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치료 덕분에 얻게 된 쇼트 커트. 요양원 헤어스타일이다. 염색도 펌도 거부한다. 어떤 스타일을 할까 고민도 안 한다. 한 달에 한 번 미용실에서 다듬기만 한다. 샴푸도 린스도 필요 없다. 유황비누로 감기만 한다. 빗도 드라이기도 필요 없다. 툭툭 털면 금세 마른다. 콩이의 털을 말리던 드라이기는 수납장에 고이 모셔져 있다.
마스크를 쓰는 팬데믹 3년 동안 화장을 전혀 하지 않은 덕분에 마스크를 벗은 지금도 화장을 하지 않는다. 방법을 잊었다. 원래도 잘 모르던 것을. 파운데이션을 거부하는 주름진 얼굴들을 보면 저건 아니다 싶다. 주름사이에 낀 파운데이션을 보고 있노라면 안쓰럽다. 역시 젊고 팽팽한 얼굴이어야 감당이 된다. 주름과 잡티, 검버섯을 세월의 훈장으로 삼고 조금 칙칙하지만 맨 얼굴로 활보한다. 세상 편하다. 마스크를 쓰면 자외선이 차단되는 줄 알고 자외선 차단제도 안 발랐더니 외모에 관심 많던 엄마가 ‘너 어디서 농사짓냐’고 면박을 줬다. 차단제를 발랐더니 이번에는 너무 하얗다고들 한다. 톤업크림이라는 것을 살짝 바르니 이제야 목과의 색 차이가 좀 덜해진다. 덕분에 얼굴에 바르는 몇 가지 것들은 욕실 수납장에 들어있다. 따로 자리를 차지하지 않으니 그것 또한 좋다.
발이 편한 운동화만 있으면 끝이다. 하루 만보 걷기. 비싼 돈을 들여 레슨을 받거나 장비를 사지 않아도 된다. 다칠 염려도 없다. 가성비 좋은 운동이다. 그냥 무작정 나와 걸으면 된다. 사방이 공원이고 걷기 좋은 아름다운 길들이 기다리고 있다. 햇빛과 바람을 맞으며 몸을 말린다. 볕 좋은 가을날 빨래가 마르듯이 몸도 마음도 어두운 기운을 날려 버린다. 어느새 자라난 동심이 바람에 마구 나부낀다. 뽀송해지는 몸과 마음에 발끝이 땅에서 날아오른다. 비 오는 날에는 젖은 낙엽을 조심해야 한다. 낙상이다. 물론 눈 오는 날도. 나이 먹어서 ‘눈비에 지지 않고’ 걷는다는 것은 대단한 모험이다. 가끔은 비 오는 날, 눈 오는 날의 한옥 카페를 즐기기 위해 모험을 감행한다. 한옥 기와를 타고 내리는 비, 지붕과 지붕 사이의 공간으로 흩날리는 눈, 그 고즈넉한 공간은 충분히 가치가 있다.
우리 집은 저녁 식사와 야식이 없다. 시작은 역류성 식도염이었다. 몇 번이나 치료를 했는데도 계속 재발되었다. 비우는 방법밖에 없다고 하였다. 저녁을 안 먹었다. 그 이후로 간헐적 단식이라는 유행이 생겼다. 저절로 유행의 선두주자가 되었다. 남편도 몇 번 저녁을 안 먹어 보더니 이제는 속이 비어야 잠이 온다고 한다. 덕분에 저녁 시간을 여유롭게 쓸 수 있다. 저녁을 챙겨서 먹고 치우는 대신 피아노를 칠 수도 있다. 반면 저녁모임이 가장 두려운 시간이 되었다. 어쩔 수 없는 모임에서 저녁을 먹으면 음식이 든 위장을 부둥켜안고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한다. 속이 빈 채로 잠을 잘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세상으로부터 한 발짝 물러서서 모든 욕심을 버린다. 적은 수입에도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사고 싶은 걸 다 살 수 있는 여유로움이 생긴다. 경제적 자유를 확보한 셈이다. 자유란 주어진 상황과 틀 안에서 나의 활동 반경을 가장 작게 축소시켜서 더욱 많은 여유 공간을 확보한 상태다. 그 공간이 작으면 작을수록 꽉 끼는 옷을 입은 것처럼 나 자신을 옥죄이는 불편하고 불행한 상태가 된다. 그런 옷은 벗어버리면 된다. 항암치료 덕분에 헤어스타일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역류성 식도염 덕분에 절식을 하게 되었다. 인생지사 새옹지마. 불행은 벗어버리면 된다.
나는 노년의 내가 좋다. 혈기와 열정과 욕심이 모두 사라진 지금의 평온하고 고요한 이 시간들이 너무 좋다. 절대로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아주 조금만 더 살면 되니까.