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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는 답이 없다.

중년의 며느리로 산다는 것

by 나니야

인간은 자기중심적이고 욕심이 많은 동물이라고 현명한 사람들이 이야기한다.

나는 인간이다. 그래서 자기중심적이고 욕심이 많다.

어린 나이에 세상은 무정하여 나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나는 세상을 위해 무언가를 하기보다는 나를 위해 무엇인가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굉장히 이기적인 발상이지만 살면서 더 절실해진다.



타인과 가족을 배려하는 삶을 살아온 K-장녀들은 나이가 들면서 자기중심적이 되어야 한다고 느끼지만, 살아온 습관으로 그러지 못한다. 아니, 어쩌면 그런 생각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에서 장녀로 태어난 많은 사람들이 배려하고, 양보하면서 살았기 때문에 나이 들어서도 그렇게 살아야만 되는 줄 안다.

남편이기에 양보하고, 아들이기에 양보하고, 시댁이기에 양보하고 살아온 시간들.

요즘 장녀들은 그렇게 살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렇게 되길 강요하는 시댁의 어른들이 존재하기에 마찰이 생기게 되는 것은 아닐까?

왜 결혼한 여자에게 친정은 우선이 되면 안 되는 걸까?

단순히 가족의 문화라고 생각하기에는 뭔가 아쉽다.


나는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아 시부모님 두 분이 돌아가셨다. 어리지 않은 나이에 결혼했기에 아쉬움도 있었지만 잘 보내드릴 수 있었다. 이후의 시간들은 나 중심으로 살아왔다. 그래서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아쉬움은 많다.

최근 주변에 80이 넘고 90이 넘고 100살이 되어가는 시부모를 모시는 또래들을 보면서 그 세월들을 어떻게 살아왔을지 이해가 되면서도 안타깝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으로 아이들을 키우고, 시부모를 비롯한 식구들 뒷바라지에 친정까지 신경 써야 하는 삶을 이어온 며느리들이다. 이제 나이 들어 안정되어야 하는데 기억이 없어지는 시부모를 요양병원에 모시기 위해 시댁 어른들과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안쓰럽다. 정작 본인들은 같이 생활하지 않기에 기저귀뒷바라지가 뭐가 힘드냐고 쉽게 말한다. 하지만 막상 해보면 쉽지 않은 그 일을 며느리라는 이름으로 해야 한다. 아들도 마다하는 시아버지의 기저귀바라지는 말처럼 쉽지 않다. 그런데도 한 번씩 방문하는 '시'자 들어가는 인척들은 잘 돌보지 못해 냄새난다고 구박한다. 그 말에 남편이 동조하면 '내 팔자는 왜 이런가'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살아온 날들을 서글퍼하고, 후회하고, 아이들이 나를 내칠까 두려워하며 찾아온 갱년기와 함께 세상이 싫어진다. 아니 내가 살아온 시간들이 참 쓸데없어져 비참해진다. 누가 알아주길 바라면서 살아온 것은 아니지만, 슈퍼우먼이 되라고 등 떠밀지도 않았지만 그렇게 살아야 되는 줄로만 알고 살아온 세월들이 허무해지는 느낌을 느끼며 우울이라는 진단을 받게 된다. 그나마 남편이 내 편을 들어 '시'자 들어가는 인척들에게 뭐라고 한마디 하면 내가 살아온 날들이 보상받는 느낌이다. 참 잘 살았다 싶고, 가진 건 없어도 나를 위해주는 사람 만나 보람찬 인생을 보냈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내편이 있다는 생각에 살 만해지는 여생이 된다.


대한민국에서 며느리로 사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런 생활을 내 딸에게도 강요하고 싶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또 혼자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힘들 것 같다. 인생이 답이 없다. 결혼하지 않겠다는 아이에게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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