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사이코페스 아니야? 뼈 밖에 안 남은 거 안 보여? 털 때문에 잘 모르겠으면 엉덩이를 만져봐.
앙상해. 차라리 그냥 죽이는 게 낫겠어.
설사할 때는 그만큼 배가 아프다고 매일 배가 아파! 쟤는 그걸 몇 년째하고 있다고.”
남편과 나는 까미 문제로 자주 싸웠다.
다섯 살 때까지 까미는 배불리 뭔가를 먹어본 일이 없다.
식탐이 없고 입이 짧은 까미에게 남편은 우리가 먹던 음식을 먹였고
그렇게 사람의 음식을 맛본 후부터 사료는 입에 대지 않았다.
아픈 게도 일어나게 한다는 강아지 통조림도 몇 번 맛보고는 안 먹었다.
장난감에 숨겨서 줘보고 굶겨도 보고 간식에 몰래 넣어주기도 했지만 역시 모두 실패였고
간식이라도 건강히 먹여보자 싶어 비싼 수제 간식을 먹여도 입에 힘을 주며 더욱 오므렸다.
오로지 저녁 식사 시간에 남편이 주는 음식이 그날 까미가 먹는 전부였다.
그러다 저렴한 간식 중 개껌이 붙어 있는 빨간 고기 모양에 닭봉껌이라는 간식은 두 개 정도 먹었는데
문제는 늘 배탈이 나서 설사를 했다. 하지만 그것만은 달라고 조르니 어쩔 수 없었다.
까미의 몸은 앙상하게 뼈만 남았고 그 당시 나와 남편은 거의 고도비만에 가까웠기에
함께 산책 다니기가 민망할 정도였다. 개 사료까지 뺏어 먹나 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건 까미가 산책하다 우연히 다른 개와 마주치면 도망갈 힘도 못 내고
주저앉아 바들바들 떨기만 하는 것이다.
그 모습은 정말이지 내가 죄인이 된 것처럼 화까지 치밀었다.
일어나라고 소리치는 나에게 까미는 억울한 표정을 지어 보였고 나는 모른 척했다.
나 혼자 키우는 게 아닌데 남편은 내 심정을 전혀 알아주지 않았고
아무리 얘기를 해도 계속 우리가 먹던 걸 떼어줬다.
그래서 늘 설사를 했고 검은 물똥을 찍찍 쌀 때는 내가 다 아팠다.
남편과 결혼하고 특별히 싸울 일이 없었는데 까미에게 음식주는 문제로 우리는 매일 심각하게 싸웠다.
"너가 인간이냐?"
어김없이 속사포처럼 나는 눈물을 흘리며 쏟아냈다.
남편은 난감해하며 알았어란 말만 되풀이했지만 손은 벌써 식탁 밑에서 김에 밥을 싸서 주고 있었다.
밥상을 뒤집고 싶은 순간이 몇 번 있었다.
‘나도 속상하고 너의 말 다 이해하지만 울면서 쳐다보는 까미를 도저히 모른 척 할 수 없어. 그러니까 그만해.’
그의 속 마음이었으리라.
그러니 남편도 까미도 전혀 달라지지 않았고 우리 둘 사이와 까미는 더욱더 병들어 가고 있었다.
남편의 말도 아예 이해를 못 하는 건 아니다.
식탁 밑에서 배고파 서럽게 우는 까미를 보면 남편은 밥을 먹지 못했다.
안쓰럽긴 나도 마찬가지지만 지금 순간을 참지 못하면 평생 까미는 건강하게 살 수가 없음을 알기에
우리는 참아야 했다.
정기 검진을 받으러 병원 갔을 때 나는 선생님께 남편 들으랍시고
“선생님, 강아지가 사람 음식 먹어도 되나요?”
선생님은 단호하게 “절대 안 되죠.” 하신다.
그러자 남편이 “시골 개들은 사람 먹던 거 다 먹잖아요.”
의사는 어이없다는 듯 한숨을 쉬며 “그러니까, 그 개들은 오래 못 살죠.”
나는 속이 후련했다.
하지만 신랑은 여전히 배고파 울어대는 까미를 무시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배부름을 평생 느끼지 못하는 까미가 불쌍했고 볼 때마다 속상해서 화가 치밀었다.
의사 선생님 말씀처럼 삼겹살 몇 번 먹으면 이제 소고기 달라할 거고, 소고기 주면 한우 달라고 할 거다라는 말이 딱 맞았다.
이제는 삼겹살도 소고기도 먹지 않고 오직 간식만 간신히 먹었다.
늘 설사를 찍찍하는 통에 깔끔한 까미는 50cm 배변판에서 응가는 싸지 않았다.
그래서 꼭 점심 저녁으로 나가서 싸게 해야 했고
나는 땅바닥에 스며든 수십 개의 물똥을 닦느라 집에 물티슈는 남아나지 않았다.
그것보다 얼마나 하루 종일 배가 아플까 쌀 때 똥꼬는 얼마나 따갑고 쓰라릴까 싶어 억장이 무너졌다.
