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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인 Nov 16. 2023

콩이는 새가 되었을까

산골散骨

화장장에서 콩이를 산골하고 사진을 보내왔다. 구덩이를 파고 뼈가루를 뿌린 옆에 초코파이 3개와 생수 한 병이 놓여 있었다. 새삼 울컥한다. 평소 내 삶에도 별로 애착이 없었고, 인간의 죽음도 다른 생명의 죽음처럼 자연현상으로 객관화 시켜서 바라 보았던 나로서는 상당히 당황스러운 반응이다. 콩이는 나에게 어떤 존재였나.      


‘콩이야 이 다음엔 새로 태어나. 훨훨 날아다녀.’

산책길을 콩이와 함께 걸으며 주문처럼 되뇌던 말이다. 아파트 단지를 관통하는 1.2Km의 냇가를 따라 조성된 물길을 따라 자유롭게 오가는 물고기, 오리떼, 두루미들을 볼 때마다 인간에게 의존하여 살아가는 반려견들의 처지가 왠지 가여웠다. 자연 속에서 생명을 부지하는 것도 쉽지는 않겠지만 그 속에서 살아가는 것 자체가 부러웠다. 그들의 거침없는 생명력과 대비되어 인간에게 의존할 수 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들에 대한 부채감이 컸다. 인간의 편의를 위해 인간 곁에 머무르게 된 모든 동물들의 숙명이 안타까웠다.  

    

어느날부터 동물농장 프로를 보지 않게 되었다. 유기견이나 불법 번식장의 실태를 알게 되면서 그렇게 노출되는 동물들의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었다. 학대받는 개들은 또 얼마나 끔찍한지. 학대받고, 유기되고, 최악의 환경에새끼 낳는 기계가 되고. 인간의 잔악성에 치가 떨릴 지경이었다. 그 때마다 콩이의 존재가 새삼 애잔하였다. 콩이가 제발 우리 옆에서 오래도록 건강하게 함께하기를 바랐다.    

  

하루는 남편이 콩이를 돌보는 나를 보며 콩이만 챙긴다며 투정을 하였다. ‘당신은 손이 없냐, 발이 없냐, 돈이 없냐. 하고 싶은 데로 다 할 수 있다. 콩이는 내가 챙겨주지 않으면 한 발자국도 나가지도 못해, 물도 못마셔, 밥도 못먹는다’ 주워섬겼더니 자기가 생각해도 그런지 웃고 말았다. 늘 콩이가 안쓰러워서 전전긍긍 예뻐하면서 무심코 해본 농담이었을 것이다.      


우리 둘은 콩이를 바라보며 이름을 부르기만 하여도 눈가가 촉촉해지고 침이 고였다. 설사를 하다가 똘방하게 응가를 하면 너무 잘했다고 칭찬을 해댔다. 응가하고 칭찬받는건 우리 콩이 밖에 없을거라고 마주보며 웃곤 하였다. 곁에 함께하기만 하여도 좋았고, 바라보기만 하여도 좋았다. 이런 경이로운 생명체라니. ‘어떻게하면 좀 더 자유롭고 행복하게 해줄수 있을까?’하는 책임이 컸다. 그렇다고 달리 해줄 것도 없었다. 늘 옆에 있어주고 산책 시키고 가능하면 콩이의 삶에 직접 개입하지 않으려 애썼다. 매 상황마다 콩이의 입장에서 생각하려고 했다. 그것이 콩이를 행복하게 해주는 유일한 방법이라 믿었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점점 콩이가 보고 싶어진다. 꼭 살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추운 날씨에 밖에서 서성이고 있는 건 아니겠지. 비봉 산기슭에 잘 누워 있겠지. 종교도 없고 사후 세계나 영혼의 존재도 믿지 않지만 콩이는 꼭 다시 태어나서 자유롭게 살았으면 한다. ‘콩이야 이번에는 태어나면 새가 되어 훨훨 날아 다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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