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흥길의 ‘종탑 아래에서’라는 소설 속에는 다양한 케이팝 음악이 들어 있어 좀 과장해서 말하면, 케이팝의 보고라고 할 수 있을 듯합니다. 소설 속 주인공이 부르는 케이팝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BTS, JYP, 멜로망스, 그리고 아이콘이 함께 합니다.
명은의 초능력과 BTS의 DNA
오늘은 전쟁의 충격으로 눈이 멀게 된 소녀와 그 소녀의 처지를 마음 아파하는 소년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 윤흥길의 ‘종탑 아래에서’를 공부합니다.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교실 안은 웅성거린다. 소년소녀의 러브 스토리에 대해 기대감 뿜뿜이라는 거지.
앞부분 줄거리
환갑이 다 된 초등학교 동기들이 모교의 운동장에 모여 앉아 모깃불을 피워 놓고 돌아가며 옛이야기를 하나씩 한다. 마지막 순서로 평소 입이 무겁기로 소문난 최건호가 나서서 어린 시절의 사랑 이야기를 하겠다고 한다.
내가 그 계집애를 맨 처음 본 것은 봄볕이 다냥하게 내리쬐는 한낮이었다. 아침에 등교하면서 길가에 멍석을 펴는 짝눈이 아저씨를 봤기 때문에 나는 그날도 하굣길에 일부러 네거리 하나를 더 지나 먼 길을 에돌아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천재교육의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는 소설의 발단 부분을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하굣길에 남주가 일부러 먼 길을 돌아서 가야만 여주를 만날 수 있도록 사건의 개연성을 부여한 장치이다.
그리하여 ‘나’가 시청 앞을 지나면서 전쟁 관련 정보를 접하고, 이어서 관사 정원에서 처음 본 소녀가 눈뜬장님을 알고는 놀라 부리나케 달음박질친다.
싸나이가 그까이꺼 갖고 뭘~~
이튿날 나는 학교가 파하기 무섭게 곧장 익산 군수 관사로 달려갔다. 관사 정원에서는 전날과 똑같은 상황이 되풀이되고 있었다. 계집애는 양팔을 앞으로 나란히 뻗은 부자연스러운 자세로 거리를 재기 위함인 듯 몇 발짝 조심스레 걷다가는 공을 잔디밭 위로 도르르 굴렸다.
“나비야! 나비야!”
아마도 철책 너머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심 때문인 듯 나비란 놈은 정원수 가지들 사이에 몸을 숨긴 채 꼼짝도 않고 야옹야옹 울어 대기만 했다. 공은 전날과 마찬가지로 잔디밭과 철책이 만나는 지점에 거의 정확히 멎어 있었다. 나는 통탕거리는 가슴을 애써 누르면서 철책 틈새로 손을 넣어 공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계집애를 향해 던져 주었다. 공이 발치 가까이에 떨어지는 순간 계집애의 얼굴에는 놀라움인지 반가움인지 모를 괴상야릇한 표정이 떠올랐다.
“거기 누구?”
“사람이여.”
“아, 어제 바로 그 애!”
계집애는 말 한마디로 상대방을 단박에 알아맞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난 널 알아. 나이는 나랑 비슷해. 키는 나보다 조금 더 커. 그리고 얼굴이 아주 못생긴 애야.”
마치 두 눈으로 똑똑히 본 것처럼 자신 있게 말하는 것이었다. 심지어 얼굴 못생긴 것까지 정확히 알아맞히는 바람에 나는 가슴 복판이 뜨끔 쑤셨다.
첫눈에 널 알아보게 됐어
수업 시작된 지 20여분, 자세가 흐트러진 얘들이 있다. 뭔가 재미있는 얘기를 하나 터뜨려야 하는데. 고민하는 그 찰나, 눈에 들어온 게 있었으니,,,,,,
얘들아, 말 한마디로 ‘나’를 단박에 알아맞히는 소녀한테서 무슨 신비감 같은 게 느껴지지 않니? BTS처럼 말이야. 일거에 난리 블루스다. 그래, 그래, 함 들어봐야지.