그러다 안 되겠다 싶어 닭간식을 좋아하니 진짜 닭가슴살을 삶아서 줬야겠다 싶었다.
며칠은 먹었고 응가도 나쁘지 않았지만 슬슬 먹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다른 방안을 모색했다.
살코기보다는 근육이나 껍데기를 좋아하니 닭다리로 바꿔 삶기로 했고 하루에 한 끼 닭다리를 삶아줬다.
이건 제법 먹었지만 껍질 때문인지 설사를 다시 시작했다.
그래도 무양념의 닭이니 마음 놓고 나는 안심했다.
그러다 이른 아침에 까미의 우는 소리가 들렸다.
왜 그런지 거실에 나갔더니 물똥을 배변판과 그 근처에 엄청 싸놨다.
치워주고 더 싸라고 했더니 다시 올라갔다. 근데 갑자기 피가 뚝뚝 떨어졌다.
너무 놀라서 항문 주위를 봤지만 상처가 없었다. 그건 더 위험했다.
급히 병원으로 달려갔고 나는 까미가 제발 살기만을 바랐다.
병원에 갔더니 바이러스에 감염돼 당장 입원을 해야 한다고 했다.
위염도 있고 귀나 발도 세균이 퍼져 치료를 꾸준히 받아야 된다고 하셨다.
벌써 벌벌 떨며 눈물이 그렁그렁한 까미를 혼자 두고 갈 생각에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3박 4일 입원했고 걱정이 되어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혹시 까미가 버림받았다고 생각할까 봐 걱정스러웠고 병원에서 보내준 동영상을 보며
남편과 나는 미안함에 눈물을 흘렸다.
가느다란 팔에 주사기를 꽂고 눈에 가득 고인 눈물을 보니 정말 대신 아파주고 싶었다.
다음 날 병문안을 갔지만 까미가 너무 흥분할 것 같아 멀리서 지켜만 봤다.
드디어 퇴원하는 날.
나는 까미의 비명소리를 처음으로 들었다.
발톱 자르다 피를 봐도 소리 없이 눈물만 흘리던 까미였는데
우리를 보자 비명을 지르며 살려달라는 것처럼 우리에게 품에서 버둥거렸다.
떨어지기 싫다는 몸부림에 가슴이 찢어진다.
“이제 괜찮아, 이제 집에 가자.”
꼭 안았지만 까미는 우리 품에서 서럽게 울었다.
약봉지를 한가득 들고 집에 오는 길에 나는 이걸 빈속에 어떻게 먹일까?
내 머릿속은 온통 이 생각뿐이었다.
사람도 약을 먹을 때는 꼭 밥을 먹으니 까미는 더더욱 빈속에 먹일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한참 고민을 하다 번뜩이는 방법이 하나가 머릿속을 스쳤다.
사료를 갈아서 물을 섞어 묽은 떡처럼 만들어서 입에 강제로 넣기로 한 것.
처음은 뱉어내더니 입에서의 느낌이 나쁘지 않은지 두 번째부터 꿀꺽 삼켰다.
그래 시작이 좋다.
첫 기억이 나쁘지 않으면 앞으로 희망이 있다.
인터넷을 찾아 한 끼 먹을 양을 찾았고 그것보다는 적게 하니 수북한 밥 한 숟갈이 됐다.
그렇게 하루에 두 번, 간 사료에 물을 섞어 이빨 사이로 손가락을 넣어 입을 벌렸고 그때 동그란 사료 덩어리를 넣어주니 받아먹었다.
맛이 좋은지 모르겠지만 “까미야 밥 먹자.” 하면 이제 내 가랑이 사이로 들어와 발을 모으고 먹을 준비까지 하는 것이 아닌가.
너무 기뻐서 미친년처럼 날뛰었다.
매일 두 번 이렇게 하는 것이 귀찮기는 하지만 까미는 이제 제대로 된 식사를 시작했고
매번 버리기만 했던 사료를 남김없이 먹어치웠다.
믹서기가 두 번 고장 났지만 그래도 까미가 밥을 먹는다는 것만으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2.5kg이던 까미는 세 달 사이에 4.5kg가 됐다.
병원에서도 다른 앤 줄 알았다며 놀랐다.
일부러 작게 키우려고 굶기냐는 말까지 들었기에 나는 통통해진 까미를 안고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매일 이렇게 밥을 먹인다.
입까지 벌려주진 않지만 잘 받아먹으니 고마울 따름이다.
통통한 엉덩이를 만질 때면 신기해서 자꾸 손이 간다.
아마도 입원하는 일이 없었다면 절대 생각하지 못했을 일이다.
땡글땡글 단단한 응가를 비닐로 집을 때면 까미에게 고맙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지나가는 개와 마주쳐도 기죽지 않고 지나치는 모습을 보면 신기해서 남편에게 호들갑을 떤다.
남편은 이제 까미에 관해서는 내 말이라면 충성이다.
누구보다 까미를 사랑하는 걸 알기에 마음 약한 걸 탓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부모로서 단호해져야 한다는 걸 고통 속에서 배웠을 거다.
모든 부모가 그렇듯 건강하게만 자라주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