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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 고양이 Mar 28. 2023

까미의 하루

나와 너의 시간

사람의 시간보다 빠르게 흘러가는 개의 시간 때문인지 

내 시계가 빠르다 느낄 때마다 까미와 헤어질 날을 가끔 생각하게 된다. 

내 흰머리가 앞에서 옆으로 넓어질수록 까미의 까맣던 머리도 흐려져 회색으로 덮여 갈수록

사람 시간에 5배로 빨리 움직인다 하니 사람의 일주일 정도가 어쩌면 까미에게는 하루겠구나. 


까미의 하루는 이렇게 시작한다.    

남편의 출근을 알리는 알람이 울리면 까미는 쏜살같이 내 방으로 달려와 침대로 올라온다. 

시키지 않았는데 밤새 혼자 둬 미안하다는 듯 연신 모닝 뽀뽀를 해댄다. 

멈추라는 말 없으면 하루종일이라도 할 것처럼 멈출 줄 모른다. 

아침잠 많은 나는 게슴츠레 눈을 뜨고 

검고 작은 머리가 내 얼굴 위에서 왔다 갔다 열심인 모습이 마냥 귀엽다. 

그만하고 자라는 신호로 이불을 들춰주면 쏜살같이 이불속으로 들어가 

잠 많은 까미도 이제 마음 편히 온몸을 쫙 펴고 단잠에 빠져든다. 

그렇게 우리는 한두 시간 꿀 같은 아침잠을 함께 한다.      


나의 알람까지 울리면 본격적인 하루의 시작이라 까미도 온몸의 기지개를 켜고 몸을 일으킨다.

앞뒤로 몸을 늘어뜨리는 모습이 꼭 사람 같다.

마지막 발가락까지 쫙 펴면 이제 온 집을 순찰하듯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닌다. 

밤새 묵은 공기가 정화될 때쯤이면 창가로 가서 허공에 킁킁대며 냄새를 맡는다. 


청소를 마치면 우리는 함께 아파트를 한 바퀴 돌며 산책을 즐긴다. 

나에게도 까미에게도 늘 기다려지는 시간이다.

땅에 발을 내딛자마자 시원하게 배변을 보고 개의 본능인지 늘 불안한 눈을 하고 두리번거린다. 

“괜찮아 엄마가 보고 있어, 편히 싸.” 

하지만 까미는 영 못 미더운 모양이다. 

아직 찬 아침 바람에 몸을 부르르 떨지만 꽤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이제 출발할까? 엄마.’ 하는 듯이 나를 바라본다. 

     

나도 강아지 따라 바람 냄새, 나무 냄새, 풀냄새도 맡고 

구석구석 봄의 시작을 알리는 작은 신호를 놓치지 않는다. 

아직 덜 풀어져 알알이 말려있는 새싹들과 그 속에 웅크린 꽃잎을 상상하고

아파트 내 유치원에서 들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우리 침묵에 한 방울 싱그러움을 더해준다. 

늘 가던 곳을 찾아가 냄새를 맡는 녀석의 뒷모습은 꼬리는 흔들, 엉덩이는 씰룩. 기분이 최고 좋다는 신호다.

그러다 냄새에 정신이 팔려 앞으로 돌진하는 걸 보면 남편이 떠오른다.

남편도 뭔가에 집중하면 집안에서 잘 부딪히고 넘어지니 남편 닮아가나 싶기도 하다.


인간에겐 다양한 관계 속에 각기 다른 의미가 있는데 까미는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문득 궁금해진다. 

나에게는 친구도 되었다가 아들도 되고 남편에게 "자기, 자기." 하다 보니 가끔 까미에게도 자기라 부른다.

이는 남편도 마찬가지다. 

나는 엄마일까 친구일까 아니면 경쟁자? 

이 모든 것일지도 모르겠다. 

말하지 못해 눈으로만 말하는 녀석이 안쓰럽고 그 마음 몰라 줘 서운할까 미안해진다.  

가끔 억울한 표정을 하고 있으면 내가 또 알아채지 못 하나 싶어 자못 속상하다.

그래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옆으로와 잔뜩 몸을 내 쪽으로 기대면 영락없는 아들내미다.

   

신랑이랑 뉴스나 기사를 보다가 가끔 실없는 농담을 한다.

 “우리 까미가 저러면 어쩔 거야?” 

학폭에 시달리는 아이, 고등학생이 임신한 얘기, 성공한 BTS 아이돌.

사연도 상황도 실연 가능성 제로지만 우리는 제법 심각해진다. 

최선의 최고에 방법을 찾으려 고심하며 한참 침묵까지 흐른다.

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심각해지지 마. 엄마 나는 그럴 일 없잖아.’ 하는 듯 

웃으며 인형을 물어다 준다. 가장 아끼는 걸 줄 줄 아는 착한 아이다.

  

아기일 때 남편은 괜찮다며 사람 음식을 먹였다. 몰래 밥을 김에 싸주고 매운 것 빼곤 다 준 것 같다. 

그래서 까미는 알레르기가 심하다. 신혼 초에 싸운 건 다 이 때문이다. 

간지러워 한참을 긁다가 날카로운 발톱 때문에 몸에 피도 났다. 

발이 닿지 않는 곳이면 어김없이 찾아와 나에게 등을 내민다. 

남편보다 내가 가려운 곳을 잘 찾아내 양껏 긁어주기 때문이다.

긁다 보면 마음이 아프다. 이 병을 우리가 주었는데 도와달라 등을 내미는 것이.

우리밖에 없어 심하게 투정 부리지도, 불평하고 토라지지도, 독하게 도망갈 수도 없다는 게 

나는 가슴 아프다.    

  

'우리가 이렇게 산책하는 것도 언젠가는 추억되겠구나. 엄마는 네가 원하는 건 다 해줄 거야.

좋아하는 오리목살은 떨어지지 않게 만들어줄게. 물그릇의 물은 깨끗한 물로 늘 채워줄게. 

질리지 않게 새로운 인형도 사주고, 매일 산책은 두 번씩 나오자. 너를 오래 혼자 두지 않을 게. 

불편해도 항상 함께 자고 목욕과 미용은 내가 해줄게. 불편하고 무서울 땐 늘 안아줄게. 

그리고 아침에는 눈을 마주치고 사랑한다 이쁘다 말해줄게.'


우리가 만나 사계절을 일곱 번 거치는 동안 서로의 향기가 섞여 가끔 내가 개 같고 개가 사람 같다. 

사랑은 내리사랑 이랬는데 어쩌면 우리가 사랑을 받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파도 슬퍼도 서운해도 언제나 꼬리 치며 다가와 주니 말이다. 

혼나서 시무룩했다가도 쓱 옆에 와 기대는 아이.

작지만 내 마음에 담기엔 너무 큰 아이.  

모로 누워 두 발을 포개고 단내 흘리며 낮잠에 빠진 내 아들. 

너의 시간이 천천히 가기를 나는 기도해 본다. 



                                                                    삶은 

                                                         말없는 생명체들에게도 

                                                              소중한 것이다


                                                          사람이 행복을 원하고

                                                           고통을 두려워하며

                                                         생명을 원하는 것처럼


                                                           그들 역시 그러하다


                                                              -달라니 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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