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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중진미 Oct 17. 2022

관동별곡 vs 클래식 음악(1)

[고전문학-with 클래식] 관동별곡에서 들려오는 ‘월광소나타’

고전문학과 클래식!

고전문학은 고전음악과 함께 하는 것이 제격입니다. 그러나 고전(古典)이란 단어에서 풍겨 나오는 이 고리타분함은 어찌하오리까? 이열치열(以熱治熱)의 방식으로 맞붙어야죠. 

그래서 정공법으로 갑니다. 관동별곡엔 역시 월광소나타!


우개지륜(羽蓋芝輪)이 경포(鏡浦)로 나려가니, 

십(十) 리(里) 빙환(氷紈)을 다리고 고텨 다려, 

댱숑(長松) 울흔 소개 슬카장 펴뎌시니, 

믈결도 자도 잘샤 모래를 혜리로다. 

고쥬(孤舟) 해람(解纜)하야 뎡자(亭子) 우해 올나가니, 

강문교(江門橋) 너믄 곁에 대양(大洋)이 거긔로다. 

둉용(從容)하댜 이 긔샹(氣像) 활원(闊遠)한댜 뎌 경계(境界), 

이도곤 가즌데 또 어듸 잇닷 말고. 

홍장(紅粧) 고사(古事)를 헌사타 하리로다 

- 정철, '관동별곡'에서

고전문학시간!

이 클래식한 문학을 수업하자면 한숨부터 쉬고 나서 시작을 한다. 오늘날 사용하지 않는 고어들이 교과서 가득 채워져 있으니, 아이들이 얼마나 당황할까?

이럴 때 필요한 게 클래식 음악이다. 고전(古典)엔 클래식(clasic)으로! 

엥? 이건 당황을 너머 황당으로 가는 건 아닐는지?     


경포 호수의 정밀미(靜謐美)와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

새의 깃털로 덮개를 꾸며 놓은, 신선이 탄다는 수레를 탔으니 정철 본인이 신선이라는 말씀. 신선 전용 수레를 타고 경포로 내려가니, 얼음처럼 깨끗한 비단이 십리나 펼쳐져 있는데 그걸 다리미로 곱게 다리고 다시 다려 놓은 게 바로 경포호수의 수면이라는 것이야. 

뿐만 아니라 호수 바닥의 잔모래조차 헤아릴 수 있다고 하는 저 여유만만! 

호숫물이 얼마나 맑고 잔잔하면 이런 멋진 표현을 했겠어? 이제 호수 한가운데 있는 정자로 가기 위해 배 한 척을 띄우는데, 때마침 하늘에 보름달이 짜잔 하고 둥실 떠 있네. 아니 하늘뿐만 아니라 호수에도, 함께 타고 가는 사람들의 눈동자에도, 심지어 손에 들고 있는 술잔에조차도 둥근달이 떠 있을 줄이야.      


이 순간 어디선가 들려오는 월광 소나타 1악장 선율. ‘달빛 비치는 경포 호수에 흔들리는 조각배’와 같다는 표현은 이럴 때 써야 하는 것 아닐까? 독일의 시인이자 음악평론가인 루드비히 렐슈타프는, 베토벤의 이 음악과 관련하여 스위스의 관광지 루체른 호수를 언급하였다.      


“달빛이 비치는 루체른 호수에 흔들리는 조각배”라고 하였으니 가히 그의 시적 상상력에 일단은 리스펙트! 

1악장의 잔잔한 피아노 선율을 호수의 잔물결에 비유하고 싶었나 본데, 그 잔잔한 호수의 아름다움인 정밀미는 루체른 호수보다는 경포호가 월등할 듯.     


드디어 정자에 오르니 저 멀리 강문교 다리 너머 넓디넓은 동해 바다가 아스라이 시야에 들어온다. 그 순간, “정말 조용하구나 경포호의 이 기상, 진짜 넓고도 넓구나 동해의 저 경계! 이 보다 정밀의 아름다움을 갖춘 곳이 세상천지에 또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이거야말로 렐슈타프보다 한 수 위인 정철의 시적 상상력이 아닌가? 

상상력 이야기가 나왔으니 나도 한번 여기서 그 날개를 파닥거려볼거나? 

‘너와 나 그곳으로 떠나는 거야 상상에 상상에 상상을 더해서~’


베토벤은 줄리에타 귀차르디와의 이루지 못한 사랑을 월광 소나타(피아노 소나타 14번)로 러브스토리를 썼을 거라고 상상하면서 월광을 들어보니,     

 

1악장은 느리고 조용한 분위기로 전개되는데, 셋잇단 음표가 계속 이어지는 게 마치 베토벤이 사알짝 사알짝 그녀에게 다가가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2악장은 발랄한 귀차르디를 짧은 순간에 눈치를 한번 살피고는 3악장에서 강렬한 에너지를 발산하는 16분 음표를 위로 위로 치솟게 하면서 베토벤 자신의 폭풍 사랑을 격정적으로 쏟아내는 그 피아노 선율!      


누가 말하기를, 월광 소나타를 가장 잘 치는 이는 임동혁이라는데 난 그가 팔월대보름날, 달빛이 교교히 내리비치는 경포호수에서 이 월광 소나타를 한번 연주하면 얼마나 근사할까? 일전에 백건우가 남해 어느 섬에서 쇼팽을 연주하였는데 밤바다를 배경으로 한 그의 모습이 얼마나 로맨틱하게 보이던지 그날의 연주는 눈호강에 이어지는 귀호강이기에 더 이상 지상의 즐거움은 필요가 없더라.  

    

참, 김연아 선수가 2009년 8월에 올림픽공원 체육관에서 피아노 소나타 14번의 음악에 맞춰 미셀콴과 함께 아이스 쇼를 펼친 적이 있는데, 그때 피겨 팬들은 ‘달빛이 비친 한강의 물결에 흔들리는 유람선’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한 신문이 전하였다지.      

그녀가 우리 학교에 교생으로 왔던 그 인연으로 당시 우리 모두가 교생 김연아의 갈라쇼를 한번 구경한 적이 있었지. 지금 생각해도 그 몸짓 그 음악은 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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