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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 고양이 Apr 24. 2023

너의 우선순위

나 엄마 안 해

남편방에 들어갈 때면 늘 조마조마하다. 

둘만에 공간이라고 생각하는지 눈을 치켜뜨고 꼬리까지 잔뜩 힘주어 경계한다. 

이 눈빛은 접근금지명령이다.

'더 가까이 오면 혼낸다? 좀만 더 가까이만 와봐.' 

방문을 넘어서는 순간 까미는 온몸으로 짖는다. 

남편 곁에만 있으면 방구석 여포가 되는 까미가 가끔은 얄밉다. 

내 거를 지키겠다며 싸워보자는 표정이 되는 게 

나는 서운하고 때론 원통하다. 


남편 품에 안겨있을 때는 장소불문하고 언제나 이런 식이다.

매일 밥 주고, 똥 치우고, 산책 나가고, 씻기고, 간식 만드는 게 누군데.

나를 집사로만 생각하는 건가.

서글퍼진다. 


남편이 출근하면 저녁에나 만날 수 있어 희소성 때문일까?

무관심하다가 한 번씩 놀아주니 더 매력 있는 걸까?

나보다 더 좋아하는 이유를 도무지 모르겠다. 

그걸 알면 내가 개박사됐지.


이래서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 했나.

오늘은 오랜만에 남편과 같이 자려하니 남편 곁은 건드리지도 못하게 한다. 

남편  가슴 위에 쏜살같이 올라가 엎드리고는 나를 주시하며 경계를 선다.

"네가 스핑크스냐?"

하고 나도 삐쳐 돌아누우니 그제야 마음이 놓이는지 신랑에게서 내려온다.

내려와서도 경계를 늦추지 않는 게 내가 못 미더운 모양이다.


개 한 마리 더 데려와 내편을 만들까 싶기도 하다. 

신랑이 "그 얘도 날 더 좋아하면 어쩌냐." 

보태는 신랑이 더 얄밉다. 

친구가 언젠가 그랬다

똥 치우는 사람을 개는 하대한다고. 

정말 그래서일까?

나랑 단둘이 있을 때는 순한 양인데 신랑만 오면 돌변하는 녀석이 밉다가도

남편이 없으면 쪼르륵 나한테 달려오는 녀석에게 늘 자리를 내어주게 된다. 


얼마 전에 화장품을 사니 사은품으로 온 인형이 마음에 들었다.

배를 쓰다듬어 주며 귀여워해 주고 있는데 인형의 수염이 까미의 심기를 건드린 모양이다. 

수염을 이빨로 뽑으려 안간힘을 쓴다. 

그걸 본 남편이 인형의 수염을 가위로 다 잘라버렸다. 

내가 아끼는 인형을 둘이서 뭐 하는 건지. 순간 어이가 없었다. 

수염이 없는 토끼는 역시 매력이 없는데 

휑해진 토끼 얼굴이 나로 겹쳐 보여 한참 동안 인형을 바라봤다.

엄마가 된다는 건 이런 걸까? 

'어머니는 자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어머니는 자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이 노래 가사처럼 좋아하는 자장면을 자식에게 내어주는 게 엄마의 삶인가. 

우리 엄마는 안 그랬던 거 같은데. 

  

까미가 싫다면 어쩔 수 없지. 

내 자식이라 그런지 한없이 예뻐서 화도 오래 안 간다. 

누굴 더 좋아하면 어떤가.

마음에 드는 인간 하나라도 있으니 다행이지.

"내가 아니면 좀 어때."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까미야, 나도 네가 좋아하는 아빠가 좋아. 우리 둘 다 아빠를 좋아하니 우린 같은 편이야. 

그러니까 나도 좋아해야 돼. 나보다 조금 더 좋아하는 건 이번 생에는 봐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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