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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 고양이 Apr 13. 2023

강릉 사천해변에서

낭만살롱 이야기 1

아뿔싸! 옷가방을 두고 왔다. 

나뿐 아니었다. 기다리던 첫 여행이었기에 모두 들떠있어 그랬을까. 

하나씩 빠진 짐을 확인하고 우리는 웃음을 터트렸다. 

글쓰기 모임에서 만난 우리 다섯은 책이 좋아 모였고 이제는 함께 글을 쓴다. 

그러다 마음이 맞고 시간이 맞아 금요일 오전 강릉여행을 계획했다. 

고속도로는 막힘 없이 뚫렸고 차가 지나치는 곳마다 벌써 벚꽃들이 만발해 마음속을 간지럽힌다. 

수다 꽃은 차 안에서도 만발했고 우리는 어느새 강릉에 도착해 있었다.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니 우리의 시선은 모두 바다에 있었다. 

오후 두세 시쯤 태양이 내리쬐는 푸른 바다는 에메랄드 녹색의 푸른 물감을 잔뜩 풀어 논 듯했고 

환희 비치는 바닷속은 하늘이 들어있는 듯 현실감이 없었다. 

우리는 근처 '곳' 카페에 주차를 했다.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2층 창가에 앉아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말없이 바다를 바라봤다. 

바다에는 서핑을 하는 사람들로 벌써 여름준비를 했고 나도 뛰어들고 싶단 생각까지 미쳤다.

이 카페는 하늘계단이 유명해 사진을 찍어야 한다며 야무진 계획을 세워 멋진 사진 몇 장도 건질 수 있었다.


4시가 되어 펜션에 짐을 풀기로 하고 차에 탔는데 내비게이션을 보던 빛나 님은

“어? 도착했다는데?” 알고 보니 펜션이 카페 옆에 있다. 

펜션은 내가, 나머지는 메뉴를 주며 식당을 찾아오라 했는데 모두가 나란히 붙어있었다. 

이동시간이 절약되고 주차 문제도 해결되니 여행지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일단 해결이다. 

펜션도 생각보다 괜찮았다. 주말에 이 가격이면 나는 대만족이다. 

일단 바다가 통창으로 시원하게 보이고 파도 소리까지 가깝게 들을 수 있으니 환상적이다. 

욕실도 깨끗하고 넓었고 물도 콸콸, 에어컨 빵빵, 전기장판까지 구비돼 있으니 

나처럼 장판애자는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2~3인용이라 다섯이 한방에서 놀기에는 작았지만 예약이 서툰 나에게는 최선이다. 


서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마지막 멤버 도착시간에 맞춰 횟집으로 갔다. 

근무를 마치고 오느라 저녁에 도착한 하리 님은 피곤해 보였지만 

우리를 보고는 함박웃음을 지어주었고 우리도 격하게 반겼다. 

종일 일하고 혼자 강릉까지 오느라 고단하고 심심했을 생각에 고맙고 미안하다. 

저녁은 아끼지 말고 푸짐하게 먹자는 말에 모두 동의하고 제일 비싼 스페셜을 시켰다. 

다들 양이 적은 걸 알기에 쏟아지는 접시들에 살짝 놀랐지만 역시 내가 있지 않은가. 


술까지 술술 들어가니 나는 3초 이뻐지는 비밀까지 누설했다. 그 일은 20대 때긴 하지만. 

혹시 지금도 유효할지 모를 일이다.

내 안에는 자꾸 남을 웃기고 싶다는 이상한 강박이 있어서 나 스스로 피곤하게 한다. 

하지만 뭐 어떤가, 내가 조금 망가지고 다들 웃으면 그만이지. 

역시 술이 들어가니 다들 웃음소리가 커지고 작은 농담에도 까르르까르르 쓰러졌다. 


모두가 술을 잘 못 먹는다 했지만 바닷가에서 먹으니 그런가. 좋은 사람들과 먹어서 그런가.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지만 누구도 취하지는 않았다. 맥주 4병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마지막으로 올라온 매운탕은 모두의 배가 가득 찼음에도 숟갈을 들게 할 만큼 맛이 좋았고

내가 시킨 밥까지 한술 뺏을 만큼 기가 막혔다. 

여자들의 후식 배는 따로 있다 했던가.

우리는 바로 편의점으로 달려갔고 맥주와 안주를 사서 펜션으로 왔다. 


짐을 내려놓기 무섭게 우리는 갑자기 육천보를 걷기 시작했다. 

우리 중 넷은 매일 육천보를 걷기 인증모임을 한다. 다들 핸드폰을 보니 조금 모자라니 아까운 모양이다. 

역시 오늘도 인증을 포기하지 않고 발그레한 얼굴을 하고 열심히 이리저리 좁은 방을 뛰어다닌다.

팔 흔들며 걷는 사람. 춤을 주는 사람. 5명이 그러고 있으니 그 모습은 가관이었다. 

나 역시 그랬다. 


아파트였다면 아랫집에서 뛰쳐 올라올 일이고 밖에서 보면 댄스파티라도 벌이는 줄 알았을 거다. 

민망함을 뒤로하고 우리는 열심히 걸었다. 

파이걸 님까지 덩달아 걸으며 우리는 바로 육천보 멤버에 강제 가입시켰다. 

바빠서 걸을 시간 없다고 육천보 시작하면 글 쓸 시간 없다는 사람인데 

굳이 우리는 그녀의 건강을 챙기기로 마음먹었다. 

주 5회 만해도 되니 다음 주부터 하면 될 일을 착한 파이걸 님은 열심히 함께 걷고 있고 

이를 누구 하나 말리지도 않는다. 


그런 서로의 모습이 웃겼는지 너도 나도 사진을 찍으며 놀렸고 

그 와중에 하리 님은 자신의 사진이 뚱뚱하게 찍혔다며 진심을 다해 써니 님께 투덜거렸다. 

모두 사진을 보고 웃지 않을 수 없었고 우린 또 다 같이 웃느라 쓰러졌다. 

웃겨 죽는 내 얼굴도 빛나 님은 놓치지 않았고 내 사진 역시 너무 웃겼다. 웃겼으니 통과. 


그렇게 영원히 봉인돼야 할 사진들이 쏟아졌다. 

일 년 치 웃을 걸 다 웃었다. 이렇게 웃긴 사람들이었나 싶었다. 

나를 비롯해 모두가 허당끼 만발이다. 

술 먹고 육천보 걷는 일은 힘들 법도 한데 함께하니 하나둘 해냈고 우리의 밤을 그렇게 깊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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