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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 고양이 May 16. 2023

비 오는 날은 동태찌개가 먹고 싶다

닮아서 좋은 사람 

엄마 닮았다는 소리가 듣기 싫었다.      

작은 얼굴에 높은 콧날, 서구적인 아빠에 비하면 엄마는 뚱뚱했고 입이 커서 내 눈에는 못나 보였다.      

경상도 사투리에 꾸밈없는 투박한 촌스러움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엄마 닮았다는 말에 발끈했었다.           

“네가 나 닮지 그럼 누구 닮아? 엄마가 얼마나 배 아파 낳았는데.”          

닮아라, 닮아라. 엄마와 나는 내숭까지 닮았다. 아빠와 첫 데이트에서 냉면에 올려진 고기를 못 먹는다며  

아빠 그릇으로 고기를 옮겼다는 일화는 아직도 우리에게 놀림거리다. 

결혼하니 앉은자리에서 너끈히 고기 한 근은 먹어 치우더라며 아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러고 보니 초등학교 때 나도 좋아하는 오빠랑 빵집에서 빵 먹다가      

“우유 먹을래?” 하며 일어서는 오빠에게      

“저 우유 못 마셔요.” 한 걸 보면     

내 안에도 불여시가 열 마리는 들어앉은 게 분명하다.     

퉁퉁한 살집과 성격도 비슷하지만, 식탐과 먹성도 어쩜 이리 닮았나 싶더니 요리 못하는 것까지 닮았다.

"내가 엄마 닮아서 요리에 재능이 없어. 마흔이 넘어도 제대로 된 음식 하나 밥상에 낼 줄 모르잖아"      

아빠도 안 하는 반찬 투정을 아직도 한다.          

어릴 적 엄마의 음식은 이랬다.     

요리는 모름지기 깔끔하니 보기도 좋으면 좋으련만   

엄마의 시그니처 메뉴는 정체 모를 동태찌개였다.        

그 속에는 고기도 조금 김치도 조금 남은 반찬들까지 넣는 통에 콩자반과 고들빼기 무침이 발견되기도 했다.  두툼한 두부 한 모, 주인공인 듯 주인공이 아닌 듯한 생선도 한 마리 들어 있다.     

그 생선은 동태였다. 어릴 때니 알 길이 없었지만 비릿하니 내 입맛에는 영 별로였다.           

아빠는 카투사로 군에 있을 때 간단히 토스트에 딸기잼 발라 먹었다며 아침부터 찌개를 끓이는 엄마를 말리곤 했다.     

그때마다 나는 아빠와 한목소리를 냈다.      

그런 아빠와는 달리 먹성 좋은 엄마는 동태찌개를 낮이나 밤이나 상에 올리셨고 반기는 이는 엄마뿐이었다.     

저녁에 술 한잔하실 때는 아빠도 국물이 시원하다 하셨지만 군말 없이 먹는 언니들과 달리 나는 꼭 잔소리를 했다.      

국물은 뜨겁고 건더기는 먹을 게 없어 젓가락이 갈 길을 잃었다.           

엄마는 아빠에게 생선 몸통을 주고 나에게는 꼬리를 줬다. 언니들은 뭘 먹었는지 모르겠지만 남은 머리가 엄마 차지였다.      

식탐 많은 엄마가 어찌 살도 뭣도 없는 뼈만 남은 대가리만 먹나 궁금해서 엄마 먹는 입을 유심히 봤다.     

TV 속에 나온 엄마들은 가족들이 먹다 남은 식은 밥에 흐트러진 반찬을 먹고 안 먹어 놓고도 배부르다 했다. 좋은 건 자식들 더 먹이려 이미 많이 먹었다거나   그런 거 안 좋아한다는 하얀 거짓말을 한다는 걸 알았기에 엄마가 혹시 우리 때문에 일부러 안 먹나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엄마는 달랐다. 왜냐면 너무 맛있게 먹었기 때문이다. 어두일미라며 대가리를 통째로 들고 츄릅 츄릅 국물을 빨고 딱딱한 고무 같은 하얀 눈깔까지 꼭꼭 씹었다.   머리에 붙은 살이라도 입에 들어올라치면 두 눈까지 지그시 감으며 뼈를 잘근잘근 씹으셨다.     

