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처럼 따뜻한 봄이었다.
3학년 1반. 내 짝꿍.
말수는 적지만 키가 크고 운동을 좋아했었다.
남들을 잘 도와주고 어른스러웠던 아이.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그 아이를 좋아했다.
나를 쫓아다니는 몇몇 남자애들도 있었지만
내 마음은 그 아이만 바라봤다.
그도 나에게 관심이 없진 않은지
내가 시키는 일은 불평 없이 해주었고 이따금씩 내가 오해할만한 일들이 몇 번 있었다.
하지만 그 뿐, 더 이상의 진도는 나가지 않았다.
나름 반에서 인기도 많고 공부도 잘하고 예뻤는데.
먼저 관심을 가져주지 않자 그에게 심술을 부리기 시작했다.
아침부터 내 자리는 넓게 그 애 자리는 좁게 책상에다 금을 긋고 넘어오지 말라며
유치한 짓을 했고 말 한번 더 걸려고 지우개도 빼앗고 연필도 빼앗았다.
주로 남자애들이 하던 짓이다.
그 애에게 숙제를 해오라거나, 준비물을 챙겨 오라며 막무가내로 고집을 부렸다.
좋아하는 감정에서 소유욕과 집착으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런 짓거리를 해도 그 애는 나에게 관심이 없었고 그냥 말없이 묵묵히 해주었다.
이렇게 해준다는 건 바보인 걸까? 눈치가 없는 걸까?
즐기는 마음과 동시에 은근히 부아가 치밀고 자존심이 상했다.
계속 나만 못된 애가 되는 것 같아 억울한 감정마저 들었다.
차마 좋아한다는 말은 먼저 못 하겠는데.
"너! 나한테 왜 그러냐?"
화라도 내면
"네가 좋아."
마지못해 떠들어라도 볼 텐데 말이다.
그러다 어느 날 우리는 크게 싸웠다.
그날은 그동안에 서운함이 폭발해서 그 아이를 때리기까지 한 거다.
이제 숙제를 못 해준다고, 축구해야 해서 시간이 없다고 그는 차분하게 말했다.
뭐? 하면서 나는 그 애를 때린 거다.
그러자 팔로 막으며 조용히 “하지 마.” 한다.
나는 더 이상 할 말도 없고 이렇게 둘의 관계가 끊어질 거 같아 막무가내가 돼버렸다.
그러자 그 아이는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이 폭발했고 세게 밀쳤다.
꽤 멀리까지 밀쳐진 나는 뒤로 넘어갔고 한동안 일어날 수 없었다.
아프고 창피한 것보다 '이 정도로 내가 싫었구나.' 싶은 생각에 참을 수 없는 슬픔이 먼저였다.
“너 숙제는 네가 해! 부반장이면서.” 단단히 화가 난 얼굴의 그 아이의 멱살을 누군가가 잡았다.
다른 아이들은 내가 다친 줄 알고 우는 나를 걱정했고 그 아이를 나무랐다.
그게 아닌데. 내가 바라던 건 이게 아닌데.
미안함과 억울함과 창피함이 섞여 나는 그냥 울 수밖에 없었다.
'네가 정말 좋아서 그랬어. 괴롭힌 건 네가 날 봐줬으면 해서야. 오늘 너 때문에 예쁘게 머리도 묶었는데.
내가 앞으로 너 숙제도 다 해줄 수 있다고.'
우리 관계는 어디서부터 꼬였을까.
그 아이는 다음날 나에게 미안하다고 정중하게 사과했다.
나는 사과를 받았지만 다시는 그 아이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우리의 관계, 사실 관계랄 것도 없지만 나의 짝사랑은 아팠고 그렇게 끝나고 있었다.
가끔 웃으며 장난쳤던 좋았던 기억들이 어린 나에게는 추억이 되었다는 사실이 더욱 슬프게 만들었다.
그러다 깨달았다.
그 아이는 내 마음을 몰라준 게 아니라 내 잘못된 방식이 그의 마음을 더욱 닫히게 했음을.
나는 여러 번 용기를 내 볼까 생각했지만 용서를 구하거나 사랑 고백 따위는 결국 하지 못했다.
부반장이었기에 그 아이와 아예 말을 안 할 수는 없었지만 차갑게 식어 버린 내 말투에
그 아이는 더욱 의기소침해했고 늘 나를 보면 미안해했다.
그 미안함은 오직 남자가 여자를 밀쳤다는 행위 때문이다.
