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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중진미 Oct 06. 2022

문학(文學) vs 음악(音樂)

[현대문학-with 클래식] 문학과 음악의 만남!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현대문학과 클래식!

문학과 음악의 만남은 참으로 위대한 역사를 창조했습니다. 두 예술 장르는 사실 잘 어울리는 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성석제의 현대소설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를 통해서 우리는 음악의 영감으로 탄생한 문학의 모습은 과연 어떠한지 한번 보겠습니다.


독일의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아버지도 유명하다. 뮌헨 궁정악단의 호른 연주자로서 이름을 날렸다. 하지만 아들이 더 유명한 건 아마 이 음악 때문일 것이다. 

‘차라투스는 이렇게 말했다’     


니체의 철학시라 할 만한 ‘차라투스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고, 사실 좀 어려운 내용인데 슈트라우스가 니체의 자유 의지와 초인 사상에 얼마나 혹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책을 읽고 감명을 받아 동일 제목의 교향시를 작곡하는데, 그게 바로 ‘차라투스는 이렇게 말했다’이다. 워낙 유명한 클래식이라 누구나 딱 들으면 아, 이 음악! 하는 곡이다. 오르간 소리에 팀파니와 금관악기가 어울려 웅장한 음을 내지르고 있는 이런 엄청난 음악을 작곡했으니 니체의 위버멘쉬 타이틀을 붙여줘도 괜찮을 듯. 

    

해학과 풍자의 달인, 경상북도 상주가 낳은 소설가 성석제! 

시골 농촌에서 서울로 유학을 가 유명 대학을 다녔다. 1990년대 IMF 직후, 위기를 겪고 있는 농촌 현실을 배경으로 이기적인 현대인에 대한 풍자와 함께 암울한 농촌 현실을 고발하고 있는 작품을 하나 썼다. 훗날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가 그것이다. 헌데 이 근사한 소설을 완성해 놓고서도 제목을 정하지 못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었다나?      


하긴 제목을 어렵게 어렵게 결정해 놓고도 발표 직전에 뒤바뀐 경우가 있다는데. 

70년대 신문 연재소설로 장안의 화제가 된 최인호의 ‘별들의 고향’은 원래 ‘별들의 무덤’이었고, 김훈의 ‘칼의 노래’ 역시 ‘광화문 그 사내’에서 바뀌었고, 박범신의 ‘은교’도 ‘살인 당나귀’라는 생뚱한 제목에서 변경된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내로라하는 유명 작가로서 자존심에 살짝 스크래치 당해버린 그들의 내밀한 흑역사가 문단에 전해오고 있다고 하네.    

 

차라투스는 이렇게 말했다 vs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어찌되었던 간에, 성석제는 그 소설을 서랍에 넣고선 대학로 학림다방으로 차를 마시러 갔다는데. 그때 다방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장엄한 클래식 음악이 하나 있었다. 

빠~~ 밤~~ 빠 밤~~   

   

이 기막힌 음악에 넋을 빼앗기고 있는 순간, 그래! 바로 이거라면서 한방에 소설 제목의 고민을 해결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해온다. 음악의 영감으로 문학이 탄생하는 순간이 도래한 것이다. 마침 이 음악이 배경으로 사용된 영화가 있었으니 그게 ‘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이다. 유인원이 동물 뼈다귀를 허공에 냅다 집어던지는 순간, 이 웅장한 음악이 포효를 하는데, 이건 원시 시대에서 우주 시대로 수백만 년의 비약이 일어난다는 거 아닐까. 다시 말해 위대한 탄생인 거지. 문학의 영향으로 음악이 탄생하고 다시 그 음악의 영감을 받아 문학이 재탄생한 것이니, 결국은 위대한 탄생이 맞네.      


이제 이 소설을 한번 보자. 

발단부터 주인공의 실종 사건을 말하고 있다. 이는 매사에 성실하고 정직한 주인공과 이해타산적인 마을 사람들을 대조적으로 제시하여 주제 의식을 선명하게 부각하기 위한 장치이다. 또한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여 이후의 내용 전개에 몰입하게 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덕분에 독자들은 몰입도 100%로 빠져들게 된다.   

  

황만근이 없어졌다. 새벽에 혼자 경운기를 타고 집을 나간 황만근은 늘 들일을 나가면 돌아오는 시각인 저물녘에 돌아오지 않았다. 술을 마시고 취하더라도 열두 시가 될락 말락 한 한밤이면 돌아왔는데 이번에는 아니었다. 평생 단 하루 외박한 뒤 돌아왔던 그 시각, 횃대의 닭이 울음을 그치는 아침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마을 회관 앞, 황만근이 직접 심어 놓은 등나무 덩굴 아래, 직접 짠 평상에 사람들이 모였다. 먼저 이장이 입을 열었다.     