큰 대가리가 금세 엄마 입 속에서 짓이겨져 형체가 사라진 뼈만 남았다.      

“그리 맛있어?”          

“어두일미도 몰라?”     

하얀 눈깔 하나를 내 입에 가져다주셨다.        

씹는 입은 일그러졌다.        

“쳇! 아무 맛도 안 나는구먼.”      

나는 뱉어낸다.      

“엄마는 대가리가 제일이야?”          

“응, 엄마는 대가리가 젤 맛있어.”          

얇은 살림이라 일부러 그러나 싶다가도 엄마의 식탐을 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닌 듯하다.          

엄마의 식탐은 친가에서도 유명했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일이다. 엄마가 나를 배고 아빠와 싸워 수원에 있는 시댁에 갔단다. 친정은 멀어 못 갔는지 친정엄마 뵐 면목 없어 안 간 건지 알 수 없지만 일주일인가 있으면서 시어머니한테 한 소리를 들었다며 지금도 참 서운해하신다.      

큰아버지가 심고 가꾼 포도나무가 꽤 많았는데 영글어 가는 포도를 돌아다니면서 다 따먹었단다.     

손과 입이 보라색으로 물들 될 정도로 다 따먹었는데 며칠 이를 지켜보시던 할머니가      

“그거 큰 아빠가 저녁마다 알 개수 다 센다.” 지나가시며 하시는 말에 그리도 속상했다고 한 맺힌 소리를 하신다. 임산부는 임신 중 겪은 일은 그리 안 잊힌다던데 그 말이 맞나 싶다.      

어린 나이에 임신해서 먹고 싶은 것도 많을 텐데 안쓰럽기도 하고 정성스레 키운 포도 열매가 하루 이틀간 씨가 마르는 걸 보면 왜 울화가 안 치밀까 싶기도 하다. 


아무튼 먹성 좋은 엄마는 지금도 아침부터 삼겹살을 구우셨고 갑자기 코에서 냄새가 나니 먹고 싶은 거라며 저녁에도 삼겹살을 구우셨다.          

마흔이 넘은 나는 아직도 장난 반 진담 반으로 잔소리를 한다. 이제는 엄마도 배짱이다.          

“난 그런 맛 못 내니까 이제 너희가 해 먹어.”     

세게 나오는 엄마가 귀엽다.              

아침부터 삼겹살을 먹는 일이 나도 자연스러워졌고 이제 내 나이도 뜨끈한 국물 맛 좀 알 나이가 되니    그때 엄마가 먹은 동태찌개는 참 맛있었겠다 싶다.      

어린 나이에 시집와서 돌아갈 집이 있어도 갈 수 없어 시댁으로 가는 마음은 오죽했을까.     

가만히 있어도 어려운 시댁 식구들 눈치가 왜 안 보였을까?      

그래도 뱃속 내 새끼 먹이고 싶어 염치 불고하고 새콤달콤 입 속으로 욱여넣었으리라.      

20대 꽃 같은 나이에 딸 셋을 키워내느라 먹성 좋은 엄마 입에 뭐가 맛이 없었을까.      

생선의 두툼히 붙은 살도 맛있게 먹을 줄 알지만 그건 내 것 아니다 욕심내지 않았을 거다.     

가족들 입으로 들어가는 걸 보면 더 입맛 좋아 맛있게 드신 거겠지.          

비 오는 날의 생선이 더 싸다는 걸 알기에 비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밥상에 올라온 동태찌개.      

얇은 살림 신경 쓴 노고가 어디 이것뿐일까.           

이것저것 섞인 구수한 동태찌개처럼 투박하지만 정 많고 힘든 일도, 상처들도 금세 잊고 웃어버리는 엄마를 내가 닮았다. 닮아서 참 다행이다. 

오늘같이 비가 오는 날이면 엄마의 동태찌개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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