내 마음을 밀친 것은 눈치조차 못 채고 있다.
그렇게 나는 답답한 마음과 미안함과 또 원망스러운 마음이 교차했다.
나도 그랬지만 그 아이도 왠지 활기가 없어 보였고 점점 작아 보였다.
늘 당당하고 운동도 잘해서 남자들 사이에서 인기도 많았었는데.
한 번 두 번 학교도 빠지고 성적도 떨어지는 듯 보였다.
신경을 끄려고 했지만 그게 쉽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뒤 그 아이가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나는 이상하다 생각했지만 관심 끄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나는 자꾸 그의 책상에 시선이 머물렀다.
그러다 담임선생님이 아침 조회시간에 그 친구에 대해 어렵게 입을 떼셨다.
그 아이가 백혈병에 걸렸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아이 집의 경제 사정이 어려워 병원비가 부족하다고 하셨고 성금을 좀 걷어 보자 하셨다.
나는 마음이 무너졌다. 혹시 내가 때려서 병에 걸렸나.
초등학교 3학년이니 내 생각은 거기까지 미쳤다.
내가 때렸고 또 계속 마음 아프게 해서 병이 왔구나.
나를 밀친 것에 아이들이 그 아이를 괴롭혔나?
별 별 생각이 다 들고 무서웠고 또 나 자신에 화가 났다.
나는 선생님께 백혈병이 무슨 병인지 물었다.
백혈구가 적혈구보다 많아져서 병균이 몸속으로 들어오면
적혈구가 병균을 막아낼 수 없다고 하셨다.
다 내 탓인 것만 같았다.
그날 수업이 끝나고 가능한 인원을 모아 문병을 가기로 했다.
선생님은 나와 그 아이의 속 사정도 모르고 나를 착하다고 칭찬하셨다.
하지만 결국 그 아이는 만나지 못했다.
그 아이의 집은 작은 목공소였다.
아버님이 일하고 계셨고 목공소 안에 작은 방이 딸려 있었다.
분명 그 아이는 저 안에 있는데 만날 수 없다 하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버님은 어찌 된 일인지 나를 아셨다.
"네가 그 부반장이구나. 우리 아들이 미안한 짓을 했다고."
나는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아니라고 내가 멋대로 좋아하고 강요하고 그 아이를 이렇게 아프게 만들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눈물 때문인지 용기가 없었는지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 아이가 바로 저기 있는데 만날 수 없다는 게 나는 믿어지지 않아서
나를 보기 싫어 피하는 거라 그때는 생각했다.
학교에서 돈을 걷을 때면 나는 아빠에게 무조건 내가 제일 많이 내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했다.
그 아이를 괴롭히고 때렸기 때문만이 아니라 정말 꼭 낫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이제 아무래도 좋다. 네가 날 싫어하고 오해해도 다시 우리 관계가 회복되지 못해도 괜찮으니
낫기만 해 줘.'라고 속으로 소리치고 간절히 기도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그 아이는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가끔 선생님으로부터 간간이 소식만 전해 들을 뿐이었다.
그러다 그 아이가 많이 좋아져 퇴원까지 앞두고 있다고 했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바로 학교에 올 수는 없겠지만 난 기다릴 수 있다.
이제 얼굴 보고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 믿었고 그 사실만으로도 기뻤다.
매일 교실 뒷문을 열고 들어 올 것만 같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감기에 걸려 숨을 거뒀다고 선생님은 어렵게 입을 떼셨다.
나는 죽음이란 것을 잘 몰랐다.
하지만 너무 아프고 슬픈 거라는 것과
또 우리가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걸 이야기하고 있음은 직감했다.
모두 책상에 얼굴을 묻고 울었고 나는 무너졌다.
그 아이의 고통이 나에게도 전해지는 것처럼 쓰렸다.
이제는 내 마음을 알았으려나.
꽤 오랫동안 잊힌 얘기를 꺼내며 예쁘지도 않은 짝사랑의 추억이 나를 아프게 한다.
많이 아프고 외로웠을 텐데 그때 너에게 더 웃어주고 더 아껴줄걸.
내가 제일 가까운 친구가 되어줄걸.
너로 인해 가슴 뛰고 설레었던 한 사람이 있었다고 기억해 줘.
나 그댈 갖기에도
놓아주기에도 모자라요
우린 어떻게든 무엇이 되어있던
다시 만나 사랑해야 해요
그때까지
다른 이를 사랑하지 마요
어떻게 사랑이 그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