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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중진미 Sep 26. 2022

월명사의 제망매가 vs 멘델스존의 현악 4중주 6번

[고전문학-with 클래식] 월명사와 멘델스존, 누이를 애도하다

고전문학과 클래식!

고전문학을 들여다보면 인생의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담겨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주인공의 감정을 시와 음악을 통해 온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월명사의 제망매가와 멘델스존의 현악 4중주 6번을 함께 엮어 봅니다.


생사(生死) 길은

예 있으매 머뭇거리고,

나는 간다는 말도

못다 이르고 어찌 갑니까.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이에 저에 떨어질 잎처럼,

한 가지에 나고

가는 곳 모르온저.

아아, 미타찰(彌陀刹)에서 만날 나

도(道)닦아 기다리겠노라.

- 월명사, ‘제망매가’     


남매간의 저 우애, 낙엽 따라 가버렸으니

신라 경덕왕 시절, 곡조 잘 짓고 피리도 잘 부는 음유시인이 하나 있었으니 이름하여 월명사(月明사師)라. 대중의 존경심도 높고 높은 스님이시다. 그에게는 사랑하는 누이가 있었다. 당연히 남매간의 우애는 깊고도 깊었다. 그 누이가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떴다. 월명사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으리라. 추모의 의식을 진행하면서 노래를 불렀다.      


한 부모한테서 이 세상에 왔지만, 갈 때는 알 수가 없구나. 마치 가을바람에 떨어지는 저 나뭇잎처럼. 아, 참으로 우리네 인생사가 허무하고 부질없도다. 누이야, 사랑하는 누이야, 부처님 세상에서 기다려라. 이 오빠가 열심히 불도를 닦아서 널 만나러 갈 터이다.


노래가 끝나기가 무섭게 제상에 올려둔 지전(紙錢)이 서쪽 하늘로 막 날아가고 있네. 월명사 생각하기를, 아! 누이가 아미타불이 계시는 서방정토로 갔구나. 다행 지사로다.


그로부터 약 1000여 년 후, 멘델스존이란 작곡가가 독일에서 태어났다. 그에게도 역시 사랑하는 누이(손위 누이)가 있었으니 이름이 파니였다. 동생 멘델스존의 천재적 재능에 가려진 비운의 음악가라고 세상 사람들은 말했으나, 남매간의 두터운 우애에 비하면 별것 아니리라.     


동기간의 애끓는 정, 이제 어이하리오?

동기를 잃은 월명사의 정서적 충격과 비탄을 노래한 것이 향가 ‘제망매가’이듯이, 멘델스존의 아픔을 담아낸 곡이 ‘현악 4중주 6번’이다. 1악장부터 시작되는 강력한 트레몰로 합주와 절규하는 듯한 바이올린의 선율이 누이를 잃은 멘델스존의 안타까움과 현실 부정을 잘 표현하고 있다고 하는데, 사실 이건 클래식 초짜인 내가 들어도 같은 느낌이다. 나무하는 아이나 물 긷는 아낙네도 마찬가지로 느끼리라. 그만큼 사람의 감정은 동일하고 느낌도 똑같다. 멘델스존은 모두 6곡의 현악 4중주를 작곡했는데, 4중주의 마지막 6번은 그가 세상을 떠나기 바로 몇 개월 전에 작곡하였다. 특히 이 6번은 그가 끔찍이도 사랑했던 누이 파니를 잃은 슬픔으로 작곡한 것이다 보니, 파니 레퀴엠이라 칭한다고도 한다.


봄에 누이를 잃은 멘델스존은 그 충격으로 자리에 누워 끝내 일어나지 못하고 그해 가을, 38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극락에서 만날 누이를 기다리면서 불도(佛道)를 닦은 월명사처럼 망매(亡妹)에 대한 슬픔을 조금은 자제하면서 음도(音道)를 닦으며 살아갔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단지 후세 사람의 어리석고 부질없는 생각일 뿐인가. 아, 그들 남매의 애틋했던 감정을 음악으로나마 느껴보는 수밖에.


<사진출처=두산백과 두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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