“만그인지 반그인지 그 바보 자석 하나 따문에 소여물도 못 하러 가고 이기 뭐라. 스무 바리나 되는 소가 한꺼분에 밥 굶는 기 중요한가, 바보 자석 하나가 어데 가서 술 처먹고 집에 안 오는 기 중요한가, 써그랄.”     

마을에서 연장자 축에 들고 가장 학식이 높아 해마다 한 번씩 지내는 용왕제(龍王祭)에 축(祝)을 초(草)하는 황재석 씨가 받았다.     

“그래도 질래 있던 사람이 없어지마 필시 연유가 있는 기라. 사람이 바늘이라, 모래라. 기양 없어지는 기 어디 있어. 암만 그래도 우리 동네 사람 아이라. 반그이, 아이다, 만그이가 여게서 나서 사는 동안 한 분도 밖에서 안 들어온 적이 없는데 말이라.”     

“아이지요, 어르신. 가가 군대 간다 캤을 때 여운지 토깨인지하고 밤새도록 싸우니라고 하루는 안 들어왔심다.”

                           <중 략>     

그런데 우리의 황만근 씨가 실종된 후, 황 씨 집성촌 사람들은 황만근의 안위를 전혀 걱정하지 않고 있었다. 민 씨만이 의아하게 느끼고 있었을 뿐이었다. 계속해서 그들의 반응을 살펴보자.   

  

“사람이라고 및밍이나 되나. 군 전체 사람이 모도 모있다는 기 백 밍이 될라나 말라나 한데 반그이는 돼지고기 반 근만 해서 그런지 안 보이더라칸께.”     

이장은 계속 빈정거리듯 말을 이었다. 민 씨는 이장이 궐기 대회 전날 황만근을 따로 불러 무슨 말을 건네던 것을 기억해 냈다.     

“그제 밤에 내일 궐기 대회한다고 사람들 모였을 때 이장님이 황만근 씨에게 뭐라고 하셨죠. 모임 끝난 뒤에.”     

이장은 민 씨를 흘기듯 노려보았다.      

“왜, 농민 보고 농민 궐기 대회 꼭 나오라 캤는데, 뭐가 잘못됐나.”     

민 씨는 자신도 모르게 따지는 어조가 되었다.     

“군 전체가 모두 모여도 몇 명 안 되었다면서요. 그런 자리에 황만근 씨가 꼭 가야 합니까. 아니, 황만근 씨만 가야 할 이유라도 있습니까. 따로 황만근 씨한테 부탁을 할 정도로.”     

“이 사람이 뭐라 카는 기라. 이장이 동민한테 농가 부채 탕감 촉구 전국 농민 총궐기 대회가 있다, 꼭 참석해서 우리의 입장을 밝히자 카는데 뭐가 잘못됐단 말이라.”     

“잘못이라는 게 아니고요, 다른 사람들은 다 돌아왔는데 왜 황만근 씨만 못 오고 있나 하는 겁니다.”     

“내가 아나. 읍에 가 보이 장날이더라고. 보나 마나 어데서 술 처먹고 주질러 앉았을 끼라. 백 리 길을 깅운기를 끌고 갔으이 시간도 마이 걸릴 끼고.”     

다른 사람들은 말이 없었고 민 씨와 이장만이 공을 주고받는 꼴이 되어 버렸다.

                      <중 략>

부채로 얼룩진 농촌 현실과 각박한 인심에 대한 비판!

“반편은 누가 반편입니까. 이장이니 지도자니 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방침을 정했으면 그대로 해야지, 양복 입고 자가용 타고 간 사람은 오고, 방침대로 경운기 타고 간 사람은 오지도 않고, 이게 무슨 경우냐구요.”     

“이 자슥이 뉘 앞에서 눈까리를 똑바로 뜨고 소리를 뻑뻑 질러 쌓노. 도시에서 쫄딱 망해 가이고 귀농을 했시모 얌전하게 납작 엎드려 있어도 동네 사람 시키줄까 말까 한데, 뭐라꼬? 내가 만그이 이미냐, 애비냐. 나이 오십 다 된 기 어데를 가든동 오든동 지가 알아서 해야지, 목사리 끌고 따라다니까?”     

마침 황만근의 어머니가 나오지 않았으면 몸싸움이 났을지도 몰랐다. 

                    <중 략>     

아, 참으로 딱하다 하지 않을 수가 없도다. 마을 사람 하나가 실종되어 귀가하지 않고 있는데도, 시종일관 무관심 모드로구나. 심지어 자신들의 이익만 따지는 이기적인 태도를 보이는 마을 사람들도 있었다. 정말이지 기가 차도다. 그러고 보니, 딱이네. 이 소설의 주제 의식이 '부채로 얼룩진 농촌 현실과 각박한 인심에 대한 비판'이란 게. 당대 현실에 대한 따끔한 일침! 과연 위대한 만남으로 탄생한 소설이라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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