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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인 Dec 12. 2023

음악회 가는 길

-청중의 목관리와 관크

나는 눈을 감고, 목젖을 움켜잡고 필사적으로 기침이 나오는 것을 막고 있었다. 백혜선의 브람스(피아노 협주곡 2번 Bb 장조, 작품 83) 연주가 막 시작된 참이었다. 가을철 들어서면서 부쩍 자주 있는 연주회와 비례해서 감기가 걸리곤 한다. 다 나은 상태였지만 혹시나 해서 마스크에 목사탕까지 물고 있었는데 연주자도 아니면서 잔뜩 긴장을 한 탓인지 기침이 터져 나왔다. 가 수많은 시간 동안 준비한 연주를 내가 망칠 수는 없다는 생각에 진땀이 나고 몸이 경직되었다. 연주자가 완성된 작품을 사람들 앞에 펼쳐 보이는 순간이다. 옆 사람도 뭔가 석연치 않은 나의 행동 때문에 음악에 집중할 수 없었으리라. 의도치 않게 관크(관객 critical)가 된 것이다. 가장 힘든 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간신히 소리를 내지 않고 모면을 했다. 1악장이 끝나고 목청을 다듬어 진정시켰다. 한 악장이 끝날 때마다 여기저기서 목을 다듬는 기침소리가 나는 이유를 실감하였다.  

    

일전에 임윤찬이 건강 문제로 외국에서의 연주회가 취소된 적이 있었다. 외국까지 원정하려던 들은 일정을 조정하기도, 관광으로 돌리기도 하면서도 임윤찬의 건강만을 걱정하였다. 너무 바쁜 일정에 병이 나버린 어린 연주자가 안쓰럽기만 하다는 분위기였다. 관대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중이염의 경우 완전히 낫기 전에 비행기를 타면 고막이 잘못될 수 있어서 여행 자체를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연주자들이 바쁜 일정 속에서도 건강을 지켜 좋은 컨디션을 유지해야 하는 것은 숙명이리라.


연주자의 몸관리 못지않게 청중들의 목관리도 중요하다. 수시로 터져 나오는 기침은 연주자의 훌륭한 연주를 망쳐버리고 다른 청중의 귀한 시간과 돈을 빼앗아 버린다. 내가 고생한 이야기를 했더니 음악회에 자주 다니는 친구가 리콜라 캔디를 건네주었다. 온라인으로 한 번에 대량 구매를 한다면서 내 것까지 챙겨 주었다. 껍질 없이 알사탕만 조그만 종이 상자에 들어 있어서 음악회 중간에도 소리 내지 않고 감쪽같이 먹을 수 있는 신통방통한 사탕이다. 또 한 지인은 잔기침이 남아 있는 경우에 배숙을 만들어 먹으라며 레시피(배, 콩나물, 꿀)를 주었다. 열심히 끓여 먹었더니 과연 잔기침까지 완전히 사라졌다. 다들 이렇게 목관리를 하면서 음학회를 다니고 있었다.    

  

다음으로 관크가 되는 경우는 악장사이에 박수를 쳐서 음악의 흐름을 끊어 연주자들을 당황시키는 경우이다. 이 행위도 연주자들의 그간의 노력을 수포로 만든다. 악장이 끝나면 연주자들은 다음 악장의 이미지를 떠올리며 더욱 몰입을  한다. 그 몰입을 방해한다면 결국 연주를 망치게 된다. 처음 음악회에 온 사람들이 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뭔가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하고 재빨리 멈추기도 하지만 정신없이 끝까지 치는 경우도 있다. 일단 박수를 치면 맥이 끊어진다. 음악 연주라는 것은 흐름이 중요한 순간의 예술이기 때문에 그 시간이 지나면 돌이킬 수 없다. 연주자의 작품을 완전히 망쳐버린다.     

  

연주가 미처 끝나기도 전에 일어나서 미친 듯이 브라보를 외치는 사람들이 가끔 있다. 과연 제대로 음악을 즐기는 사람인지 의심스럽다. 아직 여운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연주자와 그 여운을 즐기려는 청중의 예술행위마저 빼앗아 버린다. 연주를 다 마치고 여음이 완전히 사라진 다음에 연주자가 인사를 하면 그때서 박수를 치면 될 일이다. 경쟁하듯이 남들보다 더 빨리, 급히 박수를 칠 필요는 없다. 일어나지 않은 뒤 사람에게 방해가 될까 봐 기립박수를 안 한다는 일본 청중들이 이해가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천천히 여유롭게 음악 자체를 음미한 후에 열렬히 박수를 치면 될 일이다. 음악이 정말 좋았다면 마음껏 기립박수를 쳐도 좋을 것이다. 남의 눈치 볼 필요 없이.  

    

이렇게 목관리를 잘하고,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기립박수 칠 용기를 가지고 훌륭한 연주를 들으러 내일도 아트센터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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