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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중진미 Sep 14. 2022

김시습의 이생규장전 vs 비탈리의 샤콘느

[고전문학-with 클래식] 세상에서 가장 슬픈...

고전문학과 클래식!

고전문학에서 고전소설은 정말이지 흥미 만발의 장르라 그저 고마울 뿐입니다. 할머니께 듣는 옛날이야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클래식 한 곡을 깔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입니다.


신동으로 불린 아이

김시습은 신동이라 불렸다. 생후 8개월 만에 한자를 알았고, 3세 때 마당에서 놀다가 하인들이 보리를 맷돌에 가는 것을 보고는 시구를 작성했다고 한다.     


無雲雷聲 何處動 (무운뢰성 하처동)

黃雲片片 四方分 (황운편편 사방분)     

비는 아니 오는데 천둥소리 어디서 나는가?

누른 구름 조각 사방으로 흩어지네   

  

과시 신동이도다. 소문이 퍼지고 퍼져 구중궁궐의 세종 임금 귀에까지 들어갔다. 당연히 불렀겠지. 이런저런 걸 시험한 후, 세종이 크게 칭찬하고 하사품으로 비단 한 필을 내렸다.      

다섯 살짜리 시습이 어떻게 가져갈까? 조정의 신하들도 궁금했다. 그러나 시습은 망설임 없이 비단을 풀어 허리에 매고는 유유히 집으로 갔다는 거짓말 같은 이야기가 전해온다. 세종은 후일 김시습을 크게 쓸 것이니 학문에 정진하라고 부탁했다는데.     

아뿔싸!

시습이 18세 때 세종은 세상을 떠났고, 시습이 21세 때 단종이 폐위되었다는 소식을 접하자, 읽던 책들을 전부 불태워 버리고 설악산 오세암에 들어가 59세 때 세상을 떠났다. 아, 이렇게 조선의 천재 하나가 허무하게 사라져 버렸다.     


‘이생규장전’은 산 자와 죽은 자의 사랑을 그린 이야기이다. 이것은 현실에서의 사랑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이고, 그래서 현실에서의 사랑이 또 무엇보다도 소중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야기는 대체로 이렇게 시작된다.

개성에 사는 남주 이생은 학교 가는 길에 어느 규수 집 담장 안을 엿보다가 아름다운 여주 최 씨를 보고 한눈에 심쿵해버렸다.      

보면 볼수록 가슴이 쿵쿵대. 처음 본 그 순간 완전 반해 반해 버렸어~~♪♪♪     

이게 인연이 되어 둘은 꽃다운 인연을 맺지만, 남주의 아버지가 가만있을 리 없지. 자식을 먼 시골 학교로 전학을 보내네. 당연히 상심한 여주가 상사병에 걸리고, 그녀 부모가 이생의 집에 가게 되면서 이 둘은 꽃길이 아닌, 힘들고 어려운 고난 길을 걷게 되면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세 번의 만남과 세 번의 이별을 통해 사랑의 기쁨과 슬픔을 맛보게 되는데, 특히 세 번째의 이별은 이승과 저승 사이에는 분명한 경계가 있음을 알려주는 명부의 법칙에 따라 이제 영원한 이별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 세상에 있는 이생에게까지 죄과가 미치게 되기 때문.     

두 사람은 서로 바라보며 눈물만 줄줄 흘렸다.

“서방님, 부디 몸 건강히 지내세요.”

     

세상에서 가장 슬픈 사랑 vs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음악

두 사람의 영결식(永訣式)! 

이 장면에서 우리는 배경음악을 하나 깔아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이별에는 역시 비탈리가 작곡한 ‘샤콘느’가 나와야 하리라.      

이 음악은 흔히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음악이라고들 부른다. 음악평론가 조희창의 말이었던가. 폐부를 찌르는 듯한 바이올린 연주가 과연 어떠하길래 저절로 눈물이 나오는지 조금 후 한번 빠져 봅시다.


이생은 그녀의 유골을 거두어 부모님 무덤 곁에 묻어 주었다. 장사를 지낸 뒤 이생도 최 씨와의 추억을 생각하다 병을 얻어 몇 달 만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마다 애처로워하며 그들의 절의를 사모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 김시습, 『금오신화』 중, ‘이생규장전’    

 

죽음을 초월한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는, 현대인의 눈으로 보면 흔해 빠진 통속적 스토리이다. 하지만 이게 비명횡사한 단종과 평생 충절을 지킨 생육신 김시습의 관계를 우의적으로 표현한 창작 의도를 이해한다면, 이 사랑이 그저 단순하게 와닿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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