원청 과학영재 수업에는 출발할 때 여학생이 단 1명이었었는데

그것도 얼마지나지않아 자퇴해서 여학생이 전무한 예도 보았었다.

오죽하면 한 때 <여학생 친화적인 과학>이라는 과학교육 용어가 등장했을 정도이다.

과학에 대한 호기심이 성차에 따라 달라질 선천적인 이유는 없다고 보여지지만

자라면서 사회적인 환경과 부모님의 의지 등에 따라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은 충분하다.

(나의 석사논문 주제이기도 하다.)


그 날 추론에 추론을 거듭하는 지질학의 묘미를

조금은 느끼게 되었을지 모르겠다.

대부분 과학을 좋아라 한다는 학생들은 수학에서 유래한 물리 분야를 선호하거나

정량적인 실험을 좋아라 하는 화학 분야를 선호하거나

신체나 생물에 대한 호기심에서 출발한 생명과학적인 탐구를 선호한다.

지구과학의 영역 중에는 천문학 부분이

관측으로나 이론으로나 가끔 매니아 수준으로 좋아하는 학생들이 있는데

혼자 공부하거나 관측을 하기에는 쉽지 않은 분야임에 틀림없다.

그런 의미에서 지질학은 전공 분야로 선택하기에는 우선 순위에서 밀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안타깝지만 현실이다.

지질학의 묘미는 아주 오래 전 과거에 일어났던 일을 다양한 증거 자료를 통해서 논리적으로 추론해본다는

마치 만화영화 <소년탐정 코난>의 주인공과도 같은 연구라는 점이다.

제주도에서 찍은 하나의 지층 사진을 오늘 타이틀에 올려두었다.

저 지층에서 오랜 시간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에 대한 관심에서 지질학은 출발한다.

(물론 저 지층이 인위적인 이동이나 움직임등이 없었다고 가정할 경우에만 의미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암석, 광물, 지각, 그리고 지구의 운동까지 다양한 개념들을 모두 이해하고 적용하는

융합적인 사고 과정이 필요하다.

관찰과 추론. 이 부분에 대한 매력을 갖고 있다면

한번 도전해볼만 하다.

딱히 지질학에서만이 아니라 모든 과학의 출발점은 관찰과 추론이 되어야 마땅하고

수많은 관찰을 빅데이터로 집약해서 비교 분석하며

그 근거에 따른 추론과정을 공고하게 다져서

이론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과학자의 연구가 되어야 마땅하다.

토요일에 만난 그 영재들이 진정한 과학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되었으면 참 좋겠다.


(오늘 흙의 날 기념 최재천교수님 특강이 있었는데

남편 점심차려주느라 못갔다. 다음 기회가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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