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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 고양이 Apr 26. 2023

빤스 도둑

너의 속사정

목욕하고 나오면 벗어놓은 빤스가 사라진다.

이상한 일이다. 

수건 티셔츠 바지 양말 모두 그대로인데 빤스만 사라진다. 


왜 빤스가 사라질까?

왜 빤스만 사라질까?


서랍 속 남편 빤스의 수가 점점 줄어들수록

나의 의심도 합리적으로 커져갔다. 

남편을 쏘아보니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 지금 나 의심하냐?" 

하지만 이내 내 빤스도 사라지고 있었다. 


집에 귀신이라도 붙었나.

아파트 9층, 누가 가져가는 건 불가능하다. 

가끔 청소기를 돌리다 소파나 침대 밑에서 빤스 한두 장이 발견되기는 했지만 

벗은 옷을 바로바로 빨래 바구니에 넣어두지 않고 

아무 데나 벗어두는 남편을 나는 쥐 잡듯이 잡았다. 


그러다 어느 날, 

나는 남편의 빤스를 추적 관찰하기로 했다.

퇴근하고 온 남편은 오늘도 어김없이 욕실 앞에서 허물 벗듯 몸에 걸친 모든 걸 벗었다. 

욕실로 들어가는 남편의 뒷모습을 확인했다. 

그리고 허물들에 섞여있는 빤스까지 분명히 확인했다. 


몇 분이 흘렀을까. 

검은 그림자가 신랑의 옷 더미를 덮쳤다.

발소리가 없는 우리 집에 검은 짐승이었다. 

옷가지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더니 빤스를 찾아낸다. 

그리고는 남편 빤스의 온몸을 비비는 게 아닌가.


'쟤가 더럽게 왜 저러지?'

나와 눈이 마주치니 순간 인형처럼 멈춘다. 

나는 안 보는 척 벽에 몸을 숨겼다. 

조금 지나자 다시 온몸을 비비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복도를 가로질러 나를 지나쳐 유유히 걸음을 옮기는 까미를 나는 놀란 눈으로 바라봤다. 

아뿔싸! 빤스를 물고 걸어가는 게 아닌가. 


나는 낚아채듯이 까미를 잡아 들어 올리며 

"자기야! 빤스 도둑 잡았어."

기쁨의 탄성을 질렀다. 

드디어 빤스 도둑을 잡는 순간이다. 

기쁨의 탄성을 분명 질렀지만 

내 정확한 감정은 이상했다. 

화를 내야 할지 기뻐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남편은 씻다 말고 뛰쳐나와서

"거봐, 까미라고 했잖아."

그랬다. 남편 말대로 까미였다.

근데 왜 새 빤스로 아니고 입던 빤스를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그동안 '우웩, 내가 얼마나 자주 그리고 많이 네 입에다 볼에다 뽀뽀를 했댔는데.' 

나도 모르게 신랑 빤스에 뽀뽀를 했다는 생각이 들어 기가 막혔다. 

'이 녀석, 변태인가?' 


이건 심각한 일이었다. 

위생상 건강에 안 좋을 수도 있고 뭔가에 극도로 집착하는 건 좋지 않은 신호니까.

나는 다급히 인터넷부터 뒤졌다.

그러다 놀라운 사실들을 알아낼 수 있었다. 

'나도 동물아닌가? 이렇게 중요한 사실을 놓치고 있었다니.'

나도 모르게 무릎을 쳤다. 

 



첫 번째 보호 

야생에서 적에게 들키지 않도록 자신의 체취를 감추는 습성이 있는데

보호자의 체취가 남아있는 속옷을 발견했을 때 적으로부터 보호자를 보호하기 위해 이를 감추는 것이다. 


두 번째 은폐

자신보다 우세한 자의 냄새를 몸에 덮고 있으면 적에게 공격을 덜 당하기 때문에 보호자의 냄새에 

잠시 숟가락을 얻는 것이다. 


세 번째는 그리움

강아지는 보호자가 몹시 그리울 때 보호자의 냄새가 강하게 남아있는 속옷에 집착하게 된다고 한다. 


네 번째 소중함

강아지는 좋아하는 물건에 자신의 체취를 최대한 묻혀 놓는다고 한다. 

그래서 보호자도 소중한 물건에 제취를 남겼을 거라는 생각에 소중한 물건을 지켜주고 싶어 하는 마음이라는 것. 




어찌 보면 당연한 행동들이었다. 

나 역시 그랬기 때문이다.

어릴 때 나에게는 엄마가 전부였고 우주였기에 엄마의 모든 것이 좋았다. 

엄마의 하얀 피부는 공주 같았고 살 냄새는 어느 꽃향기보다 향기로웠다.

소심하고 부끄럼을 많이 타서 친구가 없었던 어린 나는 엄마가 유일한 친구였기에 

옆에 있어도 늘 그리운 존재였다. 

잠시라도 떨어질까 싶어 손을 꼭 잡고 잠이 들고 화장실까지 쫓아가서 엄마를 자주 불편하게 했다.

엄마의 향이 좋아서 엄마가 방금 쓴 물기 가득한 수건을 나는 지금도 일부러 쓰는 버릇을 못 고쳤다.

아직도 나에게 엄마는 늘 그리운 존재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까미도 아빠와 엄마의 향을 좋아하는 거란 걸 이제야 알 게 됐다. 

옅은 미소가 슬그머니 입가에 퍼진다. 

나도 이제 어른이 되어 그때를 잊었구나 싶어 쓸쓸한 마음이 든다.  

사랑하니 발견되는 것들

그렇게 서로의 향기에 베어 들듯이

빤스 도둑과 함께하는 오늘이 언제가는 그리워지겠지.






정보: 펫슬랩        

사진: 구글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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