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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과학 교사의 수업 이야기 149

누구나 계획은 창대하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오늘은 방과후 여름방학 특강 개강일이다.

오랜만에 중학생들 앞에서는 일이라 기쁘기도 하고 신나기도 했고

나름 작년에 나와 수업한 중3 들이 신청했으리라 생각하고

반가운 얼굴들을 만나볼까하고 집을 나섰다.

그리고 수업안도 중 3 대상으로 준비했었다.

그런데 진작 신청자 구성을 물어볼 것을 그랬다.

바쁜데 물어보나 싶어서 그냥 내 짐작으로만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오늘 가서 출석부를 보니 중 1이 1/3, 중2가 1/3, 중 3이 1/3이다.

물론 안내는 학년 상관없이 모집하기는 했었다.

누구나 계획은 창대하다. 현실과 부딪히기 전에는...


그래도 1,2,3학년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는 주제로 준비한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당황하지 않는 표정으로 강의를 시작한다.

어차피 오늘 주제는 과학에 있어서의 공간과 시간의 의미 그리고 단위의 필요성

그리고 어림하기와 측정하기에 대한 내용이다.

아무도 들어본 적 없는 내용이니 피차 처음 듣는 내용이다.

무학년제 시스템은 영재원 수업에서 가끔씩 해보던 형태이다.

실험을 중심으로 하면서 적당한 이론을 알려주고

이해를 기반으로 하면서 약간의 기본적인 암기의 필요성을 알려주고

재미도 있으면서 의미도 있는 매번 그런 강의가 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그런 강의는 강사 혼자 만들 수는 절대 없고

수강자와 강사의 케미가 맞아야 한다는 점이다.

쿵하면 짝하는 그 케미가 강의에서도 존재한다.

첫 시간부터 그 케미가 발동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게 오랫동안 중학생 대상의 강의를 해도

새로운 주제는 항상 신비감을 준다.

좋게 말하면 신비감이고 나쁘게 말하면 두려움이다.

그리고 물리학, 화학, 생명과학, 지구과학을 영역별로 나누지 않고

하나의 이슈에 통합해서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은 나에게도 새롭다.

그런데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 형식은 이것이 맞다.

대학에서의 강의 맛보기를 진행한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지금은 맛보기, 대학 강의는 조금 더 심화라고 생각하면

더욱 중요한 시간이 될 것 같다.

과학의 특성 관찰과 추론, 어림하기와 측정하기, 데이터 수집과 분석을 차근차근 안내하는 시간으로 구성할 예정이다.


부피와 질량을 어림하고 측정해보니 오차가 상당한데

몇번 할수록 오차의 범위는 줄어든다.

역시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역시 먼저 한번 다뤄보지 않은 센서들은 오류가 나온다.

여러 번 공들여 살펴보지 않으면 준비물 중에 무언가 빠진 것도 있다.

계획은 항상 창대하나 현실은 냉엄하고

수업은 100번을 준비해도 해봐야만 알게 되는 자잘한 노하우들이 있다.

그래서 경험이란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도 오늘 강의를 듣는 학생들 말고도

작년에 나와 호흡을 맞추었던 낯익은 케미의 녀석들과의 만남과

(야구부 녀석들과의 야구 이야기로 시간가는 줄 몰랐다.)

한 부서였던 젊은 선생님들과의 즐거운 저녁 식사 시간만으로도

(그동안 우리를 거쳐간 제자들 걱정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오늘 할 일은 다했다.

아니다. <불꽃야구> 본방 사수가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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