첫눈에 널 알아보게 됐어
서롤 불러왔던 것처럼
내 혈관 속 DNA가 말해줘
내가 찾아 헤매던 너라는 걸
우리 만남은 수학의 공식
종교의 율법 우주의 섭리
내게 주어진 운명의 증거
너는 내 꿈의 출처
(중략)
우주가 생긴 그날부터 계속
무한의 세기를 넘어서 계속
우린 전생에도 아마 다음 생에도
영원히 함께니까
이 모든 건 우연이 아니니까
운명을 찾아낸 둘이니까
DNA
- 방탄소년단, ‘DNA’
BTS 덕분에 소설 수업은 다시 활기를 찾는다.
사족을 달자면,
이 ‘DNA’는 2021년 2월 현재 뮤직비디오 조회수 12억 뷰를 돌파하며 무서운 기세로 새 역사를 쓰고 있다.
단정히 앉아 열공하는 얘들을 보면서, 교사는 또 수업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한다.
그래, 수업의 질에 대한 고민은 매번 해야지. 쥐구멍 볕 들 때까지 해가 뜰 때까지.
그러나 오늘만은 고민보다 Go Go ~~
②
러브스토리가 장착된 현대소설, 그 소설 속의 주인공 시골내기 건호의 유식함이 또 하나의 케이팝을 노래합니다.
건호의 박식함이 JYP의 고추잠자리를 소환하다
‘나’는 지난번에 소녀를 만났을 때보다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있네. 그러면서 군청 관사에 살고 있는 소녀가 비록 서울말을 쓰고는 있지만, 어리석고 무식하다는 것을 비웃네. 열등감에 대한 보상 심리를 ‘나’가 어떻게 드러내고 있는지 한번 볼까?
계집애가 내 앞으로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양팔을 앞으로 나란히 뻗지 않은 정상적인 자세로 걷느라고 철책까지 다다르는 데 반나절은 족히 걸리는 듯했다.
“못생겼다고 해서 미안해. 그냥 괜히 해 본 소리야.”
못생긴 게 사실이라고 나는 하마터면 실토정할 뻔했다. 생기다 만 얼굴 같다고 모두들 나를 놀려 대곤 했으니까.
“느그 아부지가 군수냐?”
얼굴 문제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어 나는 엉뚱한 데로 말머리를 돌렸다.
“군수가 뭔데?”
“니가 익산 군수 딸이냔 말여.”
“익산 군수가 뭔데?”
군수 관사에 살면서 군수가 뭔지도 모르다니. 역시 서울내기들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더 많은 무지렁이들이라고 생각했다. 서울내기들한테는 잠자리면 무조건 다 그냥 잠자리에 지나지 않을 뿐이었다. 실잠자리, 기생잠자리, 비단잠자리, 고추잠자리, 된장잠자리, 쌀잠자리, 보리잠자리, 밀잠자리, 말잠자리, 호랑잠자리 등등 가지각색의 수많은 잠자리가 세상에 있는 줄 꿈에도 모르는 버꾸들이었다.
“난 그런 거 잘 몰라. 외갓집 식구들이 가자는 대로 그냥 여기까지 따라왔을 뿐이야.”
계집애가 심드렁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으쩌다가 그러코롬 당달봉사는 되야 뿌렀다냐?”
나는 마침내 용기를 내어 간밤부터 줄곧 품어 나온 의문을 입 밖으로 불쑥 털어 냈다.
“당달봉사가 뭔데?”
역시 서울내기라서 별수가 없었다. 나는 당달봉사가 어떤 건지 설명해 주려고 철책에 바싹 달라붙었다. 그 순간 뭔가 이상한 낌새가 퍼뜩 느껴졌다.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홱 돌려 관사 쪽을 살펴보았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파가 유리창 안쪽에서 무시무시한 눈초리로 나를 쏘아보는 중이었다. 어마 뜨거라 하고 나는 전날처럼 또 담박질을 놓기 시작했다. 얘, 얘, 하고 다급히 부르는 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지만 나는 뒤도 안 돌아다보고 진둥한둥 줄행랑을 놓았다.
