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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하지만 소중한 하루 첫번째

어제 돌아보기

by 태생적 오지라퍼

어제는 오후 네 시까지 집 대청소가 진행되었다.

그 정도까지 오래 걸릴거라 생각하지는 못했었다.

입주 전 청소는 한나절이었던 듯 해서 그 정도가 아닐까 막연하게 생각했었다.

나는 사비로 개학전 교실과 과학실 청소를 부탁한 적도 있고

집안 청소를 여사님께 주기적으로 부탁한 적도 있지만

(청소에 진심이다. 잘하지는 못하지만)

직접 청소 과정과 상황을 살펴본 것은 어제가 처음이다.

그래서 더 그 어려움과 수고로움을 잘 알게되었다.

다른 때는 청소하는 동안에 모두 밖에 나가있었는데

(그래야 일의 효과를 더 높일 수 있다. 전문가는 알아서 잘 처리해주신다.)

어제는 고양이 설이 때문에 나갈 수가 없었다.

설이만 두고 나갔을 때 설이가 생각하는 공포심이 걱정되어서이다.

물론 내가 있었어도 설이는 계속 침대밑에 숨어있다가

마침내 그 침대밑을 청소할 순서가 오고

청소기가 들어오는 순간

필사적으로 도망가는 설이 발톱에 내가 찔리기는 했다.

다행이다. 내가 찔린게 어디냐?



청소가 끝나고 나서는 나의 백수 계획 1조인

1일 1산책에 나섰다.

다리 근육 확보를 위한 최선의 방안이다.

하루 만보걷기 미션인 어플을 깔았더니

무언중에 계속 나를 압박한다.

집안에서는 청소를 한다고 움직이기는 했지만 휴대폰을 계속 들고 다니는 것은 아니니

고작 200보 정도가 찍혔을 뿐이다.

나는 대부분 목적이 있는 산책을 구성하는 편인데

어제의 목적은 교체한 휴대폰을 수거함에 넣는 것이었다.

같은 업체의 휴대폰으로 교체를 알아보다가

서비스센터 구석에 휴대폰 유료 수거함이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냥 수거함에 넣으면 안된다.

충전을 해서 핸드폰 상태를 확인하고

초기화를 시킨 후에만 수거가 가능하다.

오랫동안 사용한 핸드폰과 이별을 고하는 그 순간.

나는 곧 수거함에 들어갈 핸드폰을 열심히 닦아주었고

그 핸드폰과 함께 한 추억을 잠시 떠올렸고

초기화로 산산히 날라갈 내 사진들을 떠올렸고

마치 수거함에 들어가는 핸드폰에 정년퇴직한 나를 대비시키면서 잠시 울컥했다.


그런데 울컥한 것은 잠시였고

소정의 핸드폰 수거 보상금이 입금되자

맛난 빵 사먹을 생각에 미소지었다.

사람 참 간사하다.

그러나 그 핸드폰을 들고 있어서 뭐 할 것이냐.

자원 순환 차원에서라도 수거하는게 맞다. 잘가라.

이렇게 사용하지 않는 더 오래된 핸드폰이

한 대 더 있는데 그것은 다른 업체 것이니

다음 산책 목표로 삼아본다.


돌아오는 길에는

루꼴라가 가득 들어있는 샌드위치를 아침용으로 샀고

반대편 길로 돌아가서 현금을 조금 찾고

2,000원 어치 긁는 복권도 사고

(야호 한 장은 1,000원,

다른 한 장은 10,000원 당첨이다.

10,000원짜리 당첨은 처음이다. 과자 사먹어야지.)

요새 최애 과자인 모나카도 사고

(왜 점점 친정 아버지를 닮아가는거냐)

자동차 안에 있는 아들 녀석발 쓰레기도 정리하고

(차 실내 정리 스타일은 왜 지 아빠를 닮은거냐)

이곳저곳을 돌아돌아(아직 우리 동네에 꽃은 안피었음을 공식 확인했다.)

10,000보 걷기를 완수하고 돌아왔다.

오늘 내가 한 것이라고는

청소하는 동안 간식드리기

나도 중간중간 식기 닦고 정리하기

브런치 글 쓰기와 강의 계획서 작성하기

때때로 설이 살펴보기 그리고 산책하기 밖에 없는데

이렇게 소소하게 사는 하루도 소중한거 맞을거다.

아프면 이런 소소한 삶이 가장 소중하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된다.

왜 소중한 것들은 잃어봐야 지나봐야 늙어봐야 아는 것이냐. 후회스럽기만 하다.


(저녁에 중요한 일 하나를 했다.

카톡에서 더이상 사용하지않는 단톡에서 나가기를 한것이다.

이제 톡방도 완전 다이어트에 성공했다.

이것도 정리이자 청소이자 미니멀라이프의 실현이다. 디지털 청소도 꼭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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