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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 고양이 Apr 13. 2023

강릉 사천해변에서

낭만살롱 이야기 2 

시작! 

밤 10시가 되자 우리는 모두 각자의 남편에게 전화 달라는 카톡을 보냈다. 

두 개의 방에는 더블 침대가 하나씩이라 한 명은 침대가 아닌 이불 깔고 바닥에서 자야 하니 

가위바위보를 하려다 생각해 낸 게임이다. 

10시가 되면 남편들에게 카톡을 보내 가장 늦게 연락 오는 사람이 바닥에 자는 걸로. 

웃자고 시작했는데 모두는 긴장했다. 


언니들은 패배를 예감하고 

지금 운전 중일 거라는 둥, 일찍 자는 사람인데 라며 미리 연막을 깔았다. 

내가 허리 아픈 걸 알고 써니 님은 본인이 바닥에서 자겠다 자청했지만 게임은 시작됐으니 

이제 어떤 결과든 나오리라. 

아까부터 자신감을 보이던 빛나 님도 슬슬 불안해지는지 

오늘은 남편이 일찍 잘 수도 있다는 약한 소리를 한다.  


그렇게 초조하게 시간이 흘렀다. 

비교적 결혼생활이 짧은 나와 빛나 님은 꼴등은 아닐 거라 은근히 자신하고 있었다. 

그러자 "앗싸!" 하리 님이 소리친다. 

제일 먼저 연락은 하리 님에게 왔다. 이게 웬일인가.


앗! 1등은 놓쳤구나 그러다 조금 지나자 써니 님의 남편이다. 

헐 예상외로 언니들의 선전에 불길한 예감은 왜 틀린 적이 없나 

곧 파이걸 님의 남편에게도 연락이 왔다.


의기양양했던 빛나 님과 나는 꼴찌만 면하자 싶었지만

시간이 10분을 넘어서고 15분쯤 됐나. 

드디어... 


빛나 님의 전화기가 울렸다. 

남편에게 투정은 부리지만 꼴찌를 면해서 기뻐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게임이긴 해도 승부욕이 있기에 나는 슬슬 부아가 났다. 

20분 정도 되니 나의 남편에게도 연락이 왔다. 

받자마자 나는 "이혼하자." 


분명 농담이었지만 그 순간은  진짜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친구들과 자주 여행을 가는 사람도 아닌데 걱정도 안 되나.

사실 별거 아닌 걸 알지만 또 따지려 들면 끝도 없으니 마음에서 그만두기로 했다. 

늦게까지 일하고 온 하리 님이 소파에서 곯아떨어지는 바람에 모두 침대에서 잘 수는 있었지만 

내가 하자 해놓고 나 혼자 뒷맛이 씁쓸하다. 


우리는 와인과 맥주 다섯 캔을 마시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파이걸 님의 의견으로 지난주 쓴 첫사랑 에세이를 돌아가며 읽기로 했다.  

들으며 눈물도 훔치고 웃음도 멈출 줄 몰랐다. 


이번 주는 잠을 많이 못 잤고 이번 여행준비에 마음의 긴장도 커서 잠이 쏟아졌지만 

이 시간이 너무 좋아서 모두가 그렇게 졸음과 싸우고 있었다. 

그러다 하나하나 자리에 눕고 다행히 세수를 마치고 마지막으로 나와 빛나 님도 누웠다. 

다음 날이 더욱 기대되는 우리다. 


3년 전 속초바다에 갔을 때 검푸른 바다에 침묵이 좋아 나도 그렇게 침묵했고

한순간에 집어삼켜져 모든 게 사라질 수 있다면 그렇게 돼버리자 했었다. 

나이가 벌써 40이 넘어 나에게 남은 건 외로움뿐이었기에.

돈이라도 있었다면 아니면 정신없이 몰입할 수 있는 직장이라도 있었다면 조금 나았을까. 

내 안에 굶주림은 화가 됐고 그 분노가 나를 계속 집어삼켰다.  


하지만 내 앞에 있는 그 바다는 이제 해맑게 빛나고 있었다. 

달라진 건 하나도 없지만 이제 내 세상은 사람들과 함께고 

이제 사람에게 기대하지 않는다. 그냥 곁에 있음에 감사할 뿐이다. 


우리의 살아온 길, 형편 모두 다르겠지만 각자의 삶에서 고단하고 힘든 일 왜 없었을까.

이제 모두가 나이 마흔이 넘으니 그 고비 그 시간 넘기며 울어 버릴 줄 알고 웃어 버릴 줄 알기에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마음으로 아끼고 등을 토닥인다.

힘든 사람, 힘들 사람 미리 알아 누구든 먼저 손 내밀어줄 거란 걸 잘 알기에 금세 친해졌고 

하나가 되어 가는 듯하다. 


책 읽기와 글쓰기 모임으로 만나 꽃향기에 이끌리는 나비처럼 

우리는 낯선 여행길에 함께 하기로 했고 그렇게 또 좋은 추억 하나를 만들었다. 

내 허리 걱정하느라 자기 무릎 생각지 않고 짐 보따리부터 들어주는 써니 님과 

월말이라 한창 바쁠 시간에 혼자 강릉까지 운전해 늦은 시간에도 찾아 준 하리 님. 

피곤하면 먼저 자라는 우리에게 "난 만성피로니 괜찮아." 하며 끝까지 얘기 나누고 싶어 하던 파이걸 님.

작은 말 한마디에도 크게 호응해 주고 잘 들어주고 배려해 주는 분위기 메이커 착한 빛나 님. 

내일이 기대되는 사람들. 그들과 함께 하는 이 시간이 바다처럼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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