열등감에 대한 보상 심리로 작동하는 게 바로 이거지. 서울의 소녀를 비웃고 있잖아. 사실 시골 촌놈이라고 우습게 보면 안 되는 게, 건호가 알고 있는 잠자리 종류가 10가지나 돼. 저 정도면 자랑질할만하잖아. 잠자리 박사라 해도 되겠네. 여러분은 어때? 기껏해야 고추잠자리 하날 걸?
아니, 아니, JYP의 ‘고추잠자리’는 알간?
엄마들의 JYP, 고추잠자리
1981년도에 발표한 조용필의 ‘고추잠자리’!
오빠 부대의 원조로서 여성 팬덤을 일구었던 엄마들의 JYP!
바로 조용필의 ‘고추잠자리’는 가을날 센티멘탈한 소년의 순수한 서정을 노래하고 있다. 노랫말이 바로 시(詩) 아닌감? 안 듣고 갈 순 없지.
아마 나는 아직은 어린가봐 그런가봐
엄마야 나는 왜 자꾸만 슬퍼지지
엄마야 나는 왜 갑자기 울고 싶지
가을빛 물든 언덕에 들꽃 따러 왔다가 잠든 날
엄마야 나는 어디로 가는 걸까 외로움 젖은
마음으로 하늘을 보면 흰구름만 흘러가고
나는 어지러워 어지럼 뱅뱅 날아가는 고추잠자리
아마 나는 아직은 어린가봐 그런가봐
엄마야 나는 왜 자꾸만 기다리지
엄마야 나는 왜 갑자기 보고 싶지
- 조용필, ‘고추잠자리’
이 가요 어떤가요? 최고예요!
그때 당시 용필이 오빠는 천하제일이었어요. 여기서 수군, 저기서 수군수군.
가만히 귀 기울여보니, 울 엄마도 조용필 팬이었대. 우리 엄마도 그렇다던데.
울 엄마도......
③
조용필의 ‘고추잠자리’ 노래에 수업 분위기가 살아났습니다. 케이팝은 언제나 분위기 메이커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멜로망스의 ‘선물’은 또 어떤 역할을 하는지 한번 보겠습니다.
두 선물의 차이, 건호의 ‘선물’과 멜로망스의 ‘선물’
명은이 외할머니의 감시의 레이저 눈빛에 쏘여 이튿날은 군수 관사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그 이튿날도 마찬가지였다. 그동안 ‘나’는 소녀에 대한 관심으로 만세 주장의 지에밥도 먹기 싫고, 학교 공부도 재미가 없어졌다.
결국 사흘 만에 군수 관사를 찾아갔다가 외할머니를 만나는데, 명은이 외할머니는 명은이가 입원했다는 이야기와 함께 부모 이야기, 사람이 죽고 사람을 죽이는 이야기, 장님 이야기는 명은이 앞에서는 절대 꺼내지 말라고 당부를 했다.
얼마 후 명은이는 퇴원한다.
‘나’는 명은이에게 건넬 선물을 장만하기 위해 시청 벽보를 향해 달려갔다. 전황에 대한 새로운 소식은 앞 못 보는 명은이에게 의미 있는 선물이 될 뿐만 아니라 내가 결코 시골뜨기라고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님을 서울내기 계집애한테 일깨워 주는 확실한 증거물이 될 것이었다.
이런이런,,, 전쟁의 상처를 지닌 명은에게 줄 선물이 바로 전쟁 상황을 알려주는 소식이라고? 얘가 정신이 있나 없나? 명은이 외할머니의 당부를 ‘나’가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잖아. 아하, 곧 둘 사이에 갈등이 생기겠네. 그럼 이제 스토리가 점점 재미 만발...
우리의 여주 명은이 만나러 가는 ‘나’의 모습을 한번 볼까요? 시골 아이의 순박함이 잘 나타나 있어요.
명은이 외할머니 안내로 난생처음 익산 군수 관사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아무도 없는 정원 내부를 기웃거리며 철책 앞에서 서성거리는 참인데 관사 현관문이 빠끔히 열렸다. 명은이 외할머니가 손짓으로 나를 불렀다. 나는 난생처음 익산 군수 관사 안으로 주뼛주뼛 발을 들여놓았다. 잔뜩 겁을 집어먹은 채 낯선 구조의 양옥집 거실을 통과하는 나를 액자 속의 이승만 대통령이 근엄한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명은이가 들어 있는 작은 방으로 안내되었다. 명은이 머리맡을 지키고 있던 나비란 놈이 나를 보더니만 야옹 소리와 함께 냉큼 책상 위로 튀어 오르면서 경계의 눈초리를 보냈다. 명은이는 얇고 보드라운 차렵이불로 턱밑까지 가린 채 반듯한 자세로 드러누워 있었다. 며칠 사이에 눈에 띄게 야윈 모습이었다. 그래서 전보다 더욱 새하얗고 전보다 더욱 예뻐 보였다. 멋쩍고 쑥스러운 나머지 나는 괜스레 히죽히죽 웃기부터 했다. 명은이는 보이지 않는 눈을 내 얼굴에 맞추려고 내 웃음소리를 좇아 머리를 움직거렸다.
어때요? ‘관사 안으로 주뼛주뼛 발을 들여놓았다’든지, ‘잔뜩 겁을 집어먹은 채’ 거실을 지나간다든지, ‘나는 괜스레 히죽히죽 웃기부터 했다’ 등에서 영락없는 시골 소년의 순박한 성격이 드러나 있지요.
우리의 남주 건호, 눈치코치 없기론 우주 최강!
잠시 후, 명은이 외할머니가 나가자 ‘나’는 다짜고짜 선물 보따리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트루먼 대통령이 맥아더 원수를 유엔군 총사령관직에서 해임한 소식에 이어 의정부 전투에서 국군 1사단과 미군 3사단이 연합 작전으로 북괴군 1군단을 포위해서 1개 연대를 섬멸한 소식을 숨차게 전했다. 그러고는 덧붙였다.
“명은이 너, 섬멸이 무신 말인지 알어? 몰르지? 몽땅 씨를 말린다는 뜻이여.”
(참, 기도 안차지? 신이 나고 흥분한 ‘나’의 모습에 명은이 반응이 어떻겠어?)
당근 갑자기 초점을 잃고 회동그라졌지. 그러자 ‘나’는 명은이의 그 같은 반응을 ‘나’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받아들이면서 더욱더 신이 난 거야.
“영국군 29여단 글로스터 대대가 60여 시간 사투 끝에 중공군을 무찌르고 적성 고지를 사수혔다야.”
(신이 났네. 신이 났어. 이어서 또,)
“중부 전선 임진강 전투에서 우리 국군이 중공군 63군 3개 사단을 격퇴허고 대승을 거두었디야.”
(드디어, 우리의 명은이는 폭발한다.)
”듣기 싫단 말야! 제발 그만두란 말야!“
(그러곤 치명타를 날려버린다.)
”꼴도 보기 싫어! 가 버려! 가란 말야!“
눈치가 코치네. 아유~ 그걸 선물이라고 내놓을 때부터 알아봤지. 멜로망스처럼 달달한 가사로 ‘선물’ 세례를 퍼부었으면 얼마나 좋아. 쯧쯧!
그럼 이제 전쟁터의 참혹한 소식에 깜놀해 버린 명은이의 불편한 심기를 케이팝 ‘선물’로 달래어 주자고요. 아울러 ‘항상 평범했던 일상도 특별해지는 이 순간’으로 만들어서 명은이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그 좋은 기회를 단번에 똥볼을 차 버린 우리의 남주 건호의 쓰라린 심정도 위로하면서.
빛이 들어오면 자연스레 뜨던 눈
그렇게 너의 눈빛을 보곤
사랑에 눈을 떴어
<중략>
나에게만 준비된 선물 같아
자그마한 모든 게 커져만 가
항상 평범했던 일상도
특별해지는 이 순간
별생각 없이 지나치던 것들이
이제는 마냥 내겐 예뻐 보이고
내 맘을 설레게 해
- 멜로망스, ‘선물’ 중에서
④
이제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가 보이그룹 아이콘의 노래 하나로 마무리됩니다.
사랑을 했다-feat. 건호&명은
무엇이 서울 계집애의 성깔머리를 그토록 버르집어 놓았는지 당최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내 호의가 무시당한 관사 근처엔 앞으로 두 번 다시 얼씬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나는 길바닥의 돌멩이를 발부리로 힘껏 걷어차 버렸다.
(크크크, 얘는 어쩔 수 없구나. 죽었다 깨어나도 건호는 명은이 화를 낸 이유를 알 수 없을 것이다. 아울러 관사 근처엔 안 가겠다고 다짐을 하지만 그게 얼마나 갈지 뻔하다.)
더는 참을 수가 없어 나는 결국 다음 날 해 질 녘에 관사를 또다시 찾아가고 말았다.
(그럼, 그렇지!)
“왔으면 얼른 들어와야지 왜 거기 서 있니?”
거기 누구, 하고 묻는 대신 명은이는 나를 책망하는 척했다. 때맞춰 관사 현관문이 활짝 열렸다. 명은이 외할머니가 꾸짖음 반 반가움 반의 어정쩡한 기색으로 나를 맞아들였다.
(아, 이제 명은이와 화해를 하겠구나. 다신 그런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아라. 건호야!)
기사와 백마 이야기
나는 주일 학교 반사한테 들은 이야기 하나를 명은이에게 들려주는 일로 시간을 때웠다.
옛날 어느 성에 용감한 기사와 바람처럼 빨리 달리는 백마가 살고 있었다. 기사는 사랑하는 백마를 타고 전쟁터마다 다니며 번번이 큰 공을 세워 성주로부터 푸짐한 상을 받곤 했다. 전쟁이 끝났다. 세월이 흘러 백마는 늙고 병들게 되었다. 그러자 기사는 자기와 오랫동안 생사고락을 함께한 백마를 외면한 채 전혀 돌보지 않았다. 늙고 병든 백마는 성내를 이리저리 떠돌다가 어떤 종탑 앞에 이르렀다. 누구든지 종을 쳐서 억울한 사연을 호소할 수 있게끔 성주가 세워 놓은 종탑이었다. 백마의 눈에 종탑을 휘휘 감고 올라간 칡넝쿨이 보였다. 배고픔에 못 이겨 백마는 칡넝쿨을 뜯어먹기 시작했다. 그러다 종 줄을 잘못 건드리는 바람에 그만 종을 울리고 말았다. 종소리를 들은 성주가 무슨 사연인지 자세히 알아보도록 부하에게 지시했다. 그리하여 백마의 억울한 사연을 알게 된 성주는 은혜를 저버린 기사를 벌주고 백마를 죽을 때까지 따뜻이 보살펴 주었다.
“억울한 사람은 누구든지 종을 칠 수 있다고?”
“그렇다니깨. 아무나 다 종을 침시나 맘속으로 소원을 빌으면은 그 소원이 죄다 이뤄진디야.”
(아하, 명은이가 그렇게 악착같이 종을 치려는 이유가 밝혀졌다. 백마의 처지와 자신의 처지를 동일시하여, 자신도 백마처럼 종을 쳐서 억울한 사연을 호소하고 소원을 이루고 싶었기 때문이구나. 그렇담 의리의 사나이 우리의 건호가 당연히 도와주겠지.)
우리가 만든 LOVE SCENARIO
어른이 된 건호가 어느 날 명은에게 편지를 썼는데, 그게 바로 아이콘의 ‘사랑을 했다’의 가사라고 한다. 아니다, 기다, 아니다, 기다, 아니다, 기다, 아마 그것일 것이다.
사랑을 했다 우리가 만나
지우지 못할 추억이 됐다
볼만한 멜로드라마
괜찮은 결말
그거면 됐다 널 사랑했다
우리가 만든 LOVE SCENARIO
이젠 조명이 꺼지고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면
조용히 막을 내리죠
에이 괜찮지만은 않아 이별을 마주한다는 건
오늘이었던 우리의 어제에 더는 내일이 없다는 건
아프긴 해도 더 끌었음 상처가 덧나니까 Ye
널 사랑했고 사랑받았으니 난 이걸로 됐어
나 살아가면서 가끔씩 떠오를 기억
그 안에 네가 있다면 그거면 충분해
(중략)
사랑을 했다
우리가 만나
그거면 됐다
널 사랑했다
- 아이콘, ‘사랑을 했다’
*붙임 음악 : DNA(BTS), 고추잠자리(조용필), 선물(멜로망스), 사랑을 했다